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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도 만든다는 곳, 없는 게 없는 '철의 골목'

대구시 중구 북성로 공구박물관의 내부 모습. 관람객들이 5일 1층 전시실에서 ‘전쟁과 북성로’를 주제로 설치된 탱크의 포신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조형물은 주로 북성로 상인들이 제공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공구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지난 달 23일 문을 열었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중구 북성로 공구골목. 1㎞ 남짓한 도로 양쪽에 300여 산업용 공구가게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4일 찾은 골목 점포 곳곳에선 용접기가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입구에서 200m쯤 들어가니 흰색 벽에 기와를 얹은 2층짜리 일본식 가옥이 눈에 띄었다. 지난달 23일 세워진 전국 최초의 ‘공구박물관’이다. 김상석(40) 대구 중구청 도시디자인 담당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미곡창고를 그대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공구박물관은 1층 전시장(45㎡)과 2층 다다미방(31㎡)으로 꾸며져 있다. 전시장에는 낡은 공구 1000여 점이 보존돼 있다. 1970년 플라스틱 제품을 찍어 내던 사출기를 구해다 망치로 두드리고 잘라 만든 탱크 포신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벽에는 일제강점기 때 쓰였던 나무 손잡이로 된 드라이버, 줄자, 한국전쟁 당시 군수품인 알루미늄 드럼통도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 공구골목 상인들이 쓰던 영수증과 렌치·칼·도르래·공구 도면도 전시장 곳곳에 걸려 있다. 안미란(29) 공구박물관 전시담당은 “모든 공구는 이곳 상인들이 기증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물관엔 하루 평균 150여 명이 찾고 있다.

대구시 북성로에 위치한 공구골목. 300여 점포가 밀집해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박물관이 이곳에 세워진 것은 공구골목의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공구골목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47년이다. 당시 미군부대에서 버려지는 철제 수통·드럼통·탄피통 등 군수물자를 11명의 상인이 불하받아 다양한 철제 제품을 만들었다. 50년 6·25전쟁이 나면서 철로 만들어진 군수물자는 피란지인 대구로 몰려들었다. 가게도 23개로 늘었다.

이때까지 공구를 취급하는 골목은 아니었다. 군용 철제물은 난로·농기계 등으로 재탄생했다. 공구를 본격적으로 취급한 것은 60년대부터였다. 베트남전쟁 때 참전했던 군인들이 귀국하면서 가져온 미제 공구(일명 ‘월남박스’)가 이 골목에 유입됐다. 상인들은 공구를 구해다 팔면서 섬유기계 부품과 자동차 부품도 만들었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김학용(57) 북성산업용품상가 번영회장은 “10여 년 전까지 공구골목의 매출액이 연간 6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다”고 말했다.

 공구골목엔 역사적인 건축물도 많다. 삼성그룹의 모태로 불리는 삼성상회 터와 대구 최초의 대중탕인 조일목욕탕이 있다. 일제 때 지은 대구 최초의 미나카이백화점도 옛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일본식 건물에서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파는 삼덕상회도 눈길을 끈다. 일제 때 건물인 야마구치도예점은 영화 세트장 분위기를 풍겨 사진촬영 명소로 꼽힌다. 공구골목 끝에 자리한 사찰 ‘대성사’는 1906년 광문사(출판사)가 있던 곳이다. 이듬해 국채보상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내년 2월까지 공구골목 바닥을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자연석으로 까는 등 대구 관광의 또 다른 명소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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