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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제2의 황우석 될 텐데 … "

이규연
논설위원
2006년 1월 12일, 한국프레스센터 회견장에 매스컴의 촉각이 쏠린다. 국보급 석학으로 추앙받던 황우석 박사가 연구조작 의혹을 해명하는 자리였다. 곳곳에서 ‘황빠’와 ‘반(反)황빠’가 엉겨붙어 몸싸움을 벌일 만큼 분위기가 살벌했다. 이윽고 황 박사가 입을 열었다. 세계 최초의 맞춤형 줄기세포 배양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않았고 일부 결과 역시 조작됐다고 시인했다. “세계 최초로 황 박사가 XXX에 성공했다”는 신화방정식에 중독돼 있던 이들에게 충격적인 고백이었다.

 이후 우리 사회에는 ‘세계 최초’ 트라우마가 생겼다. ‘세계 최초라고? 또 뻥튀기 아냐?’ 검증·연구윤리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은 황우석사태가 남긴 교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의심받을까 봐 새로운 도전을 꺼리는 보신(保身)의 뿌리는 더 깊어졌다. 황 박사의 연구에 눈먼 갈채를 보냈던 집단심리에는 ‘세계 최초’ 콤플렉스가 깔려 있었다. 세계에 내세울 만한 과학기술은 별로 없는데도 그 기대·열망은 유난히 큰 한국이다. 황우석 스캔들 이후 등장한 보신주의도 그런 열등감의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4일 충북 오송에서 열린 무선충전 전차(電車) 시연회. 도로에서 전기를 공급받으며 주행하는 꿈의 열차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상용화만 된다면 지상의 전력케이블 설비가 사라지고 철도 건설 비용은 줄며 승차감이 좋아진다. 행사를 주관한 홍순만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은 “올 연말께 실제 철도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서 원천기술 개발을 주도한 KAIST 조동호 교수를 만났다. “학교에서 개발한 온라인(급속 도로충전) 전기차 기술을 철도기술원과 함께 철도에 적용한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 전기차 기술에 대한 기대감은 뜨겁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10대 유망기술 중 첫째로 뽑혔다. 타임지에도 2010년 세계 최고 발명품 중 하나로 소개됐다. 다음 달 구미시가 세계 최초로 온라인 전기차를 상용화하고 나면 수출에 필요한 실제 적용사례도 생긴다. 지금은 찬사가 나오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조동호 교수는 가시밭길 개발 과정을 털어놓았다.

 온라인 전기차 개발은 2009년 서남표 당시 KAIST 총장의 지시로 시작된다. 첫해에 교과부에서 250억원을 지원받을 정도로 출발은 순탄했지만 곧바로 장애물이 등장한다. 관련 학계에서 벌떼 공격을 받은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승객이 타 죽는다” “불가능을 가능하다고 하는 사기극” “제2의 황우석이 될 텐데”…. 일부 국회의원도 공격 대열에 선다. 공격의 근거는 두 가지였다. 지금까지와 다른 전력공급방식(자기공명)을 채택한 점이 기존 전문가들을 자극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실패사례였다. 버클리대에서 수년간 연구하다 포기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성공하겠느냐는 의구심이었다. 혹평에 밀려 예산은 줄고 사업단은 축소된다. 기업체를 끌어들여 겨우 연구개발을 이어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과물이 하나둘씩 쌓여갔다. 수백 건의 특허를 확보하고 최고 국제학회저널에 연구내용을 실었다. 미국·뉴질랜드·일본 등지에서 관련 연구가 시작되면서 공격은 잦아들었다. 개발에 참여한 임춘택 KAIST 교수의 얘기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운이 계속될 수 없다. 지금 제도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통과되기 어렵다. 좋은 성과가 기대된다면 불확실한 미래에도 과감히 투자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무선충전 전차 시연회가 끝난 뒤 몇몇 교수·연구자가 자연스럽게 모였다. “교과서에 없는 시도를 하면 공격을 받는다. 이래서는 일등이 될 수 없다. 연구개발 시스템을 확 바꾸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한 교수의 지적에 다른 사람들이 고객을 끄덕였다. 이어 다른 연구자가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고질적인 풍토가 바뀔까? 새 정부가 아무리 창조 창조 하지만….” 이번에도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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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