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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신경영 20주년 … 36만 임직원에게 e메일

1993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주요 임원과 해외 주재원들을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된다”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선언했다.


“앞으로 우리는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1993년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 2013년 "1등의 위기와 싸워라"



 이건희(71) 삼성전자 회장이 7일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전 세계 임직원에게 e메일을 보냈다. 메일은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 등 4개 국어로 작성됐다. 수신인은 삼성그룹 국내외 임직원 35만7000여 명. 이 회장이 임직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룹 임원을 모아놓고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한 지 딱 20주년 되는 날이다. ‘다 바꾸라’던 이 회장의 메시지는 20년 만에 ‘1등의 위기와 싸워라’로 변했다. 추격자 삼성이 1등 삼성이 된 성장의 역사가 그 속에 있다. 100년 기업을 향한 미래 과제 역시 메일에 담겼다.



 이 회장은 지난날에 대한 소회로 e메일을 시작했다. 그는 “오늘은 신경영을 선언한 지 20년 되는 뜻 깊은 날이다”며 “낡은 의식과 제도,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관행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양 위주의 생각과 행동을 질(質) 위주로 바꾸어 경쟁력을 키웠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과거의 영화를 경계라도 하듯 그의 시선은 다시 미래로 향했다. 그러면서 ‘창조경영’이라는 키워드를 꺼내 들었다. 이 회장은 “지금 우리는 개인과 조직·기업을 둘러싼 모든 벽이 사라지고 경쟁과 협력이 자유로운 사회, 발상 하나로 세상이 바뀌는 시대가 됐다”며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 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이웃, 지역사회와 상생하면서 다 함께 따뜻한 사회,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자”며 “이것이 신경영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규정했다. 임직원에게 새로운 목표를 심어주는 ‘신경영 2.0’이다.





상명하달식 조직문화 바꿔



2013 지난달 22일 이건희 회장이 서울 이태원 승지원에서 제임스 호튼 코닝 명예회장을 만났다. 삼성과 코닝사는 합작 40주년을 맞아 양사 간 협력관계 증진과 세계경제 현안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두 회사는 LCD와 OLED 기판 유리 등에서 협력해 왔다. [사진 삼성]


1987년 11월 20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했다. 2년 전 진단받은 폐암이 원인이었다. 2주 후, 가장 젊은 아들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2대 회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취임 당시 45세의 젊은 회장은 패기 있게 선언했다. “삼성이 우리 세대 안에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도약하는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견인차가 되고자 합니다.”



 이 회장은 당시 국내 1등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의 성장동력이 멈추는 것을 걱정했다. 그는 “인공위성은 대기권 밖으로 10~15분, (보잉)747은 1~2분 사이에 3만4000피트까지 올라가야지, 중간에 떨어지면 폭발하든가 주저앉아 버린다”고 말했다. 국내 일류로 올라온 삼성이 세계 일류로 가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불량률은 갈수록 높아졌다. 세계를 주름잡던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 업체의 노하우를 따라가느라 후발업체인 삼성은 숨이 턱까지 찼다.



 문제는 조직 내부에 있었다. 세계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삼성은 예전에 해왔던 상명하달식의 구태의연한 조직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답답해했으나 개혁은 쉽지 않았다. 당시 막강한 실력행사를 해왔던 비서실부터 꼼짝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방의 한 공장을 방문하면 사전에 비서실에서 “회장님이 가시니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전념하라”는 전갈을 내리기도 했다.



 이 회장은 어느 순간부터 외부 활동을 끊었다. 그래서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묵묵히 내부에서 조직의 변화를 유도했다. 하지만 화석처럼 굳어버린 조직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질’ 경영은 좀처럼 정착되지 않았다. 파격이 필요했다. 1993년 이 회장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삼성 임직원을 불러 모았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은 그렇게 나왔다.





"소프트기술 악착같이 확보하라”



스마트폰 판매량 1위, TV 매출 1위, 모니터 매출 1위, D램 매출 1위…. 신경영 선언 이후 20년간 삼성은 양과 질 측면에서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이뤘다. 93년 29조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380조원이 됐고 8000억원이던 이익은 38조원이 됐다. 삼성전자의 이익만 비교했을 때 1993년 2100억원에서 지난해 23조원으로 109배나 뛰었다.전 세계 1등 제품은 휴대전화·TV·반도체·2차전지 등 20개에 달한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지금 수준으로는 잘해봐야 1.5류”라는 쓴소리를 했던 이 회장이 ‘1등의 위기’를 언급할 수 있게 된 건 그 자체로 삼성의 성장을 의미한다.



 신경영 선언은 급격한 변화를 불렀다. 93년 이 회장의 분노는 미국 가전매장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먼지가 쌓인 채로 전시돼 있던 삼성전자 가전제품에서 시작됐다. 93년 이후 베스트바이 매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장 큰 크기의 ‘삼성전자 제품 체험관’이 생겼다. 미국 내 1400여 개 베스트바이 매장에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태블릿PC·카메라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됐다.



 곡절도 많았다. ‘양에서 질로 전환하자’는 이 회장의 선언 후 삼성은 불량품이 있을 경우 해당 생산라인을 전면 가동 중단하는 등 품질 강화에 집중했다. 무선전화 사업부가 완제품 생산을 급박하게 추진하다 제품 불량률이 11.8%까지 올랐다는 보고를 받은 이 회장이 95년 3월 무선전화 불량품 15만 대를 모아놓고 ‘무선전화기 화형식’을 했다. 당시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이런 엉터리 물건을 팔고 있는가”라며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자금 사건으로 잠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2010년 복귀한 이 회장은 곧바로 ‘신경영 바로 세우기’에 나섰다. 2011년 6월 이 회장은 “삼성그룹 전반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다”고 다그쳤다. 이를 통해 해이해진 조직 기강을 다시 세웠다. 아이폰이 엄청난 붐을 일으키던 2011년 이 회장은 “5년 후, 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소프트기술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악착같이 소프트기술을 확보하라”며 소프트 인력 확보에 주목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소프트 파워로 무장한 갤럭시 S3와 노트를 앞세워 스마트폰 시장을 평정할 수 있었다.





‘100년 영속기업’을 만든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위기”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특정사업에 이익이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쏠림 현상에 삼성전자 외 계열사를 ‘삼성 후자’라 부르는 우스개까지 나왔다.



 지난해 기준 삼성그룹의 매출은 380조원이다. 이 중 삼성전자의 매출은 그룹 전체 매출의 53%에 해당하는 201조원이다. 삼성전자에서도 휴대전화 사업이 주를 이루는 IM(IT·모바일)사업부의 매출은 108조5000억원이다. 이는 그룹 전체 매출의 28.5%에 달한다. 영업이익의 편중은 더 심한 편이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중 IM사업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26.1%에 불과했지만 2011년 51.9%로 절반을 넘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66.9%로 올라갔다. 삼성전자 영업이익 중 3분의 2가 휴대전화 사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삼성은 스마트폰에 치중돼 있는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바이오와 헬스, 신재생에너지, 로봇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있다. 그러나 5대 신수종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회장이 다시 받아든 과제다. 삼성 관계자는 “신성장동력은 1938년 창업한 삼성이 100년 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도약대”라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BMW와 피아트 등 지금까지 사업분야와 거리 있는 영역의 기업들과 교류를 맺는 모습에서 100년 영속기업을 만들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상 기자



신경영 20주년 e메일 전문



사랑하는 삼성가족 여러분



오늘은 신경영을 선언한 지 20년이 되는 뜻 깊은 날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오직 한 길로 달려왔습니다. 임직원 여러분의 열정과 헌신으로 이제 삼성은 세계 위에 우뚝 섰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삼성을 사랑하고 격려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임직원 여러분



20년 전 우리의 현실은 매우 위태로웠습니다. 21세기가 열리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나부터 변하자,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낡은 의식과 제도,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관행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양 위주의 생각과 행동을 질 중심으로 바꾸어 경쟁력을 키웠습니다.



세계 각지의 임직원 여러분



지금 우리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조직, 기업을 둘러싼 모든 벽이 사라지고 경쟁과 협력이 자유로운 사회, 발상 하나로 세상이 바뀌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1등의 위기,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하며, 신경영은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위해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지난 20년간 양에서 질로 대전환을 이루었듯이 이제부터는 질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 사업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 나가야 합니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창조적 역량을 모읍시다.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더 무거워졌으며, 삼성에 대한 사회의 기대 또한 한층 높아졌습니다. 우리의 이웃, 지역사회와 상생하면서 다 함께 따뜻한 사회,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갑시다. 이것이 신경영의 새로운 출발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초일류 기업, 자랑스러운 삼성을 향한 첫 발을 내딛고 다시 한번 힘차게 나아갑시다.



2013년 6월 7일



회장 이 건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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