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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만큼은 가족끼리 … "여섯 살 승현이의 세계가 펼쳐졌어요"

6일 최광성·정은정 부부가 아들 예준군과 점심을 함께하고 있다. 예준이가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자랑하자 식탁에 웃음꽃이 피었다. [오종택 기자]


맞벌이하는 동화약품 김윤정(39) 과장 부부는 올 초 가족식사 원칙을 세웠다. 출근시간이 제각각이어서 아침은 함께할 수 없지만 저녁만큼은 딸 승현(6)양과 먹기로 한 것이다. 할머니가 돌보는 승현이는 지난해까진 부부가 출근하는 주중엔 주로 혼자 저녁을 먹었다. 김씨 부부의 퇴근시간은 오후 7~8시. 그때까지 어린 딸을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고민 끝에 방법을 찾았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간단한 간식을 주고 기다리게 했다. 그러곤 온 가족이 모였을 때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밥상머리 교육을 실천한 것이다.

숟가락 놓게 하고 그릇 함께 치우고 뜬구름 잡는 얘기라도 소통의 시작
“숟가락질 바로 해” 훈계하면 역효과 … 얘기 들어주면 몰랐던 고민 털어놔



 거창하게 변한 건 없다. 하지만 소소한 변화들이 놀라웠다. 김씨는 어느 순간 딸이 엄마·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의 생각도 잘 알게 됐다고 했다. “승현이 친구들을 대부분 알고 있고, 딸의 유치원 생활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밥을 먹으며 얘기하다 보니까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식사 횟수가 쌓이면서 주말에만 함께한 걸로는 알 수 없던 딸의 세계가 펼쳐졌어요. 이제야 딸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승현이도 변했고요.”



지난달 10일 요리교실에서 김윤정씨가 딸 승현양과 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가족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건 밥상머리 교육의 기본 원칙 중 하나다.
 지난달 10일 오후 가족과 함께 만드는 브런치 쿠킹클래스가 열린 서울 태평로의 한 요리교실. 승현이가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용 발판에 올라 파프리카와 오이를 썰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었지만 아이용 플라스틱 칼로 어설프게 재료를 다듬는 폼이 자신감 넘쳤다. “이거 좋아하니까 많이 넣자”고 말하기도 하고 칭찬을 듣자 웃음도 터졌다. 미술을 좋아 하는 승현이는 빨간 게 많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며 파프리카를 많이 넣고, 간을 보면서 양념을 이만큼만 넣자고 하기도 했다.



 이날 요리교실은 ‘가족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하자’는 밥상머리 교육 원칙에 맞춰 진행됐다. 동화약품이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승현이를 비롯해 10쌍의 아이와 엄마가 참여해 샐러드와 스무디 등을 만들었다. 날씨가 추운 북유럽 가정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는 요리들이다. 교육을 담당한 황선진 셰프는 소통을 강조하는 밥상머리 교육 취지에 맞게 아이와 얘기하면서 자유롭게 만들어 볼 것을 강조했다.



 김씨는 “가족이 함께 뭔가를 하며 얘기를 나누는 게 밥상머리 교육 아니겠느냐”며 “이번 일요일엔 아이 아빠·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만들어 먹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실제 김씨의 가족은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12일 이날 배운 요리들을 집에서 함께 만들어 봤다. 승현이의 요리를 맛본 이날 밥상에서는 더 많은 얘깃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가장 놀란 건 아이와 나누는 대화의 깊이였다. “어느 저녁시간 승현이가 잘 웃지 않는 친구 얘길 했어요. 예전 같으면 안 웃는 친구가 있구나 하고 넘어갔을 텐데 함께 식사 중이니 자세히 묻게 되더라고요. ‘왜? 무슨 일 있어?’라고 하니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너무 슬퍼 운전을 할 수 없대’라고 얘기해요. 뜬구름 잡는 얘기죠.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까지 파악하게 된다는 게 놀랍고 좋았어요. 예전엔 결코 하지 못했던 대화들이었죠.”



 식사를 준비할 땐 딸도 참여토록 했다. 이제 승현이는 식사 전 숟가락을 정리하고 밥을 다 먹은 뒤에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놓는다. 따로 저녁을 먹을 때는 할 수 없던 일이다.



 승현이의 새로운 면도 발견하게 됐단다. 어느 저녁이었다. 승현이가 그릇을 싱크대에 갖다 놓는 걸 안 하겠다고 했다. ‘야단을 쳐야 할까’ 생각하던 김씨는 일단 “왜 그러니”라고 물었다. “새 그릇인데 이 그릇이 깨질까 봐 무서워 못하겠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아이 입장에서는 일리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깨지지 않는 것만 갖다 놓으라고 했어요. 대신 식탁을 닦아 달라고 했죠. 애가 단순히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만의 이유가 있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대화 주제는 주로 아이의 일상이다. ‘뭐 특별한 게 있겠어’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화의 주제는 무궁무진했다. 하루는 아이와 코엑스에 갔다가 택시 대신 버스를 타고 왔다. “택시를 타면 버스보다 요금이 비싸다고 설명한 뒤 선택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다리는 아프지만 버스를 타겠다고 했어요. 그런 일이 있으면 저녁시간에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꼭 칭찬을 해요. 얘길 듣고 할머니가 대견하다고 하고, 아이는 좋아하고, 저도 흐뭇해지고요. 그런 재미가 생겼어요.”



 조선미 아주대 정신과 교수는 “예전엔 발달장애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을 상담하러 오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최근엔 장애 자체보다는 인간관계와 스트레스 때문에 찾아오는 아이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주로 과도한 학습량과 부족한 소통에서 오는 문제들이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해법은 가까운 데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이 함께하는 식사가 대표적이다. 이현아 서울대 학부모정책연구센터 교수는 “밥을 먹으면서 가족 간에 대화를 늘리면 아이들 정서발달에도 도움이 되고 학교폭력 등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부모와 대화가 적은 아이들은 문장이 짧고 단어도 또래들 사이에서 쓰는 것만 구사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연령대가 다른 사람들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드물기 때문이다. 여러 연령대가 섞여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가족 식사 자리는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대안이다.



 지난해 동화약품과 한국갤럽이 수도권 부모 800명과 초·중·고 자녀 200명을 대상으로 가족식사 횟수를 조사한 결과 1주일에 2회 이하가 다섯 명 중 한 명(20.7%)꼴이었다. 평균은 5.3회였다. 대부분 구성원 간 시간이 맞지 않아(97.7%) 가족식사가 어렵다고 했다. 가족식사엔 주로 아버지가 빠졌다(67.9%).



 조 교수는 “시간이 없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러면 후식이라도 같이하라고 조언해 준다”며 “밥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밥을 먹든 라면을 먹든 애들과 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많은 아빠가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하면 숟가락질을 똑바로 하고 자세를 바르게 앉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아빠는 교육적인 측면이 중요하다며 신문을 읽게 한 뒤 밥 먹으면서 얘기해 보라고 하는데, 그럼 밥이 넘어가겠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소통입니다.”



 이 교수는 “아이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도 “연예인 얘기나 친구 간의 갈등에 대해선 길게 안 들으려 하고, 중요하지 않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왜 그런 걸 가지고 걱정하느냐고 하면 대화가 끊기게 된다”며 “그런 사소한 얘기부터 잘 들어줘야 깊은 얘기도 나눌 수 있게 된다”고 조언했다.  



글=이상화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동화약품은 2010년부터 ‘하루 한 끼 가족이 밥상에서 만나자’는 슬로건과 함께 ‘맑은 바람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기업 로고인 ‘부채표’가 상징하는 것처럼 밥상 위에 맑은 바람을 일으켜 가족을 변화시켜 보자는 취지다. 올해도 ‘맑은 바람 쿠킹클래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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