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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자 맞히기 왜 하냐구요, 어원 알면 어휘력 크게 늘죠"

미국 워싱턴 D·C 게이 로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스펠링 비 대회에 한국지역 대표로 참가한 인도계 미국인 리시스리나바산(오른쪽)이 ‘미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교육받은 일본계’를 뜻하는 영어 단어 ‘키베이(kibei)’의 스펠링을 맞추고 있다. [사진 윤선생영어교실]


국내 초등학생이 한글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 것처럼 미국에선 영어 단어의 발음을 듣고 스펠링을 정확하게 말하는 대회가 매년 열린다. 1925년 시작된 이 대회에는 미국 전역은 물론이고 한국?캐나다 등 10여 개국에서 만 15세 미만 학생들이 참가한다. 예선을 거쳐 라운드가 올라갈수록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전문 용어가 나오기 때문에 그리스어?라틴어?독일어 등 영어의 어원을 고려해 스펠링을 유추하는 능력을 기른 학생이 우승의 영광을 차지한다. 국내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해 대회에 참여 하는 학생들이 있다. 미 수도 워싱턴 D?C 에서 열린 올해 대회 현장을 가봤다.

영어철자말하기 대회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 현장에서 알아본 영어단어 공부법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 게이로드 내셔널 리조트 앤드 컨벤션센터. ‘2013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Scripps National Spelling Bee)’대회가 한창이다. 뉴욕주 너대니얼 호손 중학교에 다니는 인도계 미국인 아빈드 V 마한칼리(Arvind V. Mahankaliㆍ13)가 최종 결선에 올라 마이크 앞에 섰다. 출제위원인 자크 베일리 버몬트대 고전학 교수가 “크네이들”이라고 발음했다. 대회에 올해로 네 번째 참가하는 아빈드는 지난해 3위를 차지하는 등 상위권 성적을 거뒀지만 독일어에서 파생된 단어의 스펠링을 맞히지 못해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날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최후의 1인이 된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출제위원에게 “단어의 어원이 독일어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k, n, a, i, d, e, l”이라고 또박또박 스펠링을 말했다. 크네이들은 이스트를 넣지 않은 탄 밀가루와 달걀, 소금 등을 재료로 아몬드 가루나 간 감자와 섞어 찐 경단을 가리킨다. 그가 말한 스펠링은 정확했고, 올해 챔피언에 등극했다. 아빈드는 “사전을 보며 약점이었던 독일어 어원을 집중 공부했다. 독일어의 저주가 독일어의 축복으로 바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한국 예선 입상자 김도엽·장우혁·박재영·이성준군, 오승원양, 올해 본선대회 우승자 아빈드 V 마한칼리, 한국 예선대회 우승자 리시 스리나바산.
영어스펠링말하기 대회인 SNSB 대회가 지난달 28~30일 열렸다. 전 세계적으로 1100만여 명이 예선을 치러 281명이 미국 본선 대회에 출전했다. 참가자들은 단어의 발음을 들은 뒤 1분 이내에 예문, 또 다른 발음의 여부, 어원, 뜻 등을 질문하고 정답을 얘기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지필고사도 치르는데, 3라운드까지 진출하면 지필고사 점수를 합쳐 준결승 진출자 42명(대회마다 상황에 따라 다소 변경)을 추린다. 11명이 결선에 진출해 우승자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문제를 푼다.



국내 예선에선 기술자인 아버지를 따라 2011년부터 부산에서 살고 있는 인도계 미국인 리시 스리나바산(부산국제외국인학교 2)이 우승해 이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대회 규정상 예선이 열리는 국가에 거주하면 국적에 상관없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리시는 3라운드까지 갔지만 지필고사 성적이 합격권에 못 미쳐 준결승에는 나가지 못했다. 국내 예선 입상자인 중학생 5명도 대회를 참관하며 문제를 풀어보는 모습이었다. 노트에 문제를 일일이 받아 적은 오승원(영훈국제중 2)양은 “생전 처음 듣는 단어가 많은데, 특히 프랑스어 어원이 포함된 단어는 프랑스 발음이 섞여 매우 어렵더라”고 말했다.



대회 총책임자인 페이지 킴블은 “스펠링 비는 단순히 영어 단어를 암기해 맞히는 대회가 아니다”라며 “어렸을 때부터 어원·어근에 따라 단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해하고 올바른 스펠링을 쓰고 발음 하는게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공부를 하다 보면 모르는 단어라도 스펠링을 쓸 줄 알게 되고 뜻을 유추할 수 있어 어휘력이 향상된다는 말이다. 대회 중계를 맡은 ESPN의 폴 러플러 아나운서는 “단어 중간에 ‘어’ 발음이 날 경우 그리스 어원이라면 o를 쓰고 라틴어 어원이라면 i를 주로 쓰는데, 90% 이상 맞는 표기 법칙”이라고 소개했다.



한국 학생들도 스펠링 비 대회 준비가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내 2등을 한 이성준(인천 진산중 1)군은 “영어 말하기·글쓰기의 기본은 스펠링인데, 모든 단어를 외울 순 없다”며 “어원을 알고 스펠링 배치 규칙을 정리하다 보면 훨씬 기억하기 쉽다”고 말했다. 이군에 따르면 이탈리아어가 어원인 영어 단어에서 ‘ㅊ’ 발음이 나면 대개 ‘cc’가 쓰인다고 한다. 이번에도 ‘아치카토라(acciaccaturaㆍ빠른 꾸밈음)’라는 단어가 출제됐는데, 이탈리아 어원이라는 설명을 듣고 스펠링을 떠올렸다고 한다.



한국 학생들은 어원 설명이 담긴 스펠링 비 주최사 스크립스의 ‘메리엄 웹스터(Merriam Webster)’ 사전을 주로 본다. 대회에서 만난 박재영(부산 센텀중 2)군은 “초등 5학년 때부터 스펠링 비 사이트에서 나라별로 정리된 어원을 찾아 공부했다”며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을 때마다 어원별로 분류해 정리했다”고 말했다. 사전을 바로 찾지 않고 뜻을 유추하는 습관을 기르는 학생도 있다. 오승원양은 “베니팩터(benefactor)는 베니핏(benefitㆍ이득)과 팩터(factorㆍ요소)가 합쳐진 단어여서 이득을 주는 요소ㆍ요인이기 때문에 은혜를 베푸는 사람(기부자)이라는 의미가 된다”고 설명했다. 영어교육기업 윤선생영어교실의 이보영 국제영어교육연구소 평가연구팀장(42)은 “모노폴리(Monopolyㆍ독점), 모놀로그(monologueㆍ독백), 모노크롬(monochromeㆍ단색) 같은 단어를 각각 모르더라도 접두사 ‘mono’가 애꾸눈이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다는 걸 알면 모두 ‘혼자’ ‘유일한’ 등의 의미를 내포한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1968년(당시 11세)에 스펠링 비 대회에 출전했다. 국내에선 2008년부터 예선 대회가 열려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본선에 참가했다. 국내 대회는 국제영어대학원대학이 주최하고 윤선생영어교실이 후원한다.



워싱턴 D.C=심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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