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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길로 이끄는 52개 항목 ‘인생 핸드북’

뭐든지 뭔가를 안다는 것은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 스토아 철학을 아는 사람은 고스톱 칠 때도 다르다. 나건 남이건 누가 피박을 써도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옆에 폭탄이 떨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스토아 철학은 삶의 크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 一喜一悲)하지 않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⑨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300년께부터 기원후 200년께까지 그리스 로마 시대를 풍미한 철학이다. 에픽테토스(55~135)는 비중이 차고 넘치는 그리스의 후기 스토아 철학자다. 그는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평생 흠모한 철학자였다. 에픽테토스의 주인은 로마에서 노예인 그에게 철학을 배울 수 있게 배려했다. 원래 그 자신 노예였던 주인이 사망하자 에픽테토스는 자유를 얻었다. 철학자가 돼 일가를 이룬 그는 귀족 자제들을 가르쳤다. 에픽테토스의 본명은 알 수 없다. 에픽테토스는 ‘획득한(acquired)’ ‘노예’ ‘하인’이라는 뜻이다.

『엥케이리디온』의 한글판(『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삶의 기술』) 표지(왼쪽)와 1554년 라틴어판의 첫 페이지.
의지는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 선물
당시의 많은 위인처럼 에픽테토스는 저술을 남기지 않았다. 그가 한 말을 기록해 책으로 편찬한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한 사학자인 제자 아리아노스다. 오늘날 원래는 8권이었던 『어록(Discourses)』 중 4권과 『어록』을 요약하고 새롭게 편집한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이 남아 있다. 『앵케이리디온』은 핸드북·매뉴얼이라는 뜻이다. 우리 한자말로는 편람이다. 52개 항목으로 된 인생 행복을 위한 지침서다.

1715년 옥스퍼드에서 출간된 『엥케이리디온』에나오는 에픽테토스의 상상 초상화.
에픽테토스에 따르면 교육의 핵심은 이렇다. 내 재물도 권력도 남이 빼앗아 갈 수 있다. 우리 인간이 진정으로 소유한 것, 남이 뺏을 수 없는 것은 딱 하나―의지다. 의지는 제우스 신(神)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 나쁜 생각이건 좋은 생각이건 슬픈 생각이건 음흉한 생각이건··· 어떤 생각이 드느냐에 대해 우리는 책임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다. 우리에겐 의지가 있고 의지에 따라 우리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의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다. 에픽테토스는 애욕의 발생을 자기 통제력을 강화할 기회로 본다. 그에 따르면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우리의 참을성을 격상할 좋은 기회다.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일종의 ‘무저항주의(無抵抗主義)’다. 참을 수 없는 것 같은 것도 참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특히 뭔가가 부당하다고 느낄 때 참을 수 없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만 고통 받는다고 생각할 때 더욱 고통스럽다. 우리에게 닥친 어떤 일 그 자체보다는 억울하다는 느낌이 고통을 배가한다. 그러나 제우스 신의 깊은 뜻이 뭔지에 대해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제우스 신이 우주를 합리적으로 움직인다고 것, 모든 일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억울함도 고통도 없다는 게 에픽테토스의 주장이다.

에픽테토스는 ‘극단주의자’이기도 하다. 예컨대 자동차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게 되더라도 걷는 데 지장이 생길 뿐이다. 우리의 의지나 행복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데 고통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아내나 자식이 저승으로 떠났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려는 시도를 한다. 에픽테토스는 이미 일어난 일, ‘엎질러진 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할 때 고통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극단주의자’인 에픽테토스는 감정의 이중 표준(double standard)을 거부한다. 예컨대 우리는 먼 곳에 있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굶어 죽거나 자연재해로 희생되면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한다. 에픽테토스는 모든 사람의 죽음이나 불행으로부터 우리가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요구한다. 이런 식의 논리다.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에게 키스할 때도 그들 또한 먼 나라 사람들과 똑같은, 언젠가는 사라질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사라지더라도 마음이 흔들릴 일은 없으리니···.

나를 분노케 하는 나쁜 놈들도 신의 아들·딸
에픽테토스가 생각한 이상적인 인간은 일상의 크고 작은 일로부터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신의 의지를 일치시킨다. 자연의 섭리와 자신의 삶을 조화시킨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을 점점 더 위대하고 숭고하게 살찌운다.

그런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는 차치하고 사람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행복하게 살려면 뭐가 필요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에픽테토스는 우선 우리의 권력·권한 밖인 것과 안인 것을 구분하라고 요구한다. 질병·죽음·가난·명예·권력·돈 같은 것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해 아무런 힘도 통제권도 없다. ‘하늘의 뜻’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미련을 두면 우리는 더욱 불행해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마저 등한시하게 된다. 행복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에서 나온다. 우리의 생각, 행동, 우리에게 발생한 일들에 대한 반응·태도 같은 것들이다.

에픽테토스는 ‘극소주의자(minimalist)’이기도 하다. 최대한 소박한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에픽테토스의 집에 가면 가구라고는 달랑 낡은 침상 한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큰 욕심 없이 사소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픽테토스는 ‘소망하면 뭐든지 이뤄지며 온 우주가 나서서 나를 돕는다’는 식의 ‘하면 된다 주의’의 대척점에 서 있다.

6세기 기독교 작가들은 『엥케이리디온』의 논리를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해 흡수했다. 제우스를 삼위일체의 신으로 바꾼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사람들조차 제우스의 자식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제우스를 하느님으로 바꿔도 의미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에픽테토스의 ‘영웅’은 국가에 저항하지 않고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인 소크라테스다. 인류를 위해, 하느님의 국가를 위해 기꺼이 수난을 받아들인 예수가 소크라테스를 대체했다. 서구를 형성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융합 과정에서 스토아 철학의 핸드북인 『엥케이리디온』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불교 신자들도 『엥케이리디온』을 읽을 때 데자뷰를 체험한다.

친구가 버린 아이를 키우려고 늦장가를 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결혼하지 않았고 자식도 없었던 에픽테토스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한 덕분인지 80세 장수를 누리다 세상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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