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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 같은 전선 … 점용료 없어 마구잡이 설치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이영희(73)씨는 거리의 전신주들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 전신주에 아슬아슬하게 얽혀 있는 전선들 때문이다. 전신주에는 전력공급용 전선뿐 아니라 케이블방송·인터넷통신용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다. 규정상 전신주에 설치할 수 있는 전선 수는 12가닥이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수십 가닥은 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씨는 “IT 선진국이라는 한국 통신선로가 무질서한 사실이 안타깝다”며 “자칫 전선들이 합선돼 불이 나거나 전선이 무거워져 전신주가 쓰러진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J 신문고] 전신주에 통신·케이블 선 왜 엉켜 있나요 - 고양시 이영희씨
업체들 전신주 사용료만 내 "전선도 내면 이중부과" 반발
한전·지자체 공사비 갈등에 땅 속으로 묻는 사업도 표류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전신주에 전력공급용 전선과 케이블방송·인터넷통신용 전선이 어지럽게 엉켜 있다. 규정상 전신주에 설치할 수 있는 전선 수는 12가닥이다. 지난해 서울시엔 전선 사고, 전선 무단 설치 등으로 민원 6000여 건이 접수됐다. [안성식 기자]
 전신주 위에 난립한 전선들이 도심의 흉물이 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에 전선 사고, 전선 무단 설치 등으로 접수된 민원은 6000여 건이나 됐다. 서울시 도시안전실 관계자는 “통신·케이블 업체 등이 전신주에 무단으로 전선을 깔거나 서비스를 해지했는데도 철거하지 않아 폐전선으로 남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전선이 많아지면 전선이 늘어져 감전·합선 사고 위험이 커지고 전신주에도 부담을 준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서울 중구 충무로에선 한 통신업체가 새 통신선을 설치하던 중 전선들을 무리하게 당기는 바람에 전신주가 쓰러져 1명이 다치고 300가구가 정전 피해를 보았다.



 현재 통신회사와 케이블방송사업자(SO)들은 한전과 KT로부터 전신주를 빌려 쓰고 있다. 정부는 1990년대 초 방송·통신분야 발전을 위해 전신주에 케이블·인터넷용 전선 설치를 허용했다. 자체 통신 인프라가 없는 업체들을 배려한 조치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인터넷·케이블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전신주에 전선이 난립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현재 통신·케이블 사업자에 대한 점용료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전선 난립으로 민원과 피해가 늘어나는데도 통신·케이블 사업자들이 지자체에 비용을 내지 않고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통신·케이블 사업자들은 한전과 KT엔 전신주 1개당 연간 9000원씩의 점용료를 납부하지만 지자체에는 내지 않고 있다.



 지자체들은 또 전신주와 마찬가지로 공중의 전선도 도로 공간을 차지하므로 점용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한전과 KT로부터 전신주 1개당 연간 925원씩의 도로 점용료를 받을 뿐 전선에 대해선 받지 않고 있다. 서울시 등 지자체는 업체들에 공중선 점용료를 받아 전선 정비사업에 쓰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한전과 KT, 통신·케이블 업체들은 전선에 점용료를 부과하게 되면 전기·통신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거라며 반대하고 있다. 결국 시민 부담만 가중시킬 거란 주장이다. 업체들은 또한 한전과 KT가 이미 전신주 점용료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전선 점용료를 따로 내는 건 이중부과로 부당하다고 반박한다. 대법원은 실제로 지난해 5월 서울시가 한전을 상대로 제기한 전선 점용료 청구 소송에서 “전신주는 전선을 연결하는 시설물로 전신주 점용을 허가하면 당연히 전선 설치를 전제한 것이므로 불법 점용이 아니다”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자 국토해양부는 아예 지난해 7월 도로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기도 했다. 통신사업자들이 전신주에 전선을 설치할 때 해당 지자체의 허가를 받고, 공중선에 대한 점용료를 내게 하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통신업계 등이 강하게 반발하며 갈등이 깊어졌다. 그러자 총리실은 지난해 11월 2년간 전봇대를 뽑아 전선을 땅으로 옮기는 지중화 사업 등 전선 정비 개선사업을 자율적으로 실시하고 2015년 초 공중선 실태를 조사해 점용료·허가제 도입 여부를 결론짓자는 중재안을 내놨다. 국토교통부 도로운영과 김학원 사무관은 “중재안은 한전·통신·케이블 업체와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전선 난립 문제를 개선해 보자는 취지였다”며 “각 단체들이 일단 동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선 지중화사업 놓고도 갈등=하지만 전신주 지중화 사업은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는 중이다. 대구시 남구 봉덕동 미군부대 ‘캠프워커’ 앞 봉삼중앙길에는 지자체와 한전, 통신사들이 공사비를 두고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2010년 지중화 사업을 시작했지만 아직 한 개의 전봇대도 뽑지 못하고 있다. 남구청 관계자는 “구청 입장에선 통신사 케이블은 무단 시설물로 세금을 들여 땅에 묻어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한전 측은 “전기사업법의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지자체가 (지중화 사업의) 수익자이므로 이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신사들도 한전에 사용료를 내는데 지자체 이익을 위해 지중화 공사비를 추가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구뿐 아니라 서울 강남·동작구, 경기도 수원시 등에서도 같은 분쟁들이 이어지고 있다.



 김찬오(안전공학)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통신·케이블 사업자들이 각각의 통신선을 설치해야 해 현재 전신주 용량을 초과하는 것이 문제”라며 “장기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지하 공동통신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승호·손국희 기자, 대구=김윤호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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