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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뿌리깊은 나무』의 이정명, 탈북 꽃제비 끌어안다

천국의 소년 1·2

이정명 지음, 열림원

각 권 296·292쪽

각 권 1만2000원




라오스에서 벌어진 꽃제비 출신 탈북 청소년의 강제 북송 사건으로 떠들썩한 이 때, 이 소설을 마주한 느낌은 묘했다. 책의 주인공은 탈북 소년인 안길모다. 10대 초반에 북한을 탈출한 뒤 전 세계를 떠돈 주인공의 지난한 여정에 요즘 눈 앞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별을 스치는 바람』 등으로 한국형 역사 추리소설의 지평을 연 이정명 작가. 그의 신작은 전형적인 추리 소설의 구조로 문을 연다. 미국 뉴욕의 한 주택가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사체 옆에는 피로 쓴 숫자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 등 데스(DEATH) 사인이 발견된다.



 현장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인터폴이 전 세계에 적색수배령을 내린 1급 범죄자 안길모. 마약밀매와 거대 폭력조직 가입, 불법 사기도박, 총격 사건, 거액 사기, 불법 입국, 살인까지. 9개국 여권을 소지한 용의자의 혐의는 범죄백과사전을 방불케 한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그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는 숫자와 수학이다.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과 수학·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안길모는 간호사 안젤라와 숫자와 수식으로 대화하며 흩어진 퍼즐의 조각을 맞춰 간다.



 세상의 풍파는 여섯 살의 정신 연령을 가진 천재 소년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소년은 어느 날 갑자기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뒤 꽃제비로 두만강을 넘어 탈북에 성공한다. 중국 옌지(延吉)와 상하이(上海)를 거쳐 마카오·서울을 지나 멕시코, 미국 뉴욕, 스위스 베른에 이르는 10여 년의 오디세이는 가혹한 운명의 결정판 같다.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여정만큼이나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흥미로운 요소는 수학이다. 뒤예베스틴의 분할이론을 보여주는 유한수열 등 다양한 수열과 숫자를 절반으로 나눠 앞자리와 뒷자리를 더한 뒤 제곱하면 다시 원래의 수가 되는 카프리카 수 등 여러 가지 수학 이론이 주인공의 사연과 심리 상태와 맞물리며 읽는 재미를 더한다. 문자(『뿌리깊은 나무』)와 그림(『바람의 화원』), 문학(『별을 스치는 바람』)을 다루는 데 능란했던 작가가 이번에는 숫자를 가지고 제대로 논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사의 힘이 떨어지고 극적 구조가 헐거워지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탈북자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에다 우연의 남발로 인한 개연성 부족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됐다.



 그럼에도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분명했다. 복잡하고 난해한 삶의 방정식을 풀 수 있는 기적이다. 불가해한 삶의 시련에도 기적을 믿었던 주인공처럼.



 ‘나는 기적을 겪었고 마법을 보았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요? 우리 앞의 현실이 기적이니까요. 우리가 살아간다는 그것.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그것이 마법이니까요. 내가 보고 겪은 기적과 마법은 사랑, 용기, 그리고 우정이에요.’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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