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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제한상영가의 모순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에는 가끔 희한한 장면이 나온다. 남편과 아내가 한 침대가 아니라 각자의 침대에 누워 잠자리에 드는 장면이다. 그 시절 미국인들의 부부관계가 유별했을 리는 없을 터. 이는 1930년대부터 위세를 떨친 일명 ‘헤이즈 코드’라는 검열제도의 유산이다. 이에 따르면 남녀가 침대에 같이 있는 모습은 전면 금지는 아닐망정 주의 깊게 다뤄야 할 항목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남녀가 영화 속에서 한 침대에 있으려면 한 사람은 다리를 침대 아래에 두거나 해서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을 피해야 했다.



 흥미로운 건 이 같은 검열을 주도한 게 정부 기관이나 외부 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헤이즈 코드는 당시 할리우드 영화의 윤리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영화사들이 자구책으로 만든 제작지침이다. 형식은 자율규제였지만 실상은 막강했다. 문제가 될 법한 장면이 있는 영화라면 시나리오 단계부터 제작 허락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헤이즈 코드의 악명은 1960년대까지 계속됐다. 이 무렵 영화사들은 이를 폐지하고 지금과 같은 등급분류 제도를 만들었다. 다시 말해 지금 미국의 영화 관람등급을 정하는 건 정부기관이 아니다. 미국영화협회(MPAA), 바로 과거 헤이즈 코드를 만들었던 대형 영화사들로 구성된 단체가 주관한다. 이들의 등급분류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주는 게 주 목적이다.



 관람객의 연령을 제한하는 취지는 한국도 비슷하다. 다만 국내에는 관련 내용이 법제화돼 있고, 공공기관인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등급분류를 담당한다. 또 ‘제한상영가’라는 게 있다. 암만 나이 먹은 관객이 보겠다고 해도 특정 영화관, 즉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할 수 있는 영화다. 그런데 국내에는 현재 제한상영관이 한 곳도 없다. 제한상영가로 분류되면 사실상 개봉을 못한다는 얘기다. 이는 이전의 ‘등급보류’가 2000년대 초 위헌 판결을 받은 뒤 ‘제한상영가’ 등급이 신설될 때부터 논란이 거듭된 문제다. 제한상영가 역시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2008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이후로 관련 법 규정이 상세해지기는 했지만 논란은 수시로 불거진다.



 엊그제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가 제한상영가로 분류됐다. ‘직계 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인 표현’이 있다는 게 영등위의 판단이다. 영화를 직접 보지 않은 입장에서 그 판단에 가타부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비윤리적, 반사회적’이라는 표현 역시 그 내용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제한상영을 허용했으되, 사실상 상영을 할 수 없는 모순은 영등위가 직접 제한상영관을 운영하기라도 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이 모순을 계속 방치한다면 어떤 영화를 제한상영가로 분류하든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는 혐의를 받는 일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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