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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공간 그곳에서 나를 만나다

1 네덜란드 작가 마크 맨더스의 작품 ‘Working Table’을 보고 있는 관람객. 2 미국 작가 브루스 나우먼의 설치작품 ‘Raw Material with continuos shift-MMMM’.
베니스 비엔날레가 올해로 55회를 맞았다. 1일 개막해 11월 24일까지 계속되는 올해 행사에서는 아르세날레와 지아르디니에 위치한 국가관들을 통해 국가와 세계, 개인과 집단, 인류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제기한 점이 돋보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스펙터클한 물질적인 요소와 가격표에서 벗어나, 예술이 탐구하고 질문하는 미지의 영역,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이 세상의 본질에 한층 다가서고자 하는 시도다. 그 현장을 다녀왔다.

‘2013 베니스 비엔날레’를 가다

3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앞에 설치된 영국 작가 마크 퀸의 작품 ‘Alison Lapper Pregnant’. 4 중국의 반체제 작가 아이 웨이웨이가 독일관에 삼발이 의자 886개를 쌓아 만든 설치작품 ‘BANG’.
5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은 앙골라관의 작가 에드슨 샤가스와 공동 큐레이터 스테파노 라볼리 판세라, 파울라 나시멘토(왼쪽부터).
국가주의 vs 국가 정체성
비엔날레 국가관은 참가국이 자국의 문화를 홍보하는 장이다. 국가적 차원의 재정 지원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가 이루어진다. ‘미술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인식을 허물어버리고자 하는 시도가 이번 비엔날레에서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우호조약 체결 50주년을 기념해 국가관을 맞바꾼 독일과 프랑스다. 이 두 국가는 자국 출신 작가들이 아닌 외국 출신 작가들을 초대하면서 국가의 슬로건을 허물고자 했다. 프랑스는 알바니아 출신의 안리 살라를, 독일은 중국의 반체제 작가인 아이 웨이웨이 등 외국 작가 4명을 내세웠다. 이들은 국가관의 개념을 넘어 세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을 제기했다.
 
영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앙골라관은 에드슨 샤가스의 르완다 내전이나 사회 개발 등에 대한 다큐멘터리적 사진들을 내세우면서 국제 미술계에 앙골라의 정체성을 각인시켰다.
 
특별 언급상을 수상한 일본관은 후쿠시마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의 정체성과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질문했다. 이라크 큐레이터인 타마라 샬라비와 영국인 큐레이터인 조너선 와트킨스의 기획으로 문을 연 이라크관은 사담 후세인 독재 아래 힘들게 작업해 온 이라크 출신 작가들의 폭로를 통해 자유가 박탈당하고 경제적 빈곤 속에 놓인 불안정한 이라크 사회를 보여주었다.

6 체코의 사진작가 조셉 코델카의 작품 앞을 지나가는 관람객.
7 영국관을 장식한 영국 작가 제레미 델러의 ‘The Sandrinham Estate, Norfolk, UK’. 8 중국관을 장식한 중국 작가 헤 윤창의 작품 ‘Transfiguration’.
이 세상 모든 지식과 이미지의 유토피아
비엔날레 본전시의 총감독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이 세상 지식을 총망라하는 지식의 박물관인 ‘백과사전식 전당(The Encyclopedic Palace)’에서 영감을 얻어 전시를 기획했다. 38개국 150여 작가들의 작품을 본 전시에 초대했다.
 
‘예술은 무엇인가?, 작가의 세계는 또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과거 작가들과 학자들, 연구가들의 강박 관념 가까운 내면세계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현대 미술 작가들의 그것과 함께 나란히 전시됐다. 특히 눈길을 끈 작품은 스위스 출신의 심리학자 카를 융(1875~1961)의 사후 40년 후에나 공개되었던 ‘레드북’이었다. 인간 무의식의 심층 구조를 16년간 탐구한 융은 인간 의식과 무의식의 여러 상징적인 이미지를 삽화 위주의 책으로 남겼다.
 
피터 피슐리와 데이비드 바이스의 1981년 작 ‘Suddenly This Overview’는 200여 개가 넘는 소규모 회색 찰흙 조각품으로 인간 세상의 오브제나 이벤트 등을 소규모 스케일로 조각했다. 작품이 드러내는 유머와 세상에 대한 풍자는 카를 융의 신비주의적인 레드북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그 밖에 사라져 가는 중국 유적지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칸 슈안, 베트남인들의 문화와 상상력을 훔치려 한 유럽인들의 과거를 기록하는 단 보, 우주인과 소통하기 위해 지구인들의 삶을 기록한 영상 작업인 골든 레코드에서 영감을 얻은 스티브 매퀸의 작품 등을 통해 관람객은 이미지 속에서 길을 잃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국 출신 작가 티노 세갈은 소그룹의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 움직이면서 낮은 소리로 속삭이는 퍼포먼스 작품으로 미술계 최고의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영국 가디언지의 평론가인 아드리안 셜이 언급했듯 세갈의 작업은 ‘인간의 소통과, 상황과 갈등의 예술’을 그저 인간의 몸과 목소리로 보여주었다.

9 한국관에서 포즈를 취한 김수자 작가. [김수자 스튜디오] 10 김수자 작가의 ‘호흡: 보따리’. 한국관 유리벽 외벽에 반투명 필름을 붙여 건물 자체를 작품으로 만들었다.
작품이 없는 거대한 하나의 보따리, 한국관
수상 버스인 바포레토를 타고 비엔날레의 본전시와 국가관들이 자리 잡고 있는 지아르디니로 가는 길.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앞에 설치된 영국 작가 마크 퀸이 만든 ‘숨(Breath)’이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임신한 알리슨 래퍼(장애인 작가)를 조각한 이 작품은 무려 11m에 달했고 밤이 되면 형광으로 빛을 냈다. 이 작품은 본래 이상적 미와 영웅적 여성성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취지로 2005년도에 대리석으로 제작됐는데 이번에 베니스에서 대규모로 재현됐다. 거대하게 부풀려진 이 조각 작품은 그러나 부두에 정박한 초대형 요트들처럼 번쩍거리는 괴물로도 보였다.
 
한국관에 설치된 김수자 작가의 작품 ‘호흡:보따리(To breathe: Bottari)’는 마크 퀸의 작품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교를 할 수 있는 작품이 없었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 한국관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신발을 벗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들어간 한국관에는 작품이 없었다. 작가가 구현한 작품은 본래 유리로 된 원형 구조의 한국관 유리벽에 반투명 필름을 설치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한국관 내에 무지갯빛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도록 한 것이었다. 변화하는 외부 빛의 강도에 따라 한국관 내부로 퍼져나가는 빛은 다양한 형태로 굴절하고 반사하고 변화했다. 그 공간에서 작가의 숨소리가 녹음된 사운드 퍼포먼스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가 전시 공간을 채웠다.
 
한국관 내부에 설치된 또 다른 작품 ‘호흡:정전’은 블랙홀 같은 어두운 공간에서 빛의 공간과는 대조적으로 절대적인 고요와 어둠에 대한 공포, 자궁 속에서의 생명력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김수자 작가는 “한국관의 유리벽을 외부와 자신의 몸을 연결하는 피부로, 그리고 빈 공간은 관람객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국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보따리가 되기를 의도했다”는 것이다. “거대한 보따리로 상징되는 한국관은 인간과 자연, 어둠과 빛, 남과 여, 음과 양의 상호 관계가 비물질적으로 구현된 작품”이었다.
 
한국관 커미셔너인 김승덕 큐레이터는 한국관 기획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아르디니의 화장실 터였던 본래 건물을 한국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의 조건이 베니스를 안고 있는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건물 구조 자체를 보존하는 조건이었다. 이번에 큐레이터가 되면서 나는 건축물 자체를 메인 이슈로 삼고 싶었고 작가에게 이 건축물을 매개체로 비물질적인 작업을 선보일 것을 제안했는데 김수자 작가는 이를 100% 이루어냈다. 나는 김수자 작가가 한국관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국제 미술계에 인식되는 것이 아닌 이 작품으로 먼저 인정받기를 바랐다.”

2011년도 일본관 큐레이터였던 유카 우에마추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훌륭한 설치였다. 오래전부터 김수자 작가의 작품을 주의 깊게 봐왔었기에 이 설치가 더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건축적 제약을 해결책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세계 미술계에 침묵과 철학으로 메시지를 남긴 김수자 작가와 김승덕 큐레이터에게서 마크 퀸의 거대한 조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영웅적 여성상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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