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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먹고살려다 보니 전과만 늘더라고요"

[일러스트=강일구]


강원도 원주에서 염소를 도축해 고기 등을 팔고 있는 김모(57)씨는 최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에게 감사의 e메일을 보냈다. 20여 년간 생업을 유지하기 위해 전과만 쌓였던 사연과 합법적으로 일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좌절했던 사연, 그러다 최근에야 합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데 대한 감격 등을 담은 메일이었다. 그가 e메일에 쓴 사연은 이랬다.



 밀도축으로 전과자가 되었다. “경제적 이유로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강원도에는 염소를 전문적으로 도축할 수 있는 허가받은 도축장이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충주 도축장까지 염소 몇 마리를 싣고 가 도축해 오는 데 이동 시간만 어림잡아 왕복 4시간이 걸리고 한 마리당 도축비가 3만원인데 이 비용을 다 계산해 보면 식당에 납품하는 가격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도축장을 운영하고 싶었다. “허가를 받으려고 사업계획서를 들고 도청과 시청을 오갔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까다로운 허가 조건과 여러 가지 이유로 소규모 도축장은 불허한다는 지자체의 입장뿐이었습니다.”



 지난 4월 강원도경 단속에 걸렸다. “또 전과가 하나 늘겠구나 생각하니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업이다 보니 요번에 단속되면 몇 년간은 단속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 반전이 일어났다. “단속 형사가 도축장 허가와 관련한 간담회를 개최할 테니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냥 형식적으로 한 번 하고 마는 일회성 간담회가 아닐까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간담회는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오후 3시까지 열띠게 진행됐습니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소형 염소 도축장 신설은 관례가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인 반면, 경찰은 비위생적인 단속 현장을 설명하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간담회 일주일 후 기존보다 시설기준이 대폭 완화된 염소 도축업 시설기준이 고시되었다. 그는 곧바로 도축업 신청을 했다. “도청도 문제는 알고 있었지만 과감히 바꿀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경찰이 나서지 않았다면? 저는 또다시 염소 밀도축을 해서 전과만 늘었겠지요. 곧 합법적으로 세금 내면서 도축장을 운영할 생각을 하니 믿기지 않습니다. 세 딸에게 당당한 아빠가 될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그는 그동안 불가항력이었던 일을 경찰이 문제점을 짚어주고 해결해 준 데 감사하기 위해 장관에게 e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이렇게 행정관청이 전향적으로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김씨는 20여 년이나 불법의 그늘에 살았다. 한데 행정편의 논리에 밀려 전과자가 되는 사람이 김씨뿐일까.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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