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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4050 마음의 병, 우울증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속내 털어놓을 곳도 없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4050세대는 “지천명은 커녕 내 마음도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 첫 구절이다. 저자는 21세기를 지배하는 주요 질병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닌 우울증, 주의력결핍 과잉 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등 신경증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앓는 병이 바로 ‘우울증’으로 대표되는 정신질환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실태 조사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 중 지난 1년 사이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368만 명에 달했다. 경제적 손실도 만만찮다. LG경제연구원은 우울증과 자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11조7000억원이나 된다고 밝혔다. 우울증 탓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휴업이 잦아지면서 생기는 작업손실 비용도 6조5000억원이나 됐다.

우울할 틈도 없는 생존 경쟁, 환자 83% "병인 줄 몰랐다"
퇴근만 하면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리 지르면 좀 풀린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자해·자살은 물론 살인까지 감행할 수 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개그우먼 이성미씨는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수면제 70알을 먹고 자살하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지난 1월 부산에서는 산후 우울증을 앓던 산모가 두 달 된 아들을 살해했고, 지난해 2월엔 30대 주부가 두 살 난 딸을 안고 아파트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배우 이병헌을 비롯해 정두언 국회의원과 개그맨 유세윤·이현주 등 수많은 유명인도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자살한 연예인도 적잖다. 소아 우울증, 산후 우울증, 갱년기 우울증, 노인 우울증 등의 신조어들은 전 세대가 우울증의 위협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국의 40, 50대가 겪는 무기력감과 우울함은 주목할 만하다. 평범하고 착실한 중년층 사이에서도 적잖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트레스를 표현할 줄도, 관리할 줄도 몰라 건들면 깨지는 ‘유리 멘털’을 가졌다. 결국 지친 몸은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앓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렇게 우울증을 호소하며 치료받은 40, 50대는 2008년 18만7037명에서 2010년엔 19만8880명으로, 지난해에는 22만3537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머리 많이 쓰는 사람 작은 일에도 예민”



 박모(47)씨는 요즘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박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남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은행원이던 그는 1997년 서슬 퍼런 외환위기에서도 살아남았는데 50세의 벽을 넘지 못하고 퇴직해야 했다. 같은 은행을 계약직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회사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 “능력 있는 후배들 틈바구니에서 점점 작아져 갔고, 상사 눈치를 보며 회사의 ‘밥버러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고 했다. 20대 후반인 두 자녀는 아직도 취업 준비 중이다. 그는 “잠을 설치는 날이 늘고 한숨도 많아졌다”고 털어놨다. 소화가 안 되고 심장소리가 크게 느껴져 병원을 찾았지만 만성위염 외에 별다른 병은 발견되지 않았다.



 우울증은 처음엔 수면 문제로 드러난다. 내재된 스트레스가 심할 때 오는 병이기 때문에 잠을 설치거나 죽은 듯 잠만 자는 형태를 띤다. 식욕을 잃거나 두통·소화불량을 호소하는 것도 비슷한 증상이다.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투하는 병사들이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밤을 새우는 것처럼 4050세대의 우울증 환자들은 삶에 대한 위기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깊은 잠을 못 이루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한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들 대부분 검사해 보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건망증도 종종 나타난다. 직장인 장모(58)씨는 얼마 전 자식들 앞에서 통곡을 했다. 치매가 온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장씨는 “여행 가서 차 키를 잃어버려 한참을 고생했다. 한참 후 딸이 내 재킷에서 찾았다고 하는데 난 그 옷을 입고 간 기억조차 나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폐 끼칠 게 아니라 차라리 굶어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라며 고개를 떨궜다.



 전문가들은 극심한 경쟁사회의 스트레스로 인해 기억력이 감퇴하고, 이게 우울증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윤 교수는 “우리 사회는 철저히 이성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감성이 메마르기 쉽다”며 “감성은 기억과 사고의 배터리 역할을 하는데 감성이 소진되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람 이름이나 명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건망증뿐 아니라 ‘삶에 대한 건망증’도 만만찮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박씨의 고민 역시 삶의 의미를 잊어버리는 건망증의 단면인 셈이다.





 최근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은 ‘분노 조절 장애’다. 회사원 엄모(53·여)씨는 요즘 스스로를 ‘싸움닭’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퇴근만 하면 화를 주체할 수 없어서다. “나도 모르게 자식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진상을 부리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엄씨는 “멀쩡한 옷을 한두 번 입다가 백화점에서 바꿔내라며 싸움을 하거나 스팸 전화에 기다렸다는 듯 소리소리를 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며 “회사에서 내내 을(乙) 노릇을 하다 보니 어디서든 갑(甲)질을 해야 풀리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모(28·여)씨는 “우울증인 엄마가 이유 없이 화를 내고 집안의 물건들을 집어던지며 ‘죽어버리겠다’고 가족들을 협박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미안하다’고 한다”며 “그런 엄마를 보는 가족들도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하태현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뇌는 피곤하면 전투적으로 바뀌어서 작은 일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며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 집에서도 심적 여유를 가지지 못하면서 쉽게 짜증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울’한 증상만 우울증이 아니라는 얘기다.



 “다 때려치고 귀농하고 싶다” “무조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말 역시 우울증의 신호다. 멀리 가고 싶을수록 우울 증세가 심각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잇따라 사업에 실패한 채모(49)씨도 귀농을 꿈꾸며 고향에 내려갔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는 “그나마 얼굴 맞대던 가족과도 떨어지니 오히려 외로움이 심해지고 삶이 단조로워져 ‘이대로 내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겠지. 자살해 버릴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윤 교수는 “떠나고 싶다는 건 현실이 무겁고 감당하기 어려워 도망가고 싶다는 심리적 회피 반응”이라며 “막상 행동에 옮기는 경우도 많지 않고, 실제 여행을 떠나거나 귀농을 하더라도 증세가 호전되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마땅한 탈출구 없어 술·도박에 빠져



 4050세대가 ‘제2의 사춘기’라고도 할 수 있는 우울증을 앓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이들이 느끼는 경제적·사회적 위기감을 첫 손에 꼽았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환경이 너무 가혹하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게 쉽지 않고,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이 계속되면서 아무것도 대비하지 못한 채 생존투쟁에 내몰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생존 위기감에 사로잡힌 4050세대 직장인들은 우울도 사치로 여길 만큼 삶의 궁지에 몰려있는 게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40·50 우울증 환자들 중에는 일 처리에 빈틈이 없고 늘 스스로를 채찍질해온 ‘바른 생활 사나이’가 많다”며 “이런 모범생들이 능력은 예전 같지 않은데 자식의 독립은 요원하고, 평균수명은 갈수록 늘면서 자기도 모르게 우울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과 지향적 현실에 치여 자아를 상실한 세대에게 찾아오는 병이라는 주장도 있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50대는 더 이상 성취할 게 없어 허탈감에 빠지기 쉬운 시기”라고 진단했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은 부모 손을 벗어나게 되고 회사에서도 더 이상 승진하기 힘든 현실에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주인공이 아닌 객으로 전락하면서 말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된다는 얘기다. 류 교수는 “산업화에 발맞춰 열심히 일했는데 젊은 층으로부터는 ‘수구꼴통’이라고 불리고 ‘일만 하고 삶을 즐길 줄 모른다’며 핀잔이나 듣는 게 50대”라고 덧붙였다.



 정성호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라 일컬어지는 50대들이 사회적으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덜 느낄 텐데 안팎에서 소외당하다 보니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규섭 국립서울병원장은 전통적인 가치의 상실도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봤다.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자식을 아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왔는데, 이젠 그런 가치들을 고집하면 미련한 사람으로 치부돼 소외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정신과는 미친 사람 가는 곳’ 편견도 발목



 문제는 40, 50대가 감정 표현에 서투르다는 데서 찾아온다. 특히 남성의 경우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윤 교수는 “우울증은 여성이 많지만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은 남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괴로움을 공유해야 치유도 가능한데 중년층은 공감은커녕 감정을 드러내는 것조차 힘들어한다”며 “정서적 허무나 허기, 괴로움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 원장도 “우리 사회의 부모는 우울해도 안 되고 힘들어도 안 되는 존재였다”며 “이 때문에 힘들어도 호소할 데가 없어 병을 키우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감정과 분노 조절에 서툴다 보니 우울증에 걸리면 술이나 담배·도박 등에 중독되기도 하고 자살이나 살인 등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몸이 정신의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셈이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용인에 사는 50대 편의점 주인이 본사 직원이 보는 앞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지난 3월 대구에서는 우울증을 앓는 50대 시어머니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만삭의 며느리를 목 졸라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남자의 자살률(10만 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1984년 12.5명에서 2011년 43.3명으로 급증했다.



 한국인들은 일반 우울증보다 자살 위험도가 두 배 높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 우울증은 뇌의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면서 스스로를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충동성이 증가하는 우울증으로, 한국과 중국처럼 사계절 변동이 큰 지역에서 많이 생긴다. 술을 마시면 자살 충동이 급격히 증가하는 특성도 있다. 전홍진 교수와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인 우울증 환자 중 42.6%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에 걸린다. 동남아시아인보다 1.4배 이상 높은 확률이다.



 이렇듯 4050세대의 정신건강은 국가 과제로 떠오를 정도로 중요한 문제가 됐지만 치료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정신질환에 걸린 적 있는 사람 중 15.3%만 정신건강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았다. 미국 39.2%, 호주 34.9%, 뉴질랜드 38.9%에 비하면 현격히 낮은 수준이다. 이중규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영국인은 병을 인지하고 첫 치료를 받을 때까지 30주가 걸리는데 한국인은 84주나 걸린다”며 “조기치료가 중요한데 병이 깊어진 뒤 병원을 찾으니 치료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낙인 찍히거나 사회생활에서의 불이익을 우려해 치료를 기피하는 경우도 적잖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게 드러나면 승진 대상에서 누락되거나 보험 가입이 어려워질까 봐 쉬쉬하다가 병을 더욱 키우게 된다는 지적이다. “아버지가 정신병자인 집에서 딸이 제대로 시집이나 갈 수 있겠느냐”며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도 많다. 이에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의료기관이 정신질환자 진료를 한 뒤 약을 처방하지 않았을 경우 건보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할 때 F코드(정신질환 질병) 대신 Z코드(상담)를 입력하도록 했다. 지난달에는 민간 보험회사가 상담력이 있는 환자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도 입법예고했다.



 더 큰 문제는 환자들 대부분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2011년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82.7%는 ‘기분이 좋지 않을 뿐 우울증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답했다. 명확한 증상이나 통증이 동반되지 않기 때문에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환자도 많다. 하 원장은 “4050세대는 ‘정신과는 머리가 돈 미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우울증세가 나타나더라도 선뜻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한다”며 “치료하다 보면 ‘병원에 간들 묘수가 있겠느냐’는 말도 많이 하는데, 웬만한 우울증은 얼마든지 관리 가능하고 치료 시기가 빠를수록 회복도 수월하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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