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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막히자 바로 옆 도시로 … 현금 뭉치는 기차 수송



중국의 경제도시 광저우의 사채업 상황에 밝은 한 소식통은 조선광선은행 주하이 대표부의 김귀철(58) 대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러셀과 한 번만 거래한 것도 아니고 그 외의 여러 선과도 자주 거래한다. 김귀철은 광둥어와 베이징어를 현지인처럼 구사하는 중국통인데 여기서 10년 넘게 활동해 왔다. 북한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외환 전문가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하이를 주목하는 한 관계자는 “대표부엔 김귀철과 직원 5명이 근무한다는 게 최근 확인됐다”며 “광선은행이 중국에서 세탁하는 자금 규모는 연 30억 달러 정도인데 주하이(珠海)가 단둥(丹東)보다는 조금 적다”고 설명했다.

사채업자를 이용한 돈세탁
김귀철이 러셀을 이용한 방식은 전형적으로 사채업자를 이용하는 지하금융이다. 지하금융 역사가 오랜 광저우·선전에선 흑사회가 대규모 지하자금을 운용하는데 이들은 마약·매춘·도박과 연계된 하부 조직을 거느리고 있어 돈세탁 연계망을 잘 갖추고 있다. 홍콩 정보조사회사의 한 관계자는 “흑사회는 중국의 폭력조직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실제로는 지역·분야별로 세분화해 있다”고 말했다. 광둥 지역엔 일본 야쿠자와 연결된 삼합회, 마카오·주하이를 장악한 대만계 주롄방(竹聯幇), 대륙계(중국 본토)인 14K, 마카오 본토 출신 수이팡(水房)이 활개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카오 카지노의 도박산업도 이들과 연결돼 공생하는데 이들 조직은 지하금융·돈세탁의 전문가”라며 “이는 북한에 최고의 돈세탁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돈세탁을 하려면 북한은 먼저 ‘현금 뭉치’를 갖고 나와야 한다. 이 소식통은 “평양에서 선양(瀋陽)으로 보낼 땐 외교행낭에 담아 주선양 북한 총영사관에 항공편으로 보내고, 신의주에서 단둥으로 보낼 땐 차량 편으로, 단둥에서 주하이까지는 기차로 가져오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는 ‘의심스러운 북한 현금 다발(Cash Bulk)의 자국 영토 통과’를 회원국이 규제하도록 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094호 11조의 위반이다.
김광진 선임연구원은 “북한 금융기관의 해외 지점은 ‘현송’이라 불리는 현금 나르기를 많이 한다”며 “싱가포르 지사에 근무할 때 현금을 큰 마대에 담아 2000만 달러까지 보내봤는데 50만~100만 달러는 외교행낭이나 가방으로 나른다. 이 업무는 한 조에 2~3명인 ‘기통수’라 불리는 조직이 맡는다”고 말했다. 주하이 역에 나타난 북한 젊은이 3명이 바로 기통수다.

기자는 지난달 30일 복수의 소식통이 주하이 광선은행 대표부라고 알려준 스화둥루(石花東路) 화징화위안(華景花園)을 찾았다. 사무실 건물이 아니라 3개 동으로 구성된 중산층 아파트 단지였다. 단지 입구에는 경비가 있고, 동 입구에선 보안 코드를 눌러야 했지만 주민 틈에 슬쩍 끼어 올라갔다. 주변 아파트 입구는 붉은 부적으로 장식됐지만 해당 사무실의 철제문 입구엔 아무런 장식이 없었다. 철문 안쪽이 약간 열려 있었는데 초인종을 눌러도 기척이 없었다. 경비는 “광선은행이란 이름을 못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복수의 소식통은 “그 사무실이 맞다. 아무 표시도 없는 것은 철저히 은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숙식도 사무실에서 해결한다”고 말했다. 이 사무실을 들여다봤던 한 현지인은 “방은 크지 않고 증권거래 모니터로 보이는 단말기를 여러 대 켜놓은 채 몇 명이 작업하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음침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광선은행 대표부는 주하이에 숨어 있을까.




마카오 BDA를 대체한 주하이 네트워크
2005년 마카오 BDA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북한 회사는 27개였다고 한다. 이들 회사는 대부분 인접한 주하이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이 회사들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정원의 대북 송금을 처리한 조광무역을 비롯해 청송무역, 조선무역 등 대형 회사와 조선무역은행, 일심국제은행(인민무역부 산하), 광선은행 등 금융 대표부, 조선인삼회사, 대성총국 지사, 용악산무역, 대경무역, 세봉상무유한공사, 신용무역 등 15개 정도다. 광선은행에서 수백m 떨어진 스화둥루 135호 하이완화위안(海灣花園)에는 북한 공작기관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 식당 ‘설봉’도 있다.

기자는 인구 50만 명인 주하이로 북한 회사들이 옮겨간 이유를 추적해 봤다. 한 소식통은 “BDA 사건 이후 ?마카오에 체류하던 북한인 퇴거 조치 ?북한인의 은행 계좌 동결 ?마카오 당국의 자금세탁 단속 강화에 따라 북한인들은 마카오를 떠났다. 하지만 과거 거래했던 마카오 금융 인맥을 재활용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다시 가까운 주하이로 온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마카오와 주하이는 바다와 육지 양쪽으로 붙어 있어 실제로 같은 경제권이나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은 “10년 전 마카오엔 북한인이 220명쯤 있었지만 요즘 북한 회사는 다 사라지고 20여 명만 남았다”며 “최근에도 마카오 당국은 북한인의 첫 방문 때는 1개월. 두 번째는 1주일, 세 번째는 UV(Under VIP)라는 이름으로 3일 이하 체류만 허가하며 그 다음부턴 50일간 입국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카오 당국은 북한인에 대한 장기 체류 비자 발급을 전면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 정부의 요구로 강화된 마카오의 자금세탁법상 외국인 명의 또는 차명으로 계좌를 개설하기 어렵게 됐다.
 
차명 계좌와 국적 세탁
광선은행은 홍콩에 중국인 명의의 차명 계좌를 개설하고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돈세탁과 불법거래를 한다. 홍콩의 한 정보조사회사 관계자는 “최근 홍콩 금융당국이 광선은행 주하이 대표부가 홍콩에 차명회사를 설립해 돈세탁 하는 정황을 제보받아 조사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회사 대표는 홍콩에 살지 않는 중국 본토 여성인데 그의 은행 계좌로 수년 전부터 1000만 달러 넘는 돈이 드나들고, 광선은행 주하이 대표부와 연결된 혐의가 나타났다는 얘기다. 이런 수법은 지난 1월 22일 유엔 안보리 결의 2087호, 미국 재무부의 1월 23일자 금융제재, 유럽연합(EU)의 2월 18일자 금융제재의 대상으로 고지된 ‘홍콩 리더 인터내셔널’ 사례와 유사했다.

기자는 현지에 의뢰해 이 회사 등기부(CR)를 확보해 살펴봤다. 이에 따르면 회사는 2012년 10월 18일, 1만 홍콩달러(약 140만원)에 등록을 마쳤다. 대표는 홍콩 완차이에 주소를 둔 차이광(蔡光)이었다. 그런데 그는 중국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 차오양(朝陽)구에 사는 1972년 1월생 남성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지난달 말 이 회사의 사무실 주소인 ‘완차이구 헤네시로드 383, 와헌 커머셜 센터 14층 B실’을 찾았다. 그곳은 리즈후이(李智輝) 회계사의 좁은 사무실이었다. 직원 라우는 “우리 회사는 회사 설립을 위한 이름과 주소를 빌려주기도 한다. 홍콩에선 규정에 따라 외국인도 홍콩달러로 1달러만 내면 다른 회사의 주소를 이용해 회사를 세울 수 있다. 우리 회사 주소로 설립된 회사만 100개가 넘는다”고 말했다. 결국 리더 인터내셔널은 리즈후이 회계사의 주소에 이중으로 얹힌 페이퍼컴퍼니였던 것이다. 그래서 홍콩 인터내셔널의 겉모습은 미 재무부가 지난 1월 23일 제재 대상으로 올리고 유엔이 ‘주요 무기 거래회사인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KOMID)의 대리인’이라고 꼽을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깡통 회사의 계좌로 수백만 달러의 자금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라우는 “홍콩 경찰과 미국 당국이 무기 거래 혐의로 이 회사 관계자를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국적 세탁과 관련해서는 지난해 8월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관련 보도가 나왔다. 이 신문은 “북한인 두 명이 세이셸 군도와 키리바시 국적을 얻어 그 국적의 여권으로 홍콩에 ‘뉴 이스트 인터내셔널 트레이딩’이란 회사를 설립, 미얀마와 불법 무기거래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사 대표인 한철·주옥휘는 2004년 8월엔 북한 여권을 소지한 평양 주민으로 등록됐는데 2006년엔 주소가 베이징으로 변했고, 2007년엔 세이셸과 키리바시 국적의 여권을 얻었다. 이어 2008년엔 주소를 홍콩의 침사추이 오션센터 1021번지로 등록했다. 이 신문은 “홍콩의 수십 개 작은 회사들이 최근 북한과 연결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해당 주소로 가봤더니 이 역시 규모만 조금 더 큰 ‘비서회사’였다.

여기서 나오는 한철은 오래전부터 홍콩·마카오·주하이에서 활동해 온 북한 35호실(옛 대외정보조사부, 현재 정찰총국 조직) 소속 해외 공작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제3국적을 취득, 그 이름으로 개설한 계좌나 차명 계좌로 무기 거래를 해왔다고 한다. 현지 소식통은 “홍콩 언론 보도 이후 한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중국으로 잠적했거나 평양으로 소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홍콩 정보조사회사의 한 관계자는 “요즘 홍콩은 마카오보다 북한이 지하 활동을 하기에 더 편한 환경”이라며 “홍콩 인터내셔널 제재나 뉴 인터내셔널 사건 같은 것은 북한이 관리하는 여러 차명 회사 중 몇 개를 찾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활발한 단둥 대표부
광선은행 단둥 대표부의 경우 한국 언론으로부터 ‘대북 제재 이후 서둘러 철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김광진 선임연구원은 “현재도 영업 중”이라며 “이일수 단둥 대표는 2006년 중국건설은행 단둥지점과 광선은행의 모체인 조선무역은행의 합작금융회사를 설립, 중국 지방정부로부터 동북 3성에 한해 외환업무를 허용받았다. 그는 이를 통해 돈세탁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둥 대표부가 동북 3성의 한 은행으로 송금한 뒤 돈을 재송금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다른 지역이나 제3국으로도 송금한다. 중국은행·홍콩상하이은행 같은 주요 은행들은 북한인에게 계좌 개설을 불허하지만 다른 은행들은 쉽게 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EU는 북한의 금융거래 방식을 깊이 이해하지 못해 광선은행을 제대로 제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하이, 마카오, 홍콩=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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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