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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14좌 베이스캠프를 가다 <12> 가셔브룸1봉과 2봉 (하)

곤도고라 패스를 넘어 휴스팡에서 만난 올리비아호 타워(6109m). 여인의 손톱처럼 뾰족하다.


가셔브룸 1·2봉을 품은 아브루치(Abruzzi) 빙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해발 5700m에 있는 곤도고라(Gondogora) 패스를 넘어야만 한다. 올라온 길, 발토로(Baltoro) 빙하로 내려가는 것보다 이틀 정도 단축되기 때문에 하산 길로 애용된다. 반면 하룻밤 사이에 고도차 1000m를 극복해야 하는 험난한 길이다.

[중앙일보·밀레 공동기획]
해뜨면 눈사태 공포 … 한밤중 '지옥의 마라톤'을 서둘렀다



가셔브룸(파키스탄)=김영주 기자 사진=이창수 사진작가



해발 4900m 알리 캠프서 맛본 라면



곤도고라는 히말라야 신의 세계에서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오는 길이다. 네팔·파키스탄에서 사용하는 우르두어에서 접미사 ‘라(Ra)’는 우리의 ‘령(嶺)’, 즉 고개를 뜻한다. 보통 ‘곤도고라 패스(Pass)’라고 하는데 ‘고개(Pass)’라는 말이 중복돼 있다.



패스 정상의 고도 또한 명확하지 않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서 구입한 지도마다 다르게 표기돼 있다. 대략 5600~5900m. 현지인의 말도 지도만큼 엇갈렸다. 곤도고라는 매년 겨울과 봄 사이에 어마어마한 눈이 쌓이는데, 그래서 정확한 계측이 불가능하기는 하다.



2010년에 이어 두 번째로 곤도고라를 넘었다. 가셔브룸 베이스캠프(5150m)에서 곤도고라로 가기 위해서는 알리 캠프(Ali camp·4800m)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10㎞ 정도 걸어야 한다. 2011년까지 이틀이 걸렸지만 지난해부터 지름길이 생겨 하루가 단축됐다. 25㎏이나 되는 짐을 지는 짐꾼에게 하루를 줄이는 일은 엄청난 차이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끊임없이 새 길을 만들어 내는 본능이 있다. 그러나 새로 난 길은 위험했다. 꽁꽁 얼어붙은 빙하의 얼음판을 살금살금 더듬어 가야 할 정도였다.



히말라야 빙하, 특히 100㎞에 달하는 발토로·아브루치 빙하는 용의 등골처럼 굽이쳐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수십 갈래의 길이 얽히고 얽혀 미로와 같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빙판 길에서 현지인의 도움 없이 걷는 것은 위험하다. 겨울에 내린 눈의 양과 여름에 녹아내리는 속도에 따라 시시각각 길이 변하기 때문이다.



곤도고라 패스 정상에서 현지 스태프들과 기념 촬영. 그러나 하산이 더 험난하다.


아침 일찍 출발해 대여섯 시간을 걷고 나니 평평한 빙하가 나타났다. 산악인은 이런 곳을 ‘플래토(Plateau)’라고 한다. 바닷물 위에 소금밭이 떠오른 것처럼 축구장 몇 개 넓이의 흰 설원이 펼쳐져 있는 신세계다. 이런 길을 선글라스 없이 걷는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강렬한 자외선 때문이다. 하루 일당 1000루피(약 1만2000원) 남짓을 받는 짐꾼도 100루피짜리 중국산 싸구려 선글라스 정도는 필수로 갖고 다닌다. 이런 장비는 짐꾼을 고용한 원정대나 트레킹팀에서 꼭 마련해 줘야 하는 품목이다. 알리 캠프에서는 현지인이 싸구려 선글라스를 팔기도 한다.



가셔브룸베이스캠프 전경.
알리 캠프는 예전에 파키스탄 군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지금은 하늘을 찌를 듯한 첨봉이 위병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되도록 이른 시간에 캠프에 도착하는 게 좋다. 캠프가 눈 사면에 바짝 붙어 해가 빨리 떨어진다. 미리 도착해 등반장비를 챙겨 놓는 게 좋고,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된다.



하지만 플래토에서 캠프까지는 훼방꾼이 있다. ‘얼음 습지’다. 눈 녹은 물이 아래로 스며들면서 눈 아래에 물길을 형성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다져진 눈이지만 막상 발을 딛게 되면 허벅지나 허리까지 푹푹 빠진다. ‘지뢰밭’을 피해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경험 많은 현지인의 뒤를 따르는 게 현명하다.



알리 캠프에 도착하면 열에 아홉은 젖은 신발을 벗고 발을 말린다. 저녁은 라면이다. 3주 가까이 되는 가셔브룸 트레킹에서 처음 맛보는 라면이다. 고소에서 밀가루 음식, 특히 기름에 튀긴 라면은 소화가 잘되지 않는다. 금기 리스트에 오를 만한 음식이지만 알리 캠프에서는 찬밥·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나마 라면도 중국산 압력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압력솥에 라면을 조리한 경험이 없는 우리 팀의 조리사 사카와(27)가 “얼마나 있다가 뚜껑을 열어야 하나”라고 물었다.



‘해발 4900m에서 라면을 끓일 때 라면과 수프를 넣고 몇 분이나 있다가 뚜껑을 열어야 잘 삶아진 면을 먹을 수 있을까’. 마치 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문제처럼 다가왔다. 스태프의 눈이 모두 쏠려 있었으므로 애써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약 5분”이라고 답했다. 사카와는 손목시계를 보며 라면을 끓였고, 우리는 맛있는 라면을 먹었다.



공포를 더하고 때론 덜어준 어둠



곤도고라 패스를 넘고 나서도 며칠을 더 걸어야 푸른 숲이 있는 마을을 만난다.
곤도고라 패스로 가기 위해서는 알리 캠프에서 자정에 출발해야 한다. 아브루치 빙하는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곤도고라 패스 북면에 있다. 여름이 되면 눈이 적당히 다져지는데, 이때 로프를 연결해 오르막길을 만든다. 보통 6월 초부터 3개월 정도 열린다. 반면 남면은 눈이 녹아내리는 지점이다. 해가 뜨고 볕을 받으면 눈사태가 빈번하다. 그래서 동틀 녘까지 패스 아래 휴스팡(Xhuspang·4700m)까지 가야만 한다. 해발 4900m에서 출발해 5700m 패스 정상에 오른 뒤 다시 1000m를 내려가는 길이다. 이 코스를 6~7시간 안에 마쳐야 한다. 곤도고라 패스를 ‘히말라야 트레킹의 마지막 코스’라고 부르는 이유다. 너무나 위험해서 그렇게 부른다.



오후 11시쯤 캠프 주변은 수학여행 떠나는 학교 운동장처럼 분주했다. 일부 트레커가 벨트에 등강기·하강기·카라비너(등반용 쇠고리)까지 차고 돌아다녔다. ‘주마’라고 불리는 등강기는 가파른 길을 올라갈 때 로프에 연결해 쓰는 장비다. 로프에 연결하면 눈길에서 미끄러져도 떨어지지 않는다.



아슬아슬 아브루치 빙하를 넘는 포터들.
사위는 짙은 가스층에 휩싸여 있었다. 어둠은 공포를 더하기도 하고, 덜어내기도 했다. 칠흑 같은 어둠은 곤도고라 패스의 높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앞만 보고 가면 됐다. 반면 길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게 만들었다. 수백 명이 함께 내딛는 뽀드득뽀드득 발소리만이 위로가 됐다. 혼자서 이 길을 가라고 한다면 길을 나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정에 출발해 오전 3시30분에 곤도고라 패스 꼭대기에 섰다. 보통 4~5시간 걸리는데 알리 캠프에서 만난 현지인이 ‘남면에 눈이 많다’고 겁을 줘 발걸음을 재촉한 결과다. 패스 정상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깎아지른 내리막은 어둠과 짙은 가스층, 눈보라에 묻혀 ‘무형의 길’처럼 보였다. 구름 아래로 발을 내디뎌야 했다.



경험 있는 가이드가 많은 우리 팀이 앞장을 섰다. 보통 곤도고라 패스 남면은 여름이 되면 얼음계단이 만들어진다. 낮에 녹고 밤에 얼어붙는데, 이때 패스를 관리하는 현지인이 도끼로 얼음을 깎아 수천 개의 계단을 만든다. 지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중 하나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트레커는 패스 통과 비용으로 약 4000루피(5만원)를 내야 한다. 불행히도 이번에는 날씨가 푸근해 얼음계단이 허물어졌다. 로프를 잡고 조심조심 내려갔지만 무너진 눈계단에서 중심을 잡기는 힘들었다. 수십 번 자빠지고 고꾸라졌다. 등산화 속에 눈이 차고, 로프를 잡은 장갑 표면은 불이 나고, 선글라스는 더운 입김에 습기가 가득했다.



얼음계단은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다. ‘이러다가 사고가 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내리막이 끝났다. 해발 5000m 지점, 여기서부터 2시간여를 더 가서야 휴스팡에 닿는다. 야영지는 갖가지 들꽃이 가득했지만 간밤에 내린 눈으로 모두 안개꽃으로 변해 있었다. 한참이나 숨을 고른 뒤에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었다.



트레커들이 속속 야영지로 들어왔다. ‘지옥에서 열린 마라톤’을 마친 표정이었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들고 늦게 도착한 트레커를 맞았다. 독일인 에드가(50)는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채웠다”면서도 “인생에서 등반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아들과 딸의 남자친구와 함께 남아공에서 온 샘(51)은 “남자들끼리의 우정을 다지기에는 최적의 코스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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