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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고집이 콘텐트다 ③ 박대헌 책박물관 대표

“난 코코아로 주세요. 이 나이 되도록 커피도 못 배웠어요.”



40년 짝사랑, 책을 들고 완주에 터 잡았죠

 전북 완주로 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박대헌(60·호산방 대표)씨는 계면쩍게 웃었다. 커피 사 마실 돈이 있으면 책 한 권 더 사는 데 보탰을 그다. 십대 후반부터 수천 권의 장서를 갖추고 책 속에 파묻혀 살았으면 하는 꿈을 가꿔온 그답다. 나이 서른에 고서점 호산방(壺山房)을 차리고, 마흔 다섯에 강원도 영월에 책 박물관을 꾸린 ‘책 사나이’ 박대헌은 이제 육십 문턱에서 책 마을 촌장으로 더 옹골찬 꿈을 키워나간다.



일제강점기에 전북 완주군 삼례읍 양곡창고로 쓰이던 건물에 가벽을 치고 책 박물관으로 바꿨다. 박대헌 관장은 “몸의 양식인 쌀 창고와 정신의 양식인 책 박물관이 통했다”고 말했다. [완주=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일 오후, 완주군 삼례읍 옛 삼례역 앞 들머리가 떠들썩하다. 삼례 책마을이 동네방네 손님을 맞는 날이다. 80여 년 전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쌀을 수탈해가려 일본인이 지었던 양곡창고는 이제 우리 마음에 빛을 뿌리는 책 수장고로 변신했다. ‘불조심’이란 페인트 글씨가 선명한 붉은 벽돌 건물들은 아픈 역사를 딛고 책 박물관과 공방, 목공소 등으로 탈바꿈했다. 박대헌 책박물관 관장은 “꿈꾸는 책마을에 오신 걸 환영한다”고 인사했다. 책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그의 40년 세월이 완주에 새 뿌리를 박는 순간이다.



고교시절 청계천서 책에 눈 떠



 박 관장에게 책을 생명체로 인식시킨 이는 국문학자 강기진(1936~95) 선생이다. 고등학교 은사였던 강 선생은 1953년 출판된 『명정(酩酊) 사십년』을 소개하며 “제군들, 이 책을 한번 구해 읽어 보게나, 쉽게 구할 수는 없을 걸세”라 했다.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던 고등학생 박대헌은 이 책을 찾아다니다 고서 수집에 눈을 뜨게 됐다. 책 한 권 한 권에 깃든 영적인 비밀이 젊은 그의 가슴을 파고 든 것이다.



 “서울에서 호산방을 운영하면서 고서점이 갈 길을 많이 고민했어요. 옛 책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점차 잊혀져가는 세태가 안타까웠죠. 영월에 박물관을 만들러 갈 때는 책에 바쳤던 내 꿈을 걸어보리라 했지만 돌이켜보면 아쉬울 뿐이고요.”



 영월을 ‘박물관 고을’로 이끌며 지역문화 활동의 전범으로 꼽히던 그의 책 박물관은 10년을 못 채우고 마무리됐다. 박 관장은 “때가 아니었던 모양”이라 했다. ‘영월 책 축제’ 일곱 번, ‘책의 바다로 간다-정병규 북디자인’전 등 기획전 열한 번을 끝으로 그의 꿈은 전북 완주로 방향타를 돌렸다.



영월 박물관 접고 삼례읍으로



 “완주는 예로부터 전주와 더불어 한지 문화를 꽃피운 고장이죠. 임정엽 군수가 책마을 사업을 마음에 품고 저를 찾아왔을 때, ‘아, 이제 내가 뿌리내릴 곳을 찾았다’ 싶었습니다. 책과 사람, 책과 자연, 책과 역사가 어우러진 책마을 터로 맞춤한 곳입니다.”



 박 관장과 뜻을 나누겠다고 달려온 이들 또한 꿈이 큰 전문가들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못과 망치’를 운영하던 목수 김상림씨가 ‘김상림 목공소’를 냈고, 활판 인쇄 전문가 김진섭씨가 책 만드는 체험공간인 ‘책공방’을 차렸다. 재미마주(대표 이호백), 글씨 미디어(대표 홍동원) 등이 동참했고 디자이너 정재완(영남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책박물관의 디자인 작업을 품앗이했다.



 박 관장은 “앞으로 전국에서 책을 안다는 꾼들이 찾아오면 한 식구로 받아들여 ‘김 교수 책방’ ‘이 선생 서재’ 같이 공간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삼례읍 장날에는 책 벼룩시장을 열어 동네잔치 분위기를 책으로 북돋운다는 계획이다.



목공소·책공방 등 잇따라 문 열어



 책의 임자를 나타내려 책에 붙인 장서표 15인전, 초등학교 교과서에 단골로 삽화를 그린 김태형(1916~93) 그림전, 40년 동안 만화일기를 쓴 송광용(1934~2002)의 전시 등 개막 행사를 둘러보던 관람객들이 책박물관 한 쪽에 마련된 ‘정직한 서점’ 앞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호산방이 소장해온 다양한 분야의 책을 꽂아놓은 이 서가에는 사람이 없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형편 되는 만큼 돈을 넣고 가는 무인서점이다. 박 관장은 “아무리 책이 좋아도 죽을 때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돌고 도는 책의 운명을 이 서점에서 느끼시고 널리 책을 나눠보자 생각해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



완주(전북)=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삼례 책마을(bookmuseum.co.kr)=전북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247-1번지 옛 양곡창고 건물을 살려 책을 주제 삼아 조성한 문화 예술촌. 책 박물관, 책 공방, 서점, 목공소, 디자인 뮤지엄, 미디어아트 갤러리, 카페가 1만1825㎡(3577평)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070-8915-8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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