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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우성 변시지 화백 별세

엄마품처럼 넉넉한 산 밑 초가집을 향해 지팡이 짚고 다가가는 사내는 화가 자신이 아니었을까. 변시지 화백의 1992년 작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72.7×90.9㎝).


변시지
그는 제주의 화가, 아니 고향의 화가였다. 우성(宇城) 변시지 화백이 8일 영영 고향으로 돌아갔다. 87세. 거친 붓질로 세상과 마주하는 인간의 본질을 드러낸 그의 황톳빛 화면은 우주적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폭풍의 화가' 그 황톳빛 화면엔 우주적 연민이
고향 제주의 소용돌이 그려
미 스미스소니언에도 작품



 1926년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사카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후인 47년 ‘광풍회전(光風會展)’과 일본 문부성 주최 일전에 입선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듬해엔 광풍회전에서 최연소로 최고상을 수상했다. 57년 귀국 후 서라벌예술대학, 한양대 등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75년 제주대 교수가 되어 고향에 정착했다. 이후 제주의 풍토에서 영감을 얻은 황갈색 작업을 시작했다. 변시지만의 독창적 ‘제주화’의 탄생이다.



 제주에서 오사카로, 서울서 다시 제주로. 유랑 끝에 찾아낸, 고향 땅에 가장 가까운 자기만의 화풍이다. 변 화백은 황톳빛 화면 속에 간결한 필치로 자신을 닮은 지팡이 짚은 사내를 즐겨 그려 넣었다. 고인은 일본서 초등학교 2학년 때 교내 씨름대회서 대퇴부를 다친 뒤 평생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그가 지내온 삶의 파도를 암시하듯 격랑으로 가득한 섬, 바람많은 제주의 휘몰아치는 소용돌이를 즐겨 그렸다. ‘폭풍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91년 국민훈장을 받았고, 2007년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작품 두 점이 소장됐다.



 폭풍 속에 초가집을 지키는 외로운 사내, 친구라곤 까마귀, 조랑말뿐인 화면 속 사내는 누구를 기다렸던 걸까.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변시지가 제주도가 되고 제주도가 변시지가 되는 세계, 여기에 그의 예술의 독특한 구조가 있다”며 “모든 게 생략돼 버린, 골격만 남는 풍경, 아무 것도 남아나지 않는, 오로지 남아있을 것만 있는 풍경”이라 평했다.



  유족은 부인 이학숙씨와 아들 정훈(기능성다당연구소 대표)씨, 딸 정은(미술교사)·정선씨 등. 발인은 10일 오전 11시. 제주 서귀포 하원동의 가족묘지에 안장된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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