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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대 간 일자리 전쟁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끌고 시장에 가고 있었다. 지나가던 이가 “당나귀는 타라고 있는 것 아니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웠다. 그러자 다른 이가 말했다. “저런 불효자를 봤나. 늙은 아버지를 걷게 하다니.” 이번에는 아버지가 당나귀에 탔다. 지나가던 여인이 말했다. “저런 게으른 남자 좀 봐. 자기만 타고, 어린 아들을 걷게 하다니.” 아버지는 아들을 함께 태웠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부끄럽지도 않소. 힘없고 불쌍한 나귀에 두 사람씩이나 타고 가다니.” 아버지와 아들은 생각 끝에 장대에 당나귀를 거꾸로 매달고 낑낑거리며 어깨에 메고 갔다. 익히 아는 이솝 우화다. 원래 이 우화의 교훈은 줏대 없이 남의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만, 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빗대면 전혀 다르게 읽힌다.



날로 격화되는 일자리 다툼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일자리를 찾고 있다. 아들이 먼저 일자리를 차지하면 불효자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아들을 제쳐놓고 아버지가 일자리를 차지하면 장래가 창창한 아들의 처지가 딱하다. 그렇다고 같은 일자리를 아버지와 아들이 나눠 갖기도 어렵다. 우물쭈물하다간 그나마 나온 일자리도 다른 사람이 채갈 판이다. 흡사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가 일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아직 충돌까지 가진 않았지만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이제 폭발 직전의 전운이 감돈다.



 세대 갈등은 지난 4월 여야가 50대 아버지 세대를 겨냥해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법안에 합의하면서 표면화됐다. 당장 취업을 못해 백수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20대들의 반발이 컸다. “아버지 세대가 일자리를 꿰어 차고 놓질 않으면 자식세대의 신규취업이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기업들도 갑갑하긴 마찬가지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장년층의 정년을 의무적으로 60세까지 늘리자면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신규채용은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치권은 5월 말 20대 취업자를 위한 맞춤형 선물을 내놨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을 고쳐 공공기관이 신규직원을 채용할 때는 정원의 3% 이상을 반드시 29세 미만의 미취업자들을 고용하도록 한 것이다. 20대를 한 명이라도 더 취업시키려는 국회의원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그런데 청년고용 확대라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데서 문제가 터졌다. 공공기관의 신규채용 규모가 정원의 3%에 그치는데 이를 20대가 다 가져가면 30대 미취업자는 공공기관 취업 길이 아예 막힌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30대 취업희망자들이 헌법소원 제기까지 거론하자 정부는 청년의 범위를 34~35세까지 넓히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한다.



 일자리에 관한 한 40대의 불만도 30대 못지 않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청년창업지원제도에서 청년은 39세까지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어렵사리 창업을 결심한 40대 중년의 가장들은 더 이상 청년이 아니란 이유로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세대 갈등은 처음에는 20대와 50대가 대립하다가, 20대와 30대가 일자리를 다투고, 30대와 40대가 필사적으로 경쟁하는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이 사회 도처에서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벌어지는 세대 간 일자리 다툼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질 않으니 기존의 뻔한 일자리를 두고 여러 세대가 경쟁하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이 내놓은 것처럼 특정 세대를 겨냥한 일자리 확대방안은 필연적으로 여타 세대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일자리 경쟁의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생기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대 간 경쟁구조를 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경제 전체에 새로운 일자리를 공급하는 것이다. 당나귀 한 마리를 놓고 누가 탈까 고민할 게 아니라 한 마리를 더 마련할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고용 늘리는 성장방식 찾아야



 박근혜정부는 경제정책의 초점을 ‘성장’에서 ‘고용’으로 전환하고, 성장률 대신 고용률 70%를 국정목표로 잡았다. 그간 수출·대기업 중심의 성장 지상주의가 충분한 고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이제는 고용률을 높이는 데 정책역량을 모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성장이 고용률을 높이지 못했다고 해서 성장 없이도 고용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성장방식이 고용을 충분히 늘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성장의 방식을 고용을 늘리는 쪽으로 바꾸면 될 일이지, 성장을 포기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고용률 70% 로드맵’은 성장에 대한 언급은 없이 어떡하든 5년간 238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한다. 주로 시간제 일자리 확대와 근로 시간 축소를 통해 고용률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성장을 통해 제대로 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일자리를 나눠 갖는 형태로 고용률을 높이는 방안이다. 그러나 성장 없이 고용률만 높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성장이 없이는 전체 소득의 파이가 늘어나지 않고 이를 잘게 나누면 개인에게 돌아가는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삶의 질도 떨어진다. 고용 형태를 다양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선택 폭을 늘린다는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그것이 지상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 한 마리에 함께 타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긴 하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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