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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단순함이 위대하다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 지난 주말 서울 송파구의 한미사진미술관을 찾았다. 안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한 리셉션이 한창이었지만 바깥 복도 쪽은 한가하고 조용해서 전시된 사진들을 둘러보기엔 오히려 좋았다. 눈길 가는 대로 전시된 사진들에 눈을 마주치다 전시실 입구 쪽에 걸린 글 한 줄에 눈길이 멈췄다. “큰일났다. 폰카에 빠졌다”라는 글귀였다. 그랬다. 거기서 본 사진들이 죄다 사진거장 강운구가 폰카(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로만 작업한 사진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뜻 “저건 나도 늘 저렇게 찍는데…” 하는, 왠지 모를 만만함이 나도 모르게 속에서 툭하고 배어 나왔다. 물론 아무리 폰카로 찍은 사진이라 해도 대가의 앵글은 다르지 않겠는가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보이는 사진들은 분명 나의 스마트폰에도 적잖게 저장된 그런 폰카 사진들 아니겠는가. 어쩌면 그렇게 거장은 스스로 찬사의 대상에서 스스럼없는 친구로 내려앉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 사진작가 강운구의 오랜 친구인 이기웅 열화당 대표는 언젠가 『내 친구 강운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복잡한 장비로 주체를 못하는 그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나의 노력은, 내게는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역할이었다. 코닥인가요 후지인가요, 아사 몇짜리죠? 묻고는 그가 원하는 필름을 까서 재빨리 들이대는 시중의 기쁨까지 터득하고 나서야 아, 강운구의 조수자리야말로 따분함이 아니라 기쁨과 자랑의 자리로구나 하고 깨닫는다.” 하지만 일흔 고개를 훌쩍 넘은 사진거장 강운구는 이제 복잡한 장비도 조수도 필요 없이 자유롭고 가볍게 폰카 하나로 세상을 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은 결코 경망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말한다. “이젠 나와 대상 사이에는 기계도, 기술도,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주워 담아야만 할 어떤 이삭과 조우했을 때 그냥 그것에 맡기면 된다. 이젠 조리개나 셔터를 조절하는 것조차 조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지만 정작 사람들이 희구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다. 우리는 그 단순함을 통해 더욱 자유로워지고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정말이지 복잡한 것은 가짜고 단순한 것이 진짜 아닐까 싶다.

 # 다시 이기웅이 회고하듯 말한다. “그런 틈틈이 시선이 갈 데 없는 나의 카메라는… 그의 시선이 강렬하게 꽂히는 곳, 그가 고뇌하거나 뭔가 구상하고 있는 순간의 표정, 힘들어 쉬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덧없이 찍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강운구는 스스로를 피사체로 놓고 셀카(셀프카메라)를 찍는다. 이전에는 좀처럼 하지 않던 일이다. 시쳇말로 애들이나 하는 셀카 찍기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진거장이 스스럼없이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일흔이 넘은 강운구는 거리에서 멈춰 자신의 신발 끝이 보이도록 찍는다. 액자 속 거울에 폰카 찍는 자신이 비치도록 셀카를 찍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장소, 같은 장면을 시차를 두고 찍기도 했다. 쇼윈도에 비친 자신을 찍기도 하고, 그림자로 비친 자신을 찍기도 했다. 이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여행 중에 혹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 으레 했을 법한 폰카와 셀카 찍기 아닌가. 이것을 강운구는 전시회에 내걸었다. 이전의 그라면 이렇게 말했을 법하다. “정말이지 겁도 없이!”

 # 사진거장 강운구는 이렇게 고백하듯 말했다. “네팔의 포카라에서 히말라야의 여명을 찍을 때, 수동 카메라로는 아무리 해도 제대로 찍히지 않던 것이 폰카로는 그대로 셔터만 누르니 찍히더라”는 것이다. 기계 만능, 기술 만세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가 그만큼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그리고 오히려 디지털이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풍광 앞에서 또 하나의 경배하는 도구가 되었음을, 아울러 세상에는 자유라는 앵글과 단순함이라는 셔터보다 더 위대한 보는 법은 없다는 것을 일흔이 훌쩍 넘은 사진거장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웅변하고 있었다. 그렇다! 복잡하고 요란한 것이 힘을 갖던 시대는 지났다. 단순하고 조용한 것이 힘을 갖는다. 바야흐로 그 단순함이 지고(至高)하고 위대한 것 아니겠나!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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