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앙시평]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해야 하는 이유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적잖은 의구심에 시달렸다. 과연 이것이 정부의 진의인지, 진의라 해도 효과가 있을지 비판이 만만찮았다. 그러나 지난주 벌어진 대반전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북한이 지난 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를 통해 우리 정부의 당국자 대화 요청을 전격 수용했다. 남측도 이에 재빠르게 화답하면서 6년간 중단됐던 장관급 회담의 물꼬가 열리게 됐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두 달 전만 해도 한반도에 전쟁이라도 발발할 것처럼 속보를 쏟아내던 외신들은 이제 대화 국면 전환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불안 속에 애태우던 국민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다. 7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당연히 호재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남북 간의 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선순환의 희망적 메시지를 준다.



 반전의 일등공신은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원칙과 신뢰’를 앞세운 일관성이다. 물밑접촉을 거부하고 당국자 대화라는 정공법으로 밀고 나간 선택이 주효했다. 다른 하나는 박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한 기대다. 장성택을 포함해 2002년 박근혜-김정일 면담을 주선하고 목격했던 이들이 현재 북한의 대남 정책을 조율하고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보여줬던 진정성이 북한의 유훈 통치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평양의 극적인 태도 변화를 가능케 했다고 본다. 7·4공동성명을 의제화한 것도 그러한 맥락이 아닌가 한다. 물론 중국의 압박도 북한 군부의 반대를 희석하는 주요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뀐 만큼 정부의 어깨는 한결 더 무거워졌다. 대화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강경 보수진영의 비판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첫 번째 관건이다. 이들 가운데는 7·4공동성명이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을 표방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의 자금줄로 지목하는 견해도 만만찮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남북대화 재개가 반가울 리 없을 것이다. 뒤집어 보면 평양도 마찬가지다. 대화보다는 대결과 긴장으로 몸집을 키워온 북한 군부 역시 내심 대화 결렬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눈을 돌려보면 워싱턴의 분위기도 수월하지 않다. 유엔 대사로 재직하며 대북 강경제재 결의안을 주도했던 수전 라이스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북한에 대한 압박강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과연 미국 측과 각을 세우면서까지 남북대화를 전향적으로 전개할 수 있을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남과 북의 시각차가 워낙 크다는 점은 가장 큰 난제다. 북은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고수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과 경제건설은 병행할 수도 없고, 성공할 수도 없으며, 스스로 고립만 자초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옛 지혜를 빌려야 한다. 쉬운 것부터 먼저 풀고 어려운 것은 나중에 푸는 ‘선이후난(先易後難)’의 지략이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문제만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둬도 남북한 사이에 기초적인 신뢰를 구축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 일단 이렇게 토대를 만들어둔 위에서 다음 단계를 풀어나가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 같은 큰 틀의 논의는 장관급 회담에 나오는 북측 대표가 협상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의제로 설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권을 갖고 핵을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은 정상끼리의 만남뿐이다. 정권 초반부터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남북정상회담을 주도적으로 개최한다면, 힘 있게 평양을 설득해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출구를 마련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북한판 마셜플랜과 북·미 수교, 안전보장 등이 핵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정상끼리 만나 이를 구체화해야 한다.



 남북한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 논의와 남북관계 진전을 병행해 추진하는 일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대미외교와 함께 6자회담 재개가 필요하다. 또한 ‘남남합의’의 틀을 마련하는 일 역시 긴요하다. 보수적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얻어 당선된 박근혜정부는 역대 어느 전임자보다 슬기롭게 이를 돌파해낼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다.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박 대통령 특유의 뚝심으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대장정을 여는 계기로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