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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돈만 남은 청담동] 20년 못 버틴 청담동 전성시대 ②

박성목(43)씨는 청담동 사람이다. 벌써 15년째 사는 곳도, 일하는 곳도 청담동이다. 한동안 그는 청담동을 벗어날 일이 거의 없었다. 일할 때뿐 아니라 놀 때도 당연히 청담동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누구를 만나든 약속장소는 늘 청담동이었다. 그가 혼자만 편하자고 특별히 고집 부려서가 아니다. 어디 살든, 어디서 일하든 다들 먹고 마시러 청담동에 오고 싶어 했으니까.

글=유성운·조한대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점령한 2013년 청담동. 청담동은 1990년대엔 유행 첨단을 걷는 카페·레스토랑이 밀집한 곳이였으나 이제는 그 명성을 이태원 등지에 내줬다. 김경록 기자

“점심은 하루에를 찾아 함박스테이크를 먹거나, 안나비니에서 파스타를 먹고 후식으로 에땅 끌레르에 가서 녹차빙수를 먹었어요. 저녁 약속은 시안이나 궁으로 잡을 때가 많았고, 가끔 와인 마시러 AOC에 가곤 했죠. 일주일의 일상이 대체로 그런 식이었어요.”

 그러나 그의 약속 장소는 최근 몇 년 새 크게 달라졌다. 요즘은 가깝게는 가로수길, 멀게는 다리 건너 한남동·성북동·서촌·상수동에서 사람을 만난다. 청담동에서 약속하는 일은 드물다. 사람들이 자연스레 청담동에서 멀어지면서, 청담동 사는 그도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거다. 이렇게 더 이상 찾지 않는 청담동,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풍미한 하루에와 시안·커피미학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래서 물었다. 왜 청담동을 떠났는지.

임대료가 급등한 청담동에서 버틸 수 있는 업종은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면 술집이나 헤어숍 정도라고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풍미했던 시안·커피미학·궁이 있던 자리에도 술집과 헤어숍 등이 들어섰다. 왼쪽부터 헤어숍 제니하우스(시안 자리), 한정식집 애류헌(커피미학 자리), 실내 포장마차인 청담포차(궁 자리).

청담동, 더 이상 '청담동'이 아니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인 발레리나 강예나(38)씨는 청담동 매니어였다.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98년부터 6년간 활동했던 강씨는 “휴가 때 한국에 오면 청담동 가는 게 낙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청담동은, 친구는 물론 주요 문화계 인사를 만날 수 있는 사교의 장이자 지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휴식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에 앉아 미국에서 먹던 수제 조각 케이크 메뉴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예전만큼 청담동을 찾지 않는다. 그는 “요즘은 청담동이 아니라 가로수길이나 한남동에서 주로 친구들을 만난다”고 말했다. 왜 그럴까.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강씨는 “굳이 청담동에 갈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전에는 청담동에 가야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었어요. 테라스 있는 카페도 그렇고, 갈 때마다 늘 새로운 메뉴를 내놓는 최신 레스토랑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청담동이 아니더라도 이런 것들을 다 누릴 수 있으니 꼭 청담동에 가야 할 이유가 없어진 거죠. 우연히 사람 만나는 재미, 그런 것도 이젠 청담동에 없잖아요.”

오리지널 ‘청담동’보다 더 사랑받는 가로수길.
 강씨 설명처럼 그 시절 청담동은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우연히 사람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언제든 아는 사람 한둘은 만났을 뿐 아니라 유명 연예인과 문화인도 다 그곳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어찌 보면 가로수길이나 한남동은 그 시절 청담동의 이미테이션에 불과하다. 그런데 카피(복제품)가 정작 오리지널 청담동보다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더 많다. 예컨대 가로수길은 각종 패스트패션 브랜드나 편집숍은 물론 아기자기한 작은 옷가게·신발가게 등 재미있는 상점이 많아 식사뿐 아니라 쇼핑 욕구까지 해결할 수 있다. 한남동은 또 어떤가. 외국인이 운영하는 이국적 음식점을 찾아가 외국인 손님과 뒤섞여 글로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강씨는 “청담동은 예전 같은 특별한 매력이 없다”며 “청담동을 갈 때는 주로 머리 할 때 뿐”이라고 말했다.

스타, 청담동을 떠나다

CJ E&M 상암동 본사. CJ E&M이 청담동을 떠나면서 스타도 같이 떠났다.
강씨 설명처럼 1990년대 청담동이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던 이유는 유명 연예인도 한몫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이정재·김민종·전도연 등 당대를 주름잡던 톱스타를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하루에 같은 카페에는 연예인마다 즐겨 앉는 자리가 있어 ‘송혜교 테이블’ ‘정우성 테이블’ 같은 별칭이 붙기도 했다.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단골집을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넣기도 했다. ‘접속’ ‘쉬리’ ‘정사’ 등 90년대 후반 큰 화제를 모은 주요 영화 속에 청담동이 등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톱스타들도 청담동을 예전만큼 찾지 않았다. 배우 예지원(40)씨는 “가로수길 같은 곳이 생겼더라도 톱스타들이 예전처럼 청담동을 찾았다면 여전히 핫 플레이스로 남지 않았을까”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다면 스타들은 왜 청담동을 찾지 않게 된 걸까. 예씨는 나비효과를 얘기한다. 청담동에 있던 음악채널 Mnet과 압구정동에 있던 CJ엔테테인먼트(CJ E&M)본사가 상암동으로 이전하면서 문화·연예계 종사자들이 썰물처럼 청담동을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는 “CJ E&M이 이곳에 있던 시절에는 영화·가요·뮤지컬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미팅을 거의 청담동에서 잡았다”며 “하지만 2010년 CJ E&M이 상암동으로 이전한 후로는 상수동 등 홍대 인근에서 많이 한다”고 말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계를 좌우하는 대형 기획유통사가 이전하자 이에 관계된 사람들이 대거 이동했다는 얘기다.

 프리랜서 홍보 전문가 박모(36·여)씨는 “영화나 음반 산업 관련 미팅은 대부분 수퍼 갑(甲)인 CJ E&M의 스케줄에 맞춰 돌아간다”며 “관련 기획 홍보사들이 상암동에서 멀고 땅값 비싼 청담동에 굳이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상암동에서 가까운 홍대나 그 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말했다.

힐링의 시대, 청담동은 불편하다

그러나 여전히 대형 연예기획사인 SM도 있고 JYP도 있는데, CJ E&M의 이전만으로 청담동 잔혹사가 빚어졌다는 얘기는 뭔가 부족한 설명이다. 부족한 2%를 스타일리스트 김성일(44)씨가 채워줬다.

 그는 1990년대에 청담동에서 1년이면 365일을 보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청담동에 자리(직장)를 잡았다.

 “서울에 돌아왔을 때 하루에와 카페 드 플로라 딱 두 개만 있었는데 시원한 통유리창과 테라스가 마치 파리에서 즐겨 찾던 카페 같았다. 청담동 외 다른 곳은 너무 촌스러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약속과 일정을 청담동으로 잡았다.”

 하지만 요즘 그가 즐겨 찾는 곳은 성북동이다. 촌스러운 80년대 스타일의 돈가스나 설렁탕을 먹으러 간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트렌드세터로 인정받는 그가 강남 아닌 강북을 찾는 이유는 뭘까. 답이 의외다.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고, 옛것이 주는 촌스러우면서도 푸근한 느낌이 좋다”는 것이다.

 그 시절 청담동을 찾았던 이유와 정반대다. 한껏 차려입고 갈 곳 없던 시절, 그래서 청담동을 찾았던 사람들이 이제 거꾸로 차려입지 않아도 되는 곳을 찾는다.

 김씨는 “예전에는 약속이 하루에나 시안에서 잡혔는데 옷차림이 별로라고 생각되면 집에 가서 아르마니나 질샌더 재킷에 발리 신상(신제품) 구두로 갈아 신은 뒤 약속장소에 갔다”며 “그런 불편함이 매력적이고 만족스럽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제는 그런 게 귀찮고 부담스러운데 청담동은 여전히 아무렇게나 차려입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가 문제”라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 옥주현(33)씨는 최근에 부는 힐링(Healing) 열풍과도 연관 지어 말했다. “과거에는 대부분 남들이 어떻게 나를 봐 줄까라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이제는 내가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좋은 것 같다”며 “어떻게 보면 요즘은 신상으로 꾸미고 핫 플레이스를 찾아가는 게 촌스러운 발상”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 장광효(55)씨는 “요즘은 성북동·서촌·연남동처럼 70~80년대 서울의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이 인기”라며 “작은 문방구와 세탁소, 사골을 푹 고아 만든 설렁탕에 감격하는 모습은 그만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청담동 스타일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풍류를 즐기는 듯 보이고 싶은 또 다른 허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임대료 급등 · 럭셔리 브랜드만 청담동에 남다

이런 여러 요인이 겹치며 사람들은 청담동에서 멀어졌다. 청담동 모습도 바뀌었다.

 요즘 청담동에 가면 내부 인테리어 공사 중인 건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 건물 외부에 붙은 ‘임대’라는 팻말을 쉽게 볼 수 있다. 박상율 부동산뉴스공인중개사 실장은 “요즘 청담동에서 같은 상호로 가게를 운영하는 기간은 평균 2~3년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청담동에서 버티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급등한 청담동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건 해외 럭셔리 브랜드 뿐이다.
 과거 청담동을 찾던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던 추억의 공간들도 예외는 아니다. 90년대 초반 청담동 거리에 즐비했던 화랑이나 90년대 중반 들어섰던 유명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던 자리는 대부분 헤어숍으로 바뀌었다.  그때 그 시절과 바뀌지 않은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청담동 대로변에 자리 잡은 럭셔리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다. 96년 캘빈클라인 전문 매장을 시작으로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한 명품 매장은 청담동 상권에서 불패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럭셔리 브랜드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2000년대 이후 폭등에 가까운 청담동의 부동산 임대료 상승 때문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2000년 초 1층 330㎡(100평) 기준으로 보증금 1억~2억원에 월세 500만~800만원 선이었지만 지금은 보증금 4억~5억원에 월세가 3000만~4000만원대”라고 말했다. 자기 건물을 갖고 있지 않은 자영업자들은 버티기 어려운 수준이다. 또 다른 부동산 관계자는 “럭셔리 브랜드가 속속 들어서며 임대료가 10년 동안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며 “여기에 입점하느냐 하지 못하느냐가 브랜드의 가치를 좌우하기 때문에 이 브랜드들은 머니게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담동 한 럭셔리 브랜드 매장 관계자는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에 거주하는 주요 손님은 주로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손님이 많이 찾지 않고 임대료도 비싸지만 기를 쓰고 청담동에 매장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다.

 정유선 까르띠에 홍보부 과장은 “청담동은 수익을 내기 위해 매장을 두는 곳이 아니라 이곳에 입점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강한 곳”이라며 “임대료가 아무리 비싸도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면 임대료를 상쇄하고도 남는 이익”이라고 말했다.

 다른 럭셔리 매장들도 다 비슷한 반응이었다. ‘청담동=럭셔리’라는 이미지 때문에 이곳에 매장을 내지 않으면 매출에 차질을 빚는다는 것이다. 청담동에 매장을 갖고 있다는 게 가장 큰 광고인 셈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청담동 찬가는 현재진행형이다. 90년대 후반만 해도 조르조 아르마니와 구찌·프라다 정도만 있었지만 이제는 30여 곳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줄지어 서 있다. 올 하반기 버버리가 입점하려고 현재 공사 중이다.

 자본에 따른 불가피한 변화라지만 지금의 청담동 모습에 아쉬움을 갖는 사람이 많다.

 남성잡지 ‘맨즈헬스’의 백승관(43) 편집장은 “예전 청담동은 최신 문화가 살아 숨쉬는 생기 넘치는 공간이었다”며 “퓨전 요리, 제3세계 음악, 와인, 아프리카산 커피, 그림 등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특별함을 느꼈는데 이제는 명품을 사거나 머리를 매만지는 것 외에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했다. 그는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셈”이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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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