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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철학을 공부하면 일도 잘하고 행복해진다

다니엘 튜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서울 특파원
한국에서 내가 늘 받는 질문이 있다. “몇 살인가요?” “결혼은 했나요?” “대학에서 뭘 전공했나요?” 첫 질문은 대답하기 쉽다. 하지만 둘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안됐다”는 반응을 부른다. 마치 한국에서 32세인 사람은 결혼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질문과 관련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나는 PPE(철학·정치학·경제학)라는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셋 모두를 같은 비중으로 공부하는 전공이다. 전공을 묻는 질문에 답하면서 나는 ‘철학’을 가장 앞에 내세운다. 그러면 상대의 얼굴에는 기묘하다거나 실망스럽다거나 하는 표정이 번져나간다. 이어 ‘정치학’이라고 하면 그저 그런 반응이 나온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경제학’을 밝히면 얼굴이 곧바로 환해진다. 마치 “아하, 그래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군요”라는 분위기다.



 한국 회사에서 일하면서 구직자의 학위로는 경제학이 가장 대우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철학이야말로 지금까지 공부한 과목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다. 토론하는 법을 가르쳐줄 뿐 아니라 정치·미디어·비즈니스의 세계에 늘 넘쳐나는 비논리적 난센스를 뚫고 나가게 도와준다. 좀 더 나은 글쟁이가 되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다. 깊이 생각하고 좀 더 분명히 표현하도록 요구하는 덕분이다. 철학은 또한 사람을 겸손하게 해준다. 철학이 수천 년의 역사를 지녔음에도 아직도 대답하지 못한 질문,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이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하필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경영학 석사(MBA·나의 두 번째 학위다) 과정을 밟던 시절 동료 학생들의 행태에 자주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정답을 알 수 없는 일이 분명한데도 뭔가 답을 만들어내려고 기를 쓰곤 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훌륭한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와 대조적으로 경제학은 해답을 지닌 과목이었으며 매우 수학적이었다. “이 방정식을 사용하면 정확한 답에 이를 수 있다”는 식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학문이다. 모호하거나 예외적인 현상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를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경제학자나 경제 관련 필자를 좋아한다. 하지만 학부 프로그램에선 이 같은 여지가 전혀 없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과 (재정위기가 시작된) 2008년의 상황을 생각해보라. 철학적 성향이 있는 투자자라면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재앙적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할지 모르지만 아주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방정식을 이용하면 그것이 얼마나 가능성이 희박한지 계산할 수 있다는 게 정말일까?”



 과거 주식 트레이더로 일하던 시절 놀란 것이 있다. 실제로 경제학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필요한 원리는 존재한다. 예컨대 “이자율이 높아지면 통화·주식·채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선 많은 것이 상식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심리학과 모호성이 작용할 때도 종종 있는데 이는 더더욱 이해가 힘든 분야다. 철학은 이런 것을 준비하게 도와주었던 것 같다.



 프랑스 작가 알랭 드 보통을 빌려 말하자면 철학은 삶을 보는 시야를 개선할 수 있다. 예컨대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대개 어두운 허무주의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의 글은 지극히 긍정적이다. 내가 읽은 바에 따르면, 니체는 세상에는 신앙할 만한 대상이 없지만 이는 그 자체로 인간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자신을 믿을 자유가 있다. 이는 혼란에 빠져 있던 19살의 내게는 놀라운 말이었다.



 철학은 당신이 취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철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의 편견 탓이다.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철학은 당신이 일을 잘 수행하도록 약간 도움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행복한 인간으로도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 튜더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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