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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청춘들 '그린닥터' 지리산 품에서 어깨 펴다

지리산 둘레길 이음단 청년들과 신원섭 산림청장(왼쪽 5번째) 등이 줄지어 서서 앞 사람 머리를 소고로 쳐주고 있다. 숲의 차분한 기운을 받으며 혈자리를 자극하면 기(氣) 순환을 돕는다는 한방원리다. [김수정 기자]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4명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에 오른다(2010년, 한국갤럽). 건강을 위해서다. 하지만 구직·이직 스트레스로 자신을 돌아볼 틈조차 없는 청년들에게는 먼 얘기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쌓여만 가는 압박감 때문에 신체·정신적으로 건강에 소홀하기 쉽다. 산림청(청장 신원섭)은 20, 30대 청년 20명으로 ‘이음단’을 결성해 지리산 둘레길을 한 바퀴 걷는 ‘청년! 숲길에서 희망을 품다’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 행사는 심신이 지친 청년들에게 희망의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마련했다. 지리산 둘레길을 택한 이유는 숲이 주는 다양한 건강 효과를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다. 지난달 21일 경남 하동을 출발해 구례·남원·함양·산청을 거쳐 이달 5일 다시 하동으로 돌아온 274㎞ 대장정이었다. 행사 5일째인 지난달 25일 신원섭 산림청장·이음단과 함께 전남 구례 구간 4㎞를 동행했다. 이음단 청년들이 ‘그린닥터’로 불리는 지리산 숲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담았다.

산림청 주관 '청년! 숲길에서 희망을 품다'



소나무향 가득한 숲길 오르내리며 힐링



25m까지 자라나는 리기다소나무림 구간을 지나는 이음단 일행
지난달 25일 오후 1시. 서울에서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전남 구례에 위치한 지리산국립공원 남부 탐방안내소. 지리산 둘레길 구례 구간의 출발지다. 빨간 등산용 조끼를 입은 청년들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이번 둘레길 프로그램에 참가한 ‘지리산 이음단’이다. 전날까지 64㎞를 걸었다. 종아리를 톡톡 두드리며 뭉친 다리를 푸는 정선화(31·서울 가락동)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음단에서 맏언니다. 6개월 전부터 항공사 입사를 준비 중이다. 사회 일원이 되기 전 자신감을 얻고 체력도 키우기 위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정씨는 “산행 둘째 날부터 발에 물집이 잡혀 넷째 날 능선 다섯 개를 넘을 때 가장 힘들었다”면서 “저녁 9시가 넘어 가장 늦게 숙소에 도착했는데 동료들이 기다려줘 감동을 받았다”며 글썽였다.



오후 1시30분, 둘레길 4㎞ 행군이 시작됐다. 행렬 맨 앞에 신원섭 산림청장이 섰다. 신 청장은 “소나무 향이 가득한 숲길을 걸으면서 나를 돌아보고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이음단을 격려했다.



이곳 둘레길은 시작부터 오르막길이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 오르막행이 이음단을 힘들게 했다. 다행히 둘레길 양옆에 20m 이상 키가 큰 리기다소나무가 빼곡히 늘어서 있어 태양의 열기를 막았다. 푹신한 흙길에 수풀이 우거져 발의 피로감을 줄이고 청량감을 더했다. 숨이 차오를 무렵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가니 개울가 위로 통나무 다리가 놓여 있었다. 중심을 잡고 다리를 건너니 다시 오르막길이 나왔다. 이렇게 다양한 지형을 걸으면서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갔다 풀렸다를 반복했다. 신 청장은 충북대 교수 재직 시절 산림 걷기 운동과 질병 개선 효과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그는 “다양한 지형을 걸으며 신체에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산림 걷기 운동은 평지에서 같은 강도로 계속 걷는 것보다 당뇨병 환자에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소고로 몸 곳곳 자극하면 스트레스 풀려



이음단 대원 한 명이 수건을 둘러준 둘레길 상징 목조물
이음단은 소나무림 구간에서 잠시 행군을 멈췄다. 한방음악치료 체험을 위해서다. 이승현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음악치료센터장의 안내에 따라 대금 음악을 들으며 심호흡을 했다. 한의학적 관점에서 대금 소리는 숲의 서늘하고 시원한 기운과 가장 가깝다. 이 센터장은 "숲에서 대금 소리를 들으면서 팔을 들고 내리며 심호흡을 하면 숲의 맑은 공기가 체내 깊이 들어와 열로 가득 찬 속을 식혀준다”고 말했다.



한의학에선 인체 장기마다 궁합이 맞는 음계가 따로 있다. 한의학 이론서 『황제내경』에 따르면 상생을 위한 음양오행 중 오행(5행)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다. 이를 전통 5음계로 치환하면 ‘각치궁상우’가 된다. 각치궁상우는 간·심장·비장·폐·신장 순으로 신체와 연관된다. 이 중 간과 관련된 악기가 바로 소고(손잡이가 달린 전통 북)다. 이 센터장은 “분노는 간을 상하게 한다”며 청년실업 증가로 스트레스가 쌓여 가슴이 답답한 20, 30대 청년에게 소고를 이용한 ‘해울음악요법’(꽉 막힌 기운을 풀어주는 것)을 권장했다.



구례에 설치된 둘레길 표지판
소고를 이용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우선 음악에 맞춰 입으로 “쿵따따 쿵따따”라며 큰소리로 반복해 외친다. 다리를 어깨 너비로 벌리고 서서 ‘쿵’에 무릎을 살짝 굽히고 ‘따따’에서 곧게 선다. 그 다음 왼손에 소고를 들고 오른쪽 손바닥으로 소고를 치는데, 쿵따따 박자에 맞춰 세 번씩 친다. 손바닥뿐 아니라 뒤통수·엉덩이·허벅지·종아리 등 다양한 부위를 소고로 친다. 각 혈자리를 자극해 기(氣)·혈액의 순환을 돕는 목적이다.



먼 숲이나 숲 사진 보기만 해도 힐링 효과



두 시간에 걸쳐 둘레길을 걸어 나오자 구례군 수한마을 주민들이 이음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500년 된 느티나무의 큰 그늘에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만든 걸쭉한 생막걸리와 꿀이 든 떡 등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음식은 게눈 감추듯 사라졌지만 잔을 기울이던 한 어르신의 구수한 곡조는 연이어 흘러나왔다. 모두가 흥에 겨웠다. 취업 준비생 지민정(여·27·서울 송파구)씨는 “식자재 유통회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최근 채용 인원이 줄어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둘레길을 걸으며 숲 향기를 맡고 마을에서 인생 선배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우울감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충북대에 따르면 숲길을 산책한 사람은 도시를 걸은 사람보다 긴장·우울·분노·피로가 많이 감소했다. 숲이 주는 건강 효과는 어린이에게도 컸다. 2011년 한국산림휴양학회지에 따르면 신원섭 교수팀이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240명을 대상으로 숲 체험 프로그램(2박3일)을 참가한 120명과 참가하지 않은 120명의 우울·사회성 지수를 비교했다. 그 결과 숲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우울지수가 눈에 띄게 줄고 사회성이 높아졌다. 반면에 숲 체험을 하지 않은 아이들은 별 차이가 없었다.



숲엔 건강물질이 많이 숨어 있다. 운동 효과도 주지만 도시에서 벗어난다는 심리적 효과도 긍정적이다. 피톤치드·음이온은 물론 깨끗한 산소가 다량 발생한다. 신 청장은 “숲에서 2박3일간 머물면 건강이 개선되고 효과가 약 한 달간 이어진다”며 “숲을 매일 가면 좋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겐 주 2~3회, 1개월에 2박3일간 1회 이상 머무르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숲에 갈 여력이 없다면 숲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방법도 있다. 신 청장은 “숲 사진을 보거나 창을 통해 멀리서 숲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정심교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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