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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DMZ에서 가로막힌 키위의 꿈

남윤호
논설위원
1963년 제작된 영화 ‘대탈주’엔 나치에게 쫓기던 스티브 매퀸이 오토바이로 철조망을 훌쩍 뛰어넘어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건 가물가물해도 이 장면만은 또렷이 기억한다는 영화 팬이 많다. 그런데 우리의 군사분계선 앞에서 이를 떠올리며 기발한 상상을 한 외국인이 있다. 물론 매퀸처럼 철책선 위로 붕붕 날아보려던 건 아니다. 대신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비무장지대(DMZ)를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주인공은 뉴질랜드의 기업인이자 사회사업가 겸 여행가이기도 한 개러스 모건(60). 뉴질랜드와 호주에선 얼굴이 제법 알려진 유명인사다. 올 초 현지 토종새를 보호하겠다며 집고양이 추방 캠페인을 벌여 해외토픽에 소개된 적이 있다. 오토바이로 세계 각지를 여행해온 그는 2006년 우리나라에도 왔다. 효성(현 S&T)의 오토바이를 타고 부인·동료 등 4명과 전국 3500㎞를 누볐다.



 그는 북부 접경지대에 들렀을 때 분단국임을 실감하면서 북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제2 땅굴을 견학하는 도중엔 호기심 탓에 곧장 북한으로 넘어가 봤으면 하는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지난해 초 부인과 함께 평양을 다녀왔다. 그 뒤 러시아에서 출발해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오토바이 여행 계획을 짰다고 한다. 백두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남하하겠다는 야심적인 루트다. DMZ 설정 60주년에 맞춰 평화를 기원하면서 달리겠다는 게 그의 여행 명분이다. 부인과 동료를 포함해 모두 6명이 탈 오토바이를 이미 지난달 러시아에 옮겨 놓은 상태다.



 문제는 당사국 정부의 허가다. 지금까지 뉴질랜드·미국·러시아 그리고 북한 정부까지 여행허가를 내줬다고 그는 밝혔다. 딱 한 곳, 바로 한국 정부만 불허해 발이 묶여 있다며 언론에 등장해 투덜거리고 있다.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은 그에게 ‘신변안전을 고려해 거절한다’는 본국의 방침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건은 왜 한국 정부가 한국 땅에 들어간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좀 더 기다려 보다 안 되면 북한 쪽 DMZ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는 우회 루트를 대안으로 검토 중이다.



 그런데 모건이 가로지르겠다는 DMZ가 어떤 곳인가. 우리 현대사가 남긴 아픈 상처 아닌가. 또 우리의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불철주야 지키고 있는 곳 아닌가. 이런 곳에서 외국인이 개인적인 여행을 할 테니 문 좀 열어 달라고 하니, 우리 정부로선 달가울 리가 없을 것이다.



 또 남북관계를 다루는 정부로선 여러 고려할 점이 있을 것이다. 물정 모르는 외국인의 오토바이 활극을 내버려 뒀다간 엄중한 한반도의 현실이 희화화될 우려가 있다. 안 그래도 따져봐야 할 변수가 많은 남북 문제에 불필요한 잡음이 끼어들면 곤란하다…. 물론 현지 공관의 설명처럼 모건 일행의 안전을 걱정하는 순수한 배려도 있을 터다.



 그렇다 해도 DMZ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안을 내놓은 상태에서 정부가 외국인의 평화적인 통행을 불허하는 게 혹시 서로 어긋난 방향으로 비치지나 않을까 걸린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만찬에서 제안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북이 뭘 해보려고 해도 꽉 막혀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북이 하는 것을 넘어서 국제사회가 같이 참여해 이 문제를 풀면서 평화적으로 가는 데 힘을 합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런 차원에서 제안한 것입니다.”



 막힌 데를 뚫어보자는 아이디어였지만 아직까지는 여전히 막혀 있는 상태다. 경색이 경색을 부르는 ‘도돌이표’ 국면이다. 어디선가 음표 하나가 튀어나와 다음 소절을 타고 갈 수 있기를 모두가 바라는 상황이다. 키위의 여행 같은 세계인의 관심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을까.



남윤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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