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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백상예술대상 TV대상 받은 유재석

유재석에게 귀 파는 포즈를 취해달라는 건 실례 같았다. 대학개그제로 데뷔할 때(작은 사진 위) ‘장려상의 악몽’을 떠올릴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는 “아이고, 괜찮습니다. 그런데 왼쪽 귀였던가, 오른쪽 귀였던가 헷갈리네요”라며 흔쾌히 촬영에 응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민MC’ 유재석(41)과의 만남은 시종 유쾌하고 편안했다. 요즘 살아가는 얘기에 힘들었던 무명시절을 회상할 때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인터뷰하지 않는 연예인’으로 유명했던 그가 올해 일간스포츠가 주최한 제4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을 계기로 기자와 마주 앉았다. 쉴 새 없는 그의 토크에 인터뷰는 예정됐던 1시간 반을 훌쩍 넘겨 2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모범답안의 종결자’라는 주변 지인의 전언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30여 분이 지나자 그도 긴장을 풀고 마음속 얘길 조금씩 꺼내 놓았다. 지난 1일 ‘해피투게더’ 녹화 현장에서 한바탕 웃음으로 시작한 만남은 잔잔한 세 번의 작별 포옹으로 마무리됐다.

20대엔 노력 없이 늘 남 탓만 했다
남은 건 기나긴 무명생활 8년
그 깨달음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인터뷰 안 하는 이유? 쑥스러워서



 “하하하.”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순간 강호동이 온 줄 알았다. 들숨이 아닌 날숨 발성에 프로MC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토요일에 죄송합니다. 월화는 런닝맨, 수목은 무한도전 촬영이 있고 금요일엔 밀린 스케줄도 소화해야 해서 부득이하게, 하하하.” 사우나 복장에 가발 쓴 모습 그대로 나타난 그는 “반갑다” “죄송하다”는 인사를 거듭 건넸다.



 - 얼마 만에 하는 인터뷰인가.



 “한두 번 살짝 하긴 했는데 이렇게 정식으로 하는 건 2005년 이후 처음인 듯싶다.”



 - 늘 게스트를 초대해 얘길 들으면서 정작 본인은 왜 인터뷰를 안 했나.



 “(가발을 긁적거리며) 개인적으로 그런 걸 좀 쑥스러워한다. 부끄럽기도 하고. 또 기획사를 저 혼자 하다 보니 그 많은 매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더라.”



 - 옛날얘기부터 해보자. 가족관계는 어떤가.



 “서울에서 태어났고 여동생 둘에 외동아들이다. 부모님은 워낙 엄격한 분이셨다. 혼도 많이 났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 거짓말하지 마라,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은 하지 마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어렸을 땐 왜 매일 똑같은 얘기만 하나 싶어 답답할 때도 많았지만 그 덕분에 나쁜 짓은 안 하고 큰 것 같다.”



 - 어렸을 땐 어떤 아이였나.



 “참~ 재밌는 아이였다. 장난 무지하게 치고. 소풍이나 학교 축제 때는 오락부장을 도맡았다. 공부도 초등학교 땐 열심히 했다. (약간 목소리를 깔며) 이런 건 좀 알고 계시라고, 하하.”



 - 언제부터 개그맨을 꿈꿨나.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 웃기는 걸 너무 좋아했고, 자연스레 개그맨이 인생의 목표가 됐다. 1991년 서울예대에 들어가자마자 KBS 대학개그제에 나갔다. 교수님은 대학은 졸업하고 도전하라셨지만 너무 개그맨이 되고 싶었고, 결국 장려상을 받았다. 방송국 생활이 이어지면서 1학년을 4년 다녀야 했다. 학점이 당시 선동열 선수 방어율과 비슷했다. 0.98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2학년에 올라갈 수 있었겠나. 4년째 되니까 학교에서 이젠 결정하라고 연락이 왔고, 고심 끝에 자퇴를 택했다.”



 - 장려상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잠시 말을 멈췄다가) 그때 난 너무 건방졌다. 어렸을 때부터 재밌다는 얘길 많이 듣다 보니 내가 개그계에 데뷔하는 순간 난리가 날 줄 알았다. ‘TV 속에서 봤던 선배님들도 나를 쓰려고 안달이 날 거다. 최소한 금상은 받을 거다.’ 그런데 장려상에 나를 부르는 거였다. ‘잘못됐다. 큰 착오가 생겼다. TV 보는 시청자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다.’ 그래서 항의 표시로 상 받으러 나가면서 손가락으로 귀를 팠다. 참…, 사회를 모르고 세상을 몰랐던 거다. 방송국에 들어오니까 선배님들이 찾긴 찾았는데 내가 원하던 방향과는 전혀 달랐다. 그 귀 파던 애 누구냐며, 어디 건방지게 방송에서 귀를 후비느냐며. 지금 생각하면 개그맨이 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인데 그땐 진짜 심하게 착각하고 살았다. 나의 무명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채로.”



 - 무명시절이 7~8년이나 갔다. 뭐가 문제였나.



 “돌이켜 생각하면 너무 간단하고 쉬운 문제다. 노력을 안 했다. 그리고 늘 남 탓만 했다. 내가 못하는데 내 탓은 안 하고 ‘내 그릇을 너무 몰라주는 거 아냐. 내가 이 정도는 아니잖아’ 이런 생각만 가득 차 있었다. 단역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창피한 마음에 얼굴 감추기에 급급했다. 어느 날 폭탄 맞은 역할이 주어졌다. 그럼 폭탄 머리를 하고, 검댕이 분장을 하고, 옷도 최대한 처절하게 찢어서 잠깐이라도 그 배역에 올인해야 하는데 그땐 어떻게 하면 얼굴이, 머리가 좀 더 깨끗하게 나올까만 신경 썼다.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짜내고, 뭘 하면 재밌을까 고민하긴커녕 왜 자꾸 이런 역할에만 쓰지? 저 PD는 왜 날 싫어하지? 왜 나를 알아주지 않지…. 매일 잠자기 전에 이렇게 남 탓만 했다.”



 그는 “그게 나의 20대였다”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차라리 놀 거면 확실하게 놀던가, 기타를 치거나 춤을 추거나 뭐라도 열정적으로 했다면 후회가 없을 텐데. 나의 20대에서 가장 후회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들, 멍하니 보낸 시간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허송세월하며 보낸 것,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목표도 없이 그렇게 남 탓만 하고, 남 욕만 하며 보낸 시간이.”



‘한 번만 기회 달라’ 매일 밤 기도



대학개그제로 데뷔할 때(가장 위), 가운데 사진은 메뚜기 탈을 쓴 유재석. 밑의 사진은 2008년 나경은 아나운서와 결혼식 때의 모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포기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



 “점점 캐스팅은 안 되고, 주변인처럼 방송국을 떠도는 나를 보면서 이럴 바엔 학교로 돌아가자 싶었다. 그때 김용만·박수홍 등 동기들이 ‘얘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다’며 추석특집에 날 불렀다. 당시 한창 인기 있던 뉴키즈 온 더 블록을 패러디하는 코너였다. 근데…, 그때 울렁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습 때는 잘하다가도 무대만 서면 덜덜 떠는. 오락부장은 친구들 앞이니까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대사도 전혀 생각이 안 나고. 구제불능이 따로 없었다. 결국 춤을 다 틀렸다. 동료들은 왼쪽으로 가는데 나 혼자 오른쪽으로 가고, 입술도 파르르 떨리고, 허허. 당시 내겐 매 순간이 오디션 결승처럼 느껴졌다. 이걸 잘해서 반드시 인정받으리라. 그러다 보니 더욱 부담이 컸다.”



 울렁증은 이후 그의 무명시절과 늘 함께했다. 얼마 뒤 ‘한바탕 웃음으로’의 ‘풀뿌리 의사당’ 코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좌관 역할의 유재석은 큐 사인이 난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NG, NG, 또 NG. 두 번째 NG 땐 그나마 첫 문장이라도 반복했지만 세 번째는 입조차 열지 못했다. 방청객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PD가 마이크를 잡았다. “유재석씨 부분은 빼고 가겠습니다.” 이걸 어떡해. 발만 동동거리는 그를 더욱 좌절케 한 건 이젠 누굴 탓할 수도 없게 됐다는 점이었다.



 1994년 말 그는 방위의 길을 택했다. 군 생활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평소엔 전혀 안 하던 기도를 그땐 매일 밤 했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제대 후 연예가중계 리포터 자리가 났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의 울렁증이 도졌다. “이번엔 잘해보자며 백번 넘게 대본을 외웠다. 심지어 자꾸 틀리는 부분에 표시까지 해뒀다. 근데 막상 임백천 MC의 소개를 받고는 허둥대다가 훨씬 앞부분에서 틀리고 말았다. 하지만 눈은 이미 딴 데를 보고 있고. 또다시 뒤죽박죽에, 글씨는 마구 춤추고…. 결국 리포터도 잘리고 말았다.”



 그후 그는 이렇게 결심했다. 서른 살까지도 비전이 안 보인다 싶으면 다른 길을 선택하라는 계시인 줄 알자고. 대신 그때까진 최선을 다해보자고. 여전히 주목받진 못했지만 열심히 하는 모습에 PD들 사이에서 ‘유재석, 쟤 그래도 성실하네’라는 얘기가 돌기 시작했다.



 - 언제부터 아, 내가 좀 뜨는구나 싶었나.



 “97년 ‘코미디 세상만사’의 ‘남편은 베짱이’에서 처음 주역을 맡았다. PD가 내게 기회를 준 거였다. 정말, 정말 열심히 했다. 나름 인기도 높아서 난생처음 단독 인터뷰도 해봤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코너가 막을 내려야 했다. 아무리 콩트지만 이런 시기에 백수가 주인공으로 나오면 시청자들이 불편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허탈해하는 그에게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서세원쇼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하지만 울렁증은 쉽사리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방송을 보면 말하면서 입도, 손도 벌벌벌 떨고 있었다. 근데 얘기도 찌질한데 떨기까지 하니까 의외로 시청자들이 재밌어 했다. 과연 이런 얘길 듣고 사람들이 웃을까 했는데 현장 반응에 나도 깜짝 놀랐다. 메뚜기나 베짱이로만 알려지던 내가 드디어 유재석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거다. 서세원쇼는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 기나긴 무명의 터널을 마침내 빠져나온 건가.



 “웃음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싶었는데 너무 초반에 깨지고, 초라해지고, 자존심이 무너지고,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면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됐다. 뭐가 문제일까, 내가 뭘 착각하고 살아왔던 걸까, 나 자신에게 끝없이 질문을 해댔다. 정말 많이 울었고, 많이 반성했다. 문제는 역시 나만 생각했던 거였다. 콩트는 공동작업이었다. 야구팀도 각자 포지션에서 맡겨진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 게 중요하지 않나. 모두가 4번타자가 된다고 이기는 건 아니잖나. 근데 나는 팀이야 이기든 말든 일단 내가 튀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상대방이 웃기면 리액션을 해줘야 하는데, 내가 웃으면 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편협한 생각에 일절 반응을 안 했다. 내 머릿속엔 오로지 주인공뿐이었다.”



 그 무렵 한 선배가 그에게 물었다. “세원이형이 왜 바닥을 구르면서 웃는 줄 아니?” “그야 재밌으니까, 웃는 스타일이 다르니까….” “그게 아냐. 천하의 세원이형이 그렇게 웃으면 시청자도 더 재밌어 하고 얘기하는 사람도 더 신나지 않겠어.” 맞는 말이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고 했다. 그동안 뭐가 잘못됐었는지를.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메뚜기



 유재석을 얘기할 때 늘 하는 말이 있다. 개인기도, 인물도, 카리스마도, 그 흔한 유행어도 없는 ‘4무(無) 예능인’. 그런 그의 장수 비결은 뭘까. “그건 진짜 모르겠다. 그래서 늘 감사할 뿐이다. 예전 기획사 대표가 항상 그랬다. ‘너는 왜 카리스마가 없냐’고. 근데 없는 건 어쩔 수 없잖나. 어떻게 얻는 건지도 모르겠고. (갑자기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카리스마는 첫째 이렇게 해야 하고, 둘째 셋째 저렇게 해야 갖출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60일 숙성하고 발효시키면 생겨납니다. 이러면 좋겠는데…. 얼마 뒤 대표에게 말했다. 죄송한데, 카리스마가 없어서 불편한 적도 없었고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으니 형이 사줄 수 있는 게 아니면 난 그냥 이대로 살겠다고.”



 - 남을 편안하게 해준다, 게스트보다 말을 적게 한다는 평을 받는데 MC로서 나름의 철학이 있나.



 “그런 걸 의식하고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상황에 충실할 뿐이다. 프로를 위해 내가 만약 독설을 해야 한다면 기꺼이 할 거다. 지금의 이미지만 고집할 생각은 없다. 철학? 딴 건 없고, 게스트에게 늘 이 말은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예능 나와서 웃음 주는 거, 결코 쉽지 않다. 나도 그런 시절 겪어봐서 잘 안다. 부담 백배다. 하지만 좀 안 웃기면 어떤가. 오늘 히트 치면 물론 좋겠지만 오늘이 전부는 아니잖나.”



 - 지금 위치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나.



 “음…, 솔직히 이렇게까지 뜰 줄 몰랐다. 그저 밖에 나가 사인받는 정도면 정말 성공이겠다 했는데 지금은 이게 현실인가 싶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만 생각하려 한다. 이번 주 뭘 하면 재밌을까. 카리스마도 그렇듯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걸 복잡하게 고민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 언제가 전성기라고 생각하나. 이미 지나갔나? 지금인가? 아니면 아직 안 왔나?



 “바람은 아직 안 왔으면 싶은데(웃음). 끝나는 그날까지 전성기였음 좋겠지만 그게 가능한 일은 아닐 테고. 언젠간 ‘유재석도 갔네’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나.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고, 막상 그 순간이 닥쳐도 당황하진 않을 것 같다. 허락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자 다짐하면 별로 두려울 게 없다. …물론 가끔 생각은 날 거다. 정말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나. 아들이 컸을 때 ‘나 옛날엔 잘나갔다’고 하면 과연 믿을까 싶기도 하고.”



 - 메뚜기도 한철이다?



 “그 한철이 오래~오래 갔으면, 하하하. 아침 일찍 나와 동료들과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이 현실, 이 시간이 지금 내겐 너무 소중하다.”



 - 출연 중인 세 프로의 느낌이 다 다를 텐데.



 “우선 무한도전은 이렇게까지 오래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또 그 안엔 우리 인생이 담겨 있다. 명수형이 결혼했어요, 민서가 태어났네요, 아이고 축하합니다, 무한도전에 40대가 처음 나왔어요, 저도 아기가 태어났어요, 이제 유부남이 둘이에요, 아니 셋이에요…. 인생 함부로 장담하면 안 되지만 무한도전과 함께 내 예능인생도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해피투게더는 맘이 가장 편안한 프로? 이 한마디에 나의 애정이 담겨 있달까. 런닝맨 하면서는 다시 한 번 느낀 게 함부로 누굴 평가하거나 어떻다고 단정짓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안 될 줄 알았다. 첫방이 나가자 ‘이런 어설픈 걸 주말 저녁에?’라며 혹평이 쏟아졌다. 솔직히 나도 무서웠다.”



 - 뭐가 무서웠나. 불패신화가 깨지는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두려움이 더 컸다. 나를 믿고 따라와준 사람들, 그중엔 정말 오랜만에 나온 분들도 있는데 조기 종영되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으니까.”



 -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는.



 “세 프로 다 좋지만 내가 정말 깔깔대고, 오장육부가 뒤틀릴 정도로 웃으며 했던 건 2003년 ‘천하제일 외인구단’이란 코너였다. 찌질한 사람들이 모여 지존들 찾아다니는 거였다. 어떤 이는 이게 무한도전의 원조라고도 하는데, 나는 이 컨셉트가 너무 좋았다. 공부도, 운동도 잘 못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순위를 정해보면 어떨까. 잘하는 사람 빼고 우리끼리 겨루면 1위도, 2위도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나.”



 - 메뚜기, 유느님, 날유, 저쪼아래, 유르스윌리스. 어느 별명이 가장 맘에 드나.



 “아무래도 메뚜기다, 허허. 처음엔 되게 싫었다. 그리고 내가 진짜 메뚜기 닮았나?(웃음) 근데 90년대 말 PD가 메뚜기 탈을 주면서 ‘너는 아직 인지도가 약하니 출연하고 싶으면 이 탈을 쓰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난 유재석으로 불리고 싶었지 메뚜기로 불리긴 싫었다. 머리도 망가질 테고. 하지만 결국 그 탈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줬다.”



"박명수가 있기에 내가 있다 싶어”



 - 아내(나경은 아나운서)는 어떤 점이 끌렸나.



 “착하고 마음이 따뜻했다. 웃는 모습도 참 예뻤고, 해맑았고. 지금은? 무섭다. 왜 그리 혼내는지. 내가 뭘 그리 크게 잘못했다고(웃음). 무슨 일 있으면 다 나 때문이란다. 아내가 그럴 땐 무조건 죄송합니다 해야 한다. 그게 최선이다. 그래도 돈 관리는 내가 한다, 하하.”



 - 쉴 땐 뭐 하나. 집에서도 말 많이 하나.



 “주로 운동한다. 안 하면 체력적으로 버텨내기 힘들다. 유연성이 부족해 스트레칭도 하고, 바벨도 든다. 결혼 전엔 정말 집에 가면 말 한마디 안 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선 부모님이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을 제법 한다. 아들 때문에도 그렇고. 애를 위해서는 내 목숨도 줄 수 있을 만큼 너무 좋다. 놀이공원 같이 못 가는 게 미안할 따름이다. 취미요? 딴 거 없다. 동료들과 수다, 그게 가장 재밌는 것 같다.”



 - 매니저는 12년, 코디는 8년을 같이 일했는데.



 “그들과 오래 할 수 있었던 건 인간적인 정과 굳은 신뢰가 있어서다. 근데 내가 사실 속마음을 살갑게 표현 못하는 성격이다. 부모님 드리려고 먹을 거 사갔다가도 부모님 보시면 후다닥 등 뒤로 숨길 정도다. 백상 시상식 때는 정말 한마디 해야지 싶었는데 호동이형과 껴안다가 깜박했다. 늦게나마 여기서라도 한마디 해야겠다.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진짜 고맙고. 끝까지 딴 맘 먹지 말고 나와 함께 해다오.”



 - 박명수는 유재석에게 어떤 존재인가.



 “명수형은 인생 자체가 재밌는 형이다. 욕심 많은 게 다 드러나지 않나? 예능에서 없는 캐릭터를 만들 순 없다. 있는 걸 기본으로 하는 거다. 그래도 나를 진정으로 배려해주고 신경 써주는 형이 명수형이다. 시청자들은 반대로 보실 수도 있겠지만, 명수형이 있기에 내가 있다 싶다.”



 -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은 없나.



 “고민을 많이 한 적은 있지만 우울증은 겪지 않은 것 같다. (약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리고 자살은 어휴, 진짜 솔직히 얘기하면 죽음, 이런 건 너무 무섭다(웃음).”



 - 다시 개그 프로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물론 있다. 언젠가 다시 콩트를 할 거다.”



 - 10분짜리 콩트와 유재석쇼 중 선택하라면.



 “(노타임으로) 콩트다. 내 이름을 건 쇼는 쑥스러워서 못할 것 같다.”



 - 어떤 유재석으로 기억되고 싶나.



 “그냥 ‘쟤, 진짜 열심히 했어. 최선을 다했어’란 평가? 재밌다, 즐겁다는 얘길 들으면 더 바랄 게 없고.”



 인터뷰를 마친 그는 사진기자의 무거운 짐을 직접 둘러메고 정문 밖까지 배웅해줬다. 4시간 녹화 뒤 2시간 반의 끊임없는 수다까지. 지치지도 않나 보다. 실패의 보약을 많이 맛봐서 그럴까. 체력관리를 위해 그리 즐기던 담배도 2년 반 전에 끊었단다. 쫓고 쫓길 때 잡혀도 좀 아슬아슬하게 잡히고 싶어서란다. 국민MC란 호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글=박신홍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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