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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댓글 수사가 남긴 것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지난 14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제85조(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1항 및 국정원법 제9조(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범법 행위를 했는지는 장차 재판에 의해 가려질 것이니 함부로 논할 것이 아니로되, 수사 과정을 보면서 재야 법조인으로서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 형법은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가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할 경우 ‘피의사실공표죄’로 처벌하고 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수사기관이 중요 사건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면 그 즉시 혐의 내용이 당연히 사실인 양 언론에 낱낱이 보도되고, 그에 대한 여론의 호된 질타가 이어진 후 재판으로 넘어가는 것이 거의 공식처럼 굳어져 왔다. 거기에는 정치인, 고위 관료, 재벌 회장, 심지어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까지 예외가 없다.

 물론 혐의 내용이 보도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려는 기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에 기인한 면이 있어서 무조건 수사기관만을 탓할 것은 아니겠으나, 재판이 확정된 후에 보면 보도 내용이 허위로 밝혀지는 경우가 너무도 많아서 근래 우리 언론의 수사에 대한 보도가 금도를 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식자들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위와 같은 관례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을 운위할 필요도 없이, 담당 법관들에게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이다. 선진국에서도 이제는 재판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 가장 강조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혐의 내용뿐만 아니라 각종 증거의 세세한 내용, 나아가 수사 과정에서의 검찰의 결정 과정까지 여과 없이 언론에 보도되었다는 점이다. 당초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할지에 대해 검찰 내 각 부서 간에 이견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더니, 급기야는 수사팀과 법무부 장관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는 기사까지 나오고 있다.

 2004년에 개정된 검찰청법 제7조는 ‘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이라는 제하에 “①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 ②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 여부에 대하여 이견이 있는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법제 하에서는 검사는 법관처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가검찰의 한 구성원으로서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라야 하고, 법무부 장관에 의하여 검찰총장을 통해 간접적인 통제를 받는 국가공무원이라는 점이다. 검사 개개인의 의견 못지않게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검찰 사건 처리의 적정성을 기하고자 하는 것이 입법자의 의도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물론 어려운 여건 아래에서 수사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일선 검사들의 정의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 점에서 그들의 의견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하며, 정치권력이 부당하게 그 소신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강조되어야 할 점은 검찰 수뇌부의 입장에서 일선 수사팀이 의욕이 넘친 나머지 부적절한 결론을 내리는 것을 바로잡는 권한도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모든 행정은 결국 법률의 규정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수사와 재판은 그렇게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진실’이라는 것도 각자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법률의 적용은 최고법원의 판단까지 필요한 문제가 수두룩하다. 그러니 수사 검사들의 의욕을 상급자가 억압한다는 단순 논리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더구나 검찰 내부에서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알려지는 것은 검찰 결정의 권위를 위해서도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부적절한 수사로 국민의 존경의 대상이던 전직 대통령 한 분을 잃는 기막힌 아픔을 맛보았다. 수사 담당자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겠지만, 당시 검찰 간부들 사이에서는 수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력했다고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노영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내고 현재는 법무법인 태평양 대표변호사와 서울대 법과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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