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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8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89년 8월 서울 중계동에서 임대아파트 기공식이 고건 당시 서울시장(오른쪽 다섯째)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 고건 전 총리]


서울시장이 된 지 9일 만인 1988년 12월 14일.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의 한 마을을 찾아갔다. 골목 가장 후미진 곳까지 들어갔다. 집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골목은 너무도 좁았다. 어깨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넓이였다.

달동네 재개발, 반대 무릅쓰고 임대아파트 추진



 안내하던 통장이 말했다.



 “사람이 살아서는 나와도 죽어서는 못 나오는 동네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골목이 하도 좁아서 관이 누워서는 못나오거든요. 관도 옆으로 세워야 간신히 빠져 나온다고 해서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얘기를 하죠.”



 철거 이주민이 정착해 만든 달동네였다. 불도저식 도심지 개발이 불러온 부작용은 1970년대 초 내무부 지역개발담당관으로 일하며 경기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시 일대) 현장에서 목격했다.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서울의 70여 개 지역에서 주택 재개발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산등성이만 보면 전부 시뻘갰다. 양천구 신정동 칼산마을 등 다른 달동네를 둘러봤다. 상황은 비슷했다. 갈 곳 없는 세입자들은 항거했고 철거용역회사는 물리력으로 그들을 밀어냈다. 갈등과 충돌만 있지 법도 정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살인 사건까지 일어났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실제 현장이었다. 정부와 서울시는 양적인 주택 공급에만 매달렸다. 현지 주민의 고통은 안중에 없었다.



 고민이 시작됐다. ‘무질서하게 오밀조밀 지은 판잣집이지만 단층이다. 달동네를 밀고 10층 아파트를 지으면서 왜 원주민들은 쫓겨나야 하는가.’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원주민들을 수용할 수 있는 아파트 공간은 넘쳤다. 문제의 본질은 아파트 재개발 이익의 배분에 있었다. 달동네가 있는 산비탈 지역은 대부분 국공유지였다. 도시계획상 공원·녹지 지역으로 건축이 불가능한 곳이다. 이 지역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해 10층 이상의 아파트 건설을 허용하는 특혜를 줬다. 천문학적인 재개발 이익이 생겼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익은 재개발 조합을 등에 업은 건설회사와 외지에서 온 부동산 투기꾼에게 넘어갔다. 원주민에게 이익은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이 재개발 이익의 극히 적은 부분이라도 원주민에게 배분한다면 달동네 재개발 과정에서 생긴 갈등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김인식 서울시 건설관리국장을 불렀다.



 “원주민인 세입자에게 딱지 반 장을 주는 대신 재개발 아파트 입주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 보세요.”



 김 국장은 얼마 후 1차 검토 결과를 나에게 보고했다.



 “건설부 규정상 안 되는 걸로 나옵니다.”



 “건설부 규정은 무시하세요. 시 자체의 조례나 규정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며칠 뒤 김 국장은 다시 검토 결과를 가져왔다. 역시 ‘안 된다’였다.



 “설사 세입자에게 아파트 입주권을 인정하더라도 아파트 구입 능력이 없어 현실성이 없습니다.”



 옳은 얘기였다. 재개발 원주민들은 돈이 없어 입주권 딱지를 위장 전입자에게 팔고 떠나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내 구상에 대한 언론의 반응도 싸늘했다. “업무 파악을 못한 정치인 출신 시장의 황당한 공약”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이 일을 빗댄 신문 만평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내가 농악대 상모를 쓰고 신나게 머리를 돌리고 있는 만화였다.



 그래도 나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현실에 맞게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달동네 세입자가 내고 살 수 있는 임대아파트를 그 자리에 함께 짓기로 했다. 서울시 조례로 이 내용을 제도화했다.



 1989년 3월 9일 노태우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나는 “서울시는 달동네 주택 재개발은 세입자를 위한 소형 영구임대아파트 건설을 전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SH공사가 하고 있는 재개발 임대아파트 사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나는 이 일을 겪으면서 어려운 일일수록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그곳에 해답이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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