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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첫사랑만 사랑인가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지금 대한민국 TV는 첫사랑과 사랑에 빠졌다. 첫사랑 강박이나 콤플렉스처럼 보일 정도다. 가뜩이나 로맨스 일색인 드라마가 하나같이 첫사랑 타령 중이란 뜻이다.



 월화 드라마 세 편이 다 그렇다. 어린 시절 첫사랑 남녀의 재회로 시작하는 KBS ‘상어’. 여자의 가족에게 모든 것을 잃고 페이스오프(얼굴 성형)한 남자는 복수심에 불타지만 여전히 여자를 사랑한다. 퓨전사극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숙종과 장옥정도 어린 시절 첫사랑이다. 반인반수와 인간의 로맨스를 그린 MBC ‘구가의 서’의 주인공 남녀도 어린 시절 만난 운명의 상대다.



 독심술과 국선변호사라는 이색 소재로 눈길을 끈 SBS 새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여기서도 첫사랑은 주요 모티브다. 어린 시절 첫사랑 누나를 “이젠 내가 지켜주겠다”고 찾아 헤매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우리 드라마들의 유난한 ‘첫사랑 판타지’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류의 원조 ‘겨울연가’ 이래 순결한 첫사랑의 이미지는, 한국산 로맨스물의 핵심 키워드가 됐다. 당시 ‘겨울연가’의 일본 팬들은 “일본에서는 찾을 수 없는 첫사랑 순애보”에 열광했다. 이젠 ‘해를 품은 달’ ‘보고 싶다’(MBC) 등 어린 시절 첫사랑이라는 설정을 위해 초기 몇 회 동안 아역 연기자가 등장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왜 이렇게 첫사랑일까? 현실의 사랑이 점점 물질화, 인스턴트화하는 데 대한 반감이 제일 큰 이유일 것이다. 타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사랑으로 첫사랑이 등장하는 것이다. 운명적 사랑이란 극적 효과도 있다.



 ‘사랑의 철학자’로 불리는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은 지난달 26일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영화가 그리는 사랑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재앙이다. 사랑의 전체상을 외면하고 사랑의 첫 순간들에 과도하게 집중한다. 누구나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만 지혜와 용기가 있는 사람들만이 사랑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할리우드는 여러 종류의 사랑 중에서 성애나 사춘기적 사랑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한다. 로맨틱한 사랑만 사랑인 것은 아니다”고도 했다.



 2012년 우리 영화 ‘건축학 개론’은 서툰 사랑 끝에 상대에게 지독한 욕설을 퍼부으며 깨진 첫사랑을 그렸다. 사실 첫사랑은 대부분 그런 것이다. 순진무구해서 찬란하기보다 미숙해서 상처를 주는 쪽이다. 알랭 드 보통 식으로 말해본다면 그저 첫사랑이어서 좋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랑의 시작, 사랑을 통한 성숙의 출발이어서 좋은 것이다.



 우리 TV 드라마는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지만 정작 진짜 사랑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사랑에 대한 환상만 있을 뿐 실체는 없고, 첫사랑에 지고지순한 운명적 이미지를 부여하며 그저 사랑의 순서대로 사랑의 서열이나 매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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