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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18세기 사전에 처음 등장한 침실, 그 곳은 자유였다










방의 역사
미셸 페로 지음
이영림·이은주 옮김
글항아리, 751쪽, 4만원


일상적으로 늘 가까이 있어 친숙한 것들의 역사란 얼마나 쓰기 어려울까. 웃음의 역사나 빵의 역사를 쓴다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과 관련된 주제이기에 오히려 특정성을 찾기 힘들어서 생기는 난점일 것이다.

 역사가들은 그 어려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여 하나하나 그 이면을 파헤친다. 『방의 역사』도 그런 사례에 속한다. 시대와 신분을 막론하고 방은 인간에게 삶의 터전이다. 그렇기에 방의 역사라는 개념 자체는 오히려 방대하며 모호하다. 이제 우리는 미셸 페로의 노력에 힘입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방의 역사의 윤곽을 잡을 수 있다.

 페로는 이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부분에 ‘방들의 실내악’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아마도 ‘실내악’이라는 단어가 ‘방’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노라면 방의 주제에 관한 변주곡을 듣는 느낌이 든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제왕부터 하녀까지, 역사 자료에서 문학 작품까지 이 책은 다양한 대상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면서도 일관적인 주선율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 주선율이란 사적인 방이라는 것으로, 그 차단된 곳에서 사생활의 역사를 공간적으로 재현시키려는 것이다.

 왕의 침실만은 달랐다. 서양에는 국왕은 다른 인간들처럼 사멸하는 자연적 신체는 물론 영적 신체도 보유한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국왕의 두 신체’라는 그 개념은 왕이 개인적인 악행을 저지르더라도 왕의 직책은 신성한 것이니 처벌할 수 없다는 논지로 왕권신수설을 지탱하는 한 근거가 됐다.

 왕의 침실이 그 개념이 실행되는 대표적 공간이었다. “왕의 침대는 왕의 육체적인 몸이 신비스런 몸으로 전환되는 제단이었다.” 그곳에서 의례를 거쳐 왕은 공식적인 일과를 시작한다. 따라서 그곳은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는 곳이자 동시에 궁정 전체를 조망하는 권력의 장소였다.

 왕이 아닌 사람들에게 방은 잠을 자는 곳이었다. 방의 관점에서 서구의 역사를 본다면 그것은 가축까지 포함하여 공동으로 거주하던 방에서 ‘자기만의 방’을 가지려는 소망을 실현해가던 과정이었다. ‘침실’이라는 단어가 프랑스어 사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이며,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 소망은 19세기 중엽 이후에야 비로소 충족됐다.

 그것은 부부의 사랑과 자유의사를 강조하는 근대적 결혼관의 확산과 관련을 맺는다. 또한 그것은 부부의 은밀한 성생활을 도덕적 차원에서 합리화시키려는 시도와 병행하였다.

 방에서는 잠만 자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끝없는 갈증”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개인의 내밀성을 보호하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랑하고 기도하고 책을 읽고 편지를 썼다. 그곳은 사색을 하며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기에도 좋은 공간이었다.

 따라서 문인에게 침실은 “창조의 성역”으로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무크는 “침실 속에 파묻혀서 오직 단어들과 함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18세기부터 유럽에서는 문인의 자취와 유품이 보존된 침실을 순례하려는 열풍이 불었다.

 페로는 어린이와 여인의 방으로도 우리를 안내한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가 밝혔듯 어린이란 근대에 ‘발명’된 개념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주거 형태에서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인정한 것도 18세기 말 이후의 현상이었다. 어른들은 민감하고 유연한 어린이의 지각 형성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방을 배치한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방을 자기만의 비밀의 장소로 만든다. 방은 부모들에게는 어린이를 격리시키려는 욕망과 함께 지내려는 욕망이, 자식들에게는 보호받으려는 욕망과 홀로 서려는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여성사의 차원을 높인 역사가답게 페로는 여인의 방에도 눈길을 돌린다. 여인들이 생활하고 사랑의 편지를 읽고 책을 탐독하고 꿈을 꾸는 침실의 “문을 닫는 것은 그들의 자유를 상징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며 공상 속에 여행을 했다. “여인들의 방은 세상의 발코니다.”

 호텔 방과 노동자의 방에 대해서 페로는 각기 다른 서술 방식을 채택한다. 여행지의 사적 공간인 호텔 방의 다양한 관행을 추적하며 페로는 유명한 문인들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그것은 프루스트·프로이트·주네·카프카 같은 작가들의 작품의 산실이자 소재가 되기도 한 호텔 방에 적합한 접근 방식이다.

 한편 도시로 이주하여 한 몸 누일 거처를 경쟁적으로 절박하게 찾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주로 공식적인 통계 자료를 이용한다. 이렇듯 페로는 주제에 따라 다른 종류의 자료를 처리할 능력을 갖춘 드문 역사가라고 말할 수 있다. 방에 대한 페로의 탐구는 병상과 임종의 방과 감옥으로 마무리된다. 그것은 생로병사의 인생 역정이 결국은 방으로 이어진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여느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도판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해상도 높은 그림이 글 읽기에 지친 눈을 적시에 달래준다.

 역사와 문학 전공자들이 함께 번역했다는 것은 장점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긴밀한 윤문과 토론이 함께 할 때의 일이다. 소설가 폴 오스터 등 동일인물의 이름이 다르게 표기된 예가 여럿 보인다. 옥의 티라 하겠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에서 역사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문화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서양 지성과의 만남』 『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 등. 역서 『문화로 본 새로운 역사』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밤의 문화사』 등.


생활사의 대가 미셸 페로

미셸 페로
파리 7대학의 명예교수인 역사가 미셸 페로의 행로는 2차 대전 이후 세대 프랑스 지식인들의 지적 여정을 반영한다. 좌파 가톨릭으로 출발한 그는 마르크시즘과 1968년 5월 학생 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에는 미셸 푸코와 페미니즘에 심취했다. 그러한 경향은 그의 역사 저작에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일례로 박사 학위 논문을 발전시켜 1974년에 발간한 『파업하는 노동자들』에서는 19세기 프랑스의 노동 운동을 계량적으로 분석하여 사회사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페로는 1980년대부터는 생활사와 여성사의 분야로 관심을 확대시켰다. 조르주 뒤비·필립 아리에스 등과 함께 편집한 『사생활의 역사』와 『여성의 역사』는 그의 학문 세계를 우리말로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여성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98년 발간된 『여성들 혹은 역사의 침묵』을 통해 심화됐다. 2001년에는 『역사의 그늘』을 내며 19세기 감옥의 역사를 파헤쳤다. 이토록 그가 택한 주제에는 일관성이 있다. 오래도록 어둠에 갇혀있던 사람들의 역사에 빛을 던진다는 것이다. 페로는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기고하고 ‘역사의 월요일’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역사학의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조한욱 교수

[그림=글항아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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