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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 없는 부이치치, 로봇다리 세진이를 만나다

“다정하게”를 외치는 기자의 요구에 세진이가 닉 부이치치에게 몸을 기댔다. 둘은 “영혼이 통하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게 장애는 축복이었습니다. 그 축복으로 인해 저는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납니다.”

 팔다리가 없는 기형으로 태어났지만 절망적인 삶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희망 전도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당찬 청년이 있다. 호주판 오체불만족의 신화로 불리는 닉 부이치치(Nick Vujicic·31)가 그 주인공이다.

 사지 없는 삶(Life without limbs)의 대표로 전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그는 지난달 15일 일본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베트남·홍콩·마카오를 거쳐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다. 지난 5일 방한한 부이치치는 7일 저녁 서울 숭실대 한경직기념관에서 기자와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부이치치는 “안녕하세요~”를 크게 외치며 환한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계속되는 일정에 조금은 지친 모습이었지만 특별한 손님이 등장하자 이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다리 없이 태어나 인공다리를 부착해 ‘로봇다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김세진(16)군의 등장이었다.

 이 둘의 만남은 국제아동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이 설립 10주년을 맞아 후원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이뤄졌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언론에 등장해 국민에게 감동의 스토리를 전한 세진이와 전 세계적인 희망의 아이콘인 부이치치의 만남은 마치 오래 봤던 사이처럼 편안해 보였다. 이미 세 명의 아이를 후원 중인 부이치치와 인도네시아의 다리 없는 아이를 후원 중인 세진이는 둘 다 ‘후원자’로서의 삶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 두 희망 전도사의 만남은 시종 유쾌하게 진행됐다.

 부이치치는 2008년 국내 방송을 통해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긍정적인 태도로 장애를 이겨낸 부이치치의 삶은 절망도 희망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2010년에는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 『허그』를 펴냈고, 그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 국민에게는 꽤 익숙한 존재가 됐다. 특히 팔다리가 없는 그가 타이핑을 하고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에 한국 팬들도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축복받지 못한 출생 … 한때 자살 시도

닉 부이치치와 아내의 행복한 모습(사진 위). 세진이와 그가 멘토로 꼽는 수영선수 박태환.
 그중에는 로봇다리 세진이도 있었다. 세진이는 “TV에서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뵐지는 몰랐다”며 약간은 긴장한 상태로 부이치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세진이의 모습을 본 부이치치가 먼저 “혹시 여자친구는 있니”라며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었다. 세진이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세진이는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며 물었다.

 “다리만 없는 제가 수영하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부이치치 형은 도대체 어떻게 수영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어렸을 적 저의 아버지는 두 살 때부터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는 나를 물에 띄우는 연습을 했어요. 늘 저의 몸 아래를 살짝 받치면서 띄우는 연습을 했고, 그렇게 수차례 반복한 뒤 손을 치웠는데 내가 엄청 울었대요. 그런데 여섯 살 때 내가 물에서 헤엄을 칠 수 있게 됐어요. 아주 조금씩 발전하긴 했지만 노력하니까 되더라고요.”

 “정말 멋져요. 저는 엄마가 아기 때부터 저를 아예 물에 던졌기 때문에 살기 위해 수영을 했던 거였는데….(이 부분에서 부이치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크게 웃었다) 가끔은 ‘내가 왜 수영을 하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수영이 있었기 때문에 형도 만난 것 같아요(웃음).”

 둘은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호주에서 태어난 부이치치는 양팔과 양다리 없이 발가락 두 개가 달린 작은 왼발 하나만 가지고 태어나 부모에게 충격을 안겼다. 또 그런 자신의 처지에 절망해 열 살 때 욕조에 물을 받아 자살을 시도한 것을 시작으로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부모님은 “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특별하단다”며 다독였다. 이후 부이치치는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과 사랑 속에 호주 역사상 처음으로 장애인으로서 공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생회장에도 당선됐다. 공부에도 재능을 보여 호주 로건 그리피스대학에서 회계와 경영을 복수전공하며 부모의 기대에 부응했다.

 세진이 역시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맡겨졌다. 하지만 어머니 양정숙(44)씨를 만나 공개 입양이 됐다. 세진이는 어렸을 적부터 ‘다리 병신’이라거나 ‘근처에 가면 병에 걸린다’는 등의 말을 수없이 들으며 상처를 받았지만 어머니 양씨는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받을 수많은 욕과 말들을 알려주며 의연해질 것을 주문했다. 혹시라도 말까지 어눌하게 할까 봐 마이크에 스피커를 연결해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또박또박 말하는 법을 가르쳤다.

 또 걷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매트를 깔고 세진이를 넘어뜨리는 연습을 했다. 그럴 때마다 “너 걷는 거 중요하지 않아. 걷다가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는 게 중요해”라며 넘어진 세진이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결국 세진이는 어머니의 훈련을 통해 의족으로 걸으면서도 세계 최연소로 10㎞ 마라톤을 완주하고 로키산맥을 등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부이치치 역시 매일같이 넘어지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누군가 일으켜주길 바란다면 너는 영원히 일어나는 법을 모를 것”이라며 아들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불어넣었다. 수백 번씩 엎어졌다가도 근처에 있는 벽이나 물건 등에 머리를 짚고 다시 일어나는 연습을 반복했다. 결국 그는 넘어졌다가도 금세 일어나는 법을 터득했다. 둘은 이 대목에서 동시에 입을 모아 “부모님은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분들”이라며 “단 한 번도 우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늘 용기를 주셨다”고 말했다.

"세진이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이들은 혹독한 노력을 통해 세상의 편견과 멸시에서 자신을 일으켜세웠다. 부이치치는 점점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였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열아홉 살 때부터는 강연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강연 중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져 지난해 2월 일본계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는 데 성공했고 올 2월엔 아들을 얻기도 했다. 결국 부이치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지 없는’ 희망 전도사가 됐고, 아직은 어린 세진이도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19세 미만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한국 장애인 수영의 기대주로 꼽히고 있다.

 특히 둘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을 찾아 강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장애아나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자신들에게 편지를 보내오면 직접 해당 학교를 찾아 아이들 앞에서 얘기를 나누는 식이다. 세진이도 자신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부이치치는 “강연을 다니면서 만나는 장애인 아이들은 늘 나를 히어로라고 생각하고 오는데, 세진이는 이미 아이들에게 히어로가 돼 주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뿌듯하다”며 “세진이가 앞으로 나만큼 좋은 스피커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진이는 올해 대학생이 됐다. 검정고시로 중·고교를 마친 뒤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수시전형에 합격했다. 최연소 대학생이 돼 일반 학생들과 함께 리포트를 쓰고 학교 생활에 참여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진이는 “장차 스포츠심리학 분야를 전공해 저와 같은 장애아들이 스포츠를 통해 안정을 찾도록 돕고 싶다”며 “대학원도 가서 나중에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올해 9월 미국에서 열리는 10㎞ 수영마라톤대회에도 출전하기 위해 맹연습 중이다.

 인터뷰 말미에 부이치치는 “이제 16세가 된 세진이는 정확히 나보다 반밖에 안 살았다. 세진이의 미래는 정말 무궁무진하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직도 팔다리가 생기는 기적을 꿈꾸며 신발을 간직하고 산다.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이미 내 삶 자체가 기적이다. 세진이도 그런 마음을 늘 간직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세진이가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부이치치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적 같은 날이에요. 꼭 꿈을 이뤄 저도 누군가에게 기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영혼이 통한 것 같다’며 세진이와의 만남 소감을 전한 부이치치는 11일 한국을 떠나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송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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