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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창포(菖蒲)와 상무(尙武)

단오(端午)의 오해
다음 주면 중국의 4대 명절의 하나인 단오절 연휴에 들어간다. 음력 5월5일 즉 금년의 경우 6월13일(목)이 단오절이므로 이번 주말은 대체근무를 하고 6월10일(월)부터 연휴에 들어간다. 우리나라도 민속 명절 단오를 앞두고 일부 지역에서는 한복을 곱게 입은 여자 어린이들이 창포(菖蒲)물에 머리를 감는 등 세시풍속을 체험하고 있다.

필자가 중국의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북경의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할 기회가 많았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강의를 열심히 들을 뿐만이 아니라 질문도 활발하다. 그 중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의 하나가 우리나라의 단오제이다. 수년전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인류 구전(口傳) 및 무형유산 걸작중 하나로 선정된 후 중국의 네티즌사이에서 한국이 중국의 민속전통인 단오절을 가로챘다는 이야기마저 나왔다.

단오라는 명칭은 글자풀이를 하면 “단(端)”이 “첫(初始)”이란 의미이며 “오(午)”는 12 간지에서 “말(午)의 월일(月日)” 즉 5월 또는 5일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오는 말(午)의 달에 첫 말(午)의 날이란 의미이다. 단오절을 중오(重午)또는 단양(端陽)으로도 불렀다. 이렇게 보면 단오 또는 중오(重午)는 고유명사보다는 보통명사에 가깝다.

사실 중국에서 시작한 단오절은 1500년 전에 한반도와 일본에 전달되면서 오랜 기간 한국과 일본의 문화에 융화되어 이름만 같지만 구체적 행사내용은 3국이 토착화 되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굴원(屈原)의 굴욕
중국의 단오절은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정치인이면서 애국시인인 굴원의 자살에서 비롯되었다. 2500여 년 전 중국에는 춘추전국 시대가 있었다. 수많은 나라가 서로 이합 집산하여 마지막으로 7개국이 남았다. 이른 바 전국칠웅(戰國 7雄)으로 현대적 표현으로는 G7이다. 그 중에 서북쪽으로 진(秦)이 가장 강하였고 나머지 초(楚) 제(齊) 연(燕) 한(韓) 위(魏) 조(趙)등 6국 중에서는 초(楚)나라가 강하였다. 초나라는 지금 양자강 중류에 위치하여 물산이 풍부하였고 초재진용(楚材晉用)이라는 말처럼 인재가 많았다.

당시 희대의 전략가 귀곡자(鬼谷子)에게는 두 사람의 수제자가 있었다. 당대의 유세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였다. 두 사람은 동문수학한 친구사이이지만 출세를 쫓아 반대편에 서게 된다. 소진은 강대국 진(秦)에 대항하는 6국의 동맹을 권유하는 합종책(合從策)을 기획하였고 장의(張儀)는 진의 입장에서 합종책을 깨는 연형책(連衡策)으로 진에 의한 전국 통일을 도모하였다.

장의가 한 때 초나라를 방문했다가 화씨(和氏)의 옥(璧)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몰매를 맞고 만신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다 죽어 가는 그를 구해준 부인에게 자신의 세치“혀”(舌)의 안전을 가장 먼저 물었다고 한다. 장의는 만신창이의 몸이지만 유세가로서 자신의 생명과 같은 혀가 온전하게 붙어 있음이 확인되자 크게 안심하였다고 한다.

당시 국제정세에 밝은 초의 귀족인 굴원(屈原)은 장의의 연형책이 불안하여 동쪽의 제(齊)나라와 동맹 진을 견제하자고 건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안 장의는 초에게 진의 사방 600리의 큰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화친을 요구한다. 굴원은 장의의 약은 수를 간파하고 반대하였으나 초의 회왕(懷王)은 오히려 굴원을 변방으로 유배 보내고 장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장의가 주겠다는 땅을 인수하러 간 초(楚)의 장군에게 장의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딴전을 편다. 굴원을 실각시키기 위한 장의의 속임수였다. 격노한 초의 회왕은 군사를 보내어 진을 공격하지만 이미 장의가 파 놓은 함정에 빠진 후였다. 크게 패한 회왕은 굴원의 간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굴원을 다시 복직시킨다.

굴원의 2차 유배와 자살
그 후 진은 초의 회왕을 통혼(通婚)의 핑계로 초청한다. 굴원은 진의 또 다른 흉계이므로 회왕에게 진의 초청을 거부할 것을 간한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회왕은 자신의 망내 아들 자란(子蘭)의 권유를 쫓아 진을 방문하나 다시 속은 것을 알자 홧병을 얻어 진에서 죽는다. 회왕이 죽은 후 그의 장남이 왕이 되니 그가 초의 경양왕(頃襄王)이다. 자란은 재상이 된다.

초는 굴원을 위시한 반진친제파(反秦親齊派)와 자란을 중심으로 하는 친진파(親秦派)로 양분되어 있었다. 두 파간의 갈등으로 굴원이 2번째 유배되고 조정에는 친진파가 득세한다. 굴원은 두 번째 유배지에서 이소(離騷)등 애국과 임금을 사모하는 시(詩)를 수없이 썼다. 중국문학의 금자탑인 초사(楚辭)는 이러한 굴원의 시를 모은 것이다. 굴원이 없는 초의 조정은 친진파 일색으로 대외정책이 균형을 잃어 결국 진의 장군 백기(白起)의 군대에 의해 지금의 형주(荊州)부근인 초의 수도가 함락되는 수모를 겪는다. 멀리 유배지에서 이 소식을 들은 굴원은 원통한 마음에서 지금의 상강(湘江)의 지류인 멱라수(?羅水)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한다.

마침 그때가 음력 5월5일이었다. 당시 애국시인 굴원을 존경했던 현지 사람들은 배를 급히 띄워 굴원의 시체를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한다. 그러나 굴원의 유체가 물속에서 온전히 보존되게 하기 위해 물고기의 접근을 막고자 물고기가 좋아하는 찰밥을 던져 넣었다. 이러한 풍습이 이어져 매년 5월5일이면 쫑즈(?子)라는 갈대 잎에 간이 된 찰밥을 싸서 강물에 던지고 용선(龍船)을 띄어 누가 먼저 굴원을 구하기나 하듯 경기를 벌려 왔다.

산신령 영신축제
한국 강릉의 단오제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迎神)축제이다 수 천 년 전부터 한반도에는 신을 부르는 영신 굿이 있었다. 특히 옛 무천(舞天)행사로 유명한 동예(東濊)의 땅 강릉 지방에는 대관령이라는 높은 고개를 건너야하는 산로(山路)의 어려움과 풍어(豊漁)와 풍작을 빌기 위해 영험하다는 대관령 산신(山神)을 불러 굿을 하는 것이다. 이 날이 음력 5월5일 양의 수가 겹치는 수릿날(신의 날)로 길일(吉日)이다. 이 날이 단오날이다. 어쨌든 5월5일은 7월7일 및 9월9일과 마찬가지로 양의 수가 겹쳐 신성시 되어 왔다. 강릉사람에게 중국 단오절의 키워드인 굴원, 쫑즈, 용선 등을 물으면 잘 모른다. 강릉의 단오제는 산신령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단오절
일본의 단오절은 건강한 남아(男兒)의 성장과 관련된다. 일본도 한자 문화권으로 한반도 중국으로부터 동양문화를 전수 받았다. 중국의 음력을 써 왔고 5월5일의 길일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중국의 찹살 주먹밥 쫑즈(?子)문화를 흉내 내어 “치마끼(?)”라하여 참(도토리)나무 잎에 밥을 싸서 먹는 습관을 가졌다. 일본에는 중국의 강남처럼 갈대가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참나무 잎은 새잎이 나기 전에 옛 잎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자손손(子子孫孫) 가계(家系)의 번성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었다. 또한 그 무렵이면 일 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심기하는 계절이다. 농사의 신성함과 농사 신에게 일 년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기 위해 모심기 전에 반드시 더러움을 씻어내어 내어 몸을 깨끗이 했다. 특히 여자들은 창포의 잎과 뿌리를 다린 물인 창포 탕(菖蒲湯)에 머리를 감고 머리 장식도 했다. 창포의 향으로 나비가 꽃인 줄 알고 여자 머리에 날라 올 정도로 깨끗이 단장했다고 한다. 일본이 만든 화투짝의 5월에 창포가 그려져 있는 것도 5월의 단오절에 창포로 머리를 감는다는 의미가 있다.

“쇼부(菖蒲)”와 “쇼부(尙武)”
나라(奈良)시대부터 음력 5월5일(端午)은 창포의 날이었다. 그러다가 카마쿠라(鎌倉)막부가 열리고 사무라이(武士)들이 득세하면서 창포가 같은 일본 발음의 상무(尙武)로 변해 5월5일은 무(武)를 숭상한다는 상무의 날로 변했다. 더구나 무성한 창포의 잎이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보여 남자 아이들은 창포 잎을 잘라 칼싸움 놀이를 하였다. 일본의 단오절은 당초 벼농사를 하는 농민의 명절(節句)에서 창포로 여인들이 머리감는 여자의 명절로, 다시 상무의 날로 변해 남자 아이의 명절이 되었다. 집안에서는 남자 아이와 관련되는 갑옷, 투구, 칼 등의 이른바 5월의 인형을 준비, 훌륭한 사무라이로의 성장을 기원한다. 또 이날은 중국의 등용문(登龍門) 고사를 인용 폭포를 거슬러 튀어 오르는 잉어처럼 남자 아이의 출세도 기원하였다. 지금도 5월5일이 되면 일본 각지의 마을에 깃대를 세우고 그 마을의 남자 아이 숫자만큼 5가지 색깔을 한 잉어 모형을 만들어 바람에 날리게 한다. 마치 폭포를 거슬러 튀어 오르는 잉어 같다. 이를 “고이(鯉) 노보리(登)”라고 부른다. 1868년 명치(明治)유신 후 일본의 모든 명절(節句)을 단번에 그 날자 대로 양력 화함으로써 과거 음력 5월5일이 양력 5월5일로 바뀐다. 중국의 단오절이 일본에 와서는 “단고노셋쿠(端午節句)”에서 남자 아이의 명절이 되었다가 현대판 어린이 날로 바뀐 것이다. 중국의 경우 어린이날은 단오절과 관계없이 국제 어린이날인 6월1일이다.

단오절 3국지
중국에서 시작된 한자문화, 음양이론, 12간지, 음력, 농사 등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이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수천 년 내려오면서 현지 민족의 특성에 맞추어 독자적으로 무형문화재가 생성 발전된 것도 사실이다. 이른바 단오절 3국지로 볼 수 있다. 중국은 애국시인 굴원에 대한 추모행사, 한국은 산신령에 대한 제례행사, 일본은 건강한 남아 키우기 행사 등으로 각각 고유의 문화로 발전해 왔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각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을 채집 등록케 하여 보존하고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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