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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백과사전’ 내세운 베니스 … 정작 빛난 건 비움의 미학

중국의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는 독일관에 삼발이 의자 886개를 쌓았다. 급속한 개발 속에 사라져가는 전통을 예전 중국 어느 가정에나 있던 흔한 목재의자로 시각화했다. [베니스 로이터=뉴시스]

독학의 이탈리아인 마리노 아우리티(Marino Auriti)는 1955년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 자리에 모은 상상의 박물관인 ‘백과사전식 전당(The Encyclopedic Palace)’ 디자인을 미국 특허청에 등록했다.

  제55회를 맞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의 총감독 마시밀리아노 지오니(40)가 내세운 주제는 바로 이 아우리티의 ‘백과사전식 전당’이다. 118년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最古)의 이 미술전 본전시장 입구를 차지한 첫 작품은 뉴욕의 미국민속박물관서 빌려온 아우리티의 이 136층짜리 원통형 마천루 모델과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의 『레드북』이었다.

  건축적 모델 혹은 그림과 기록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 아울러 인간의 무의식까지 집적하겠다는 야심의 상징이다. 비엔날레 역시 세계의 모든 미술을 모으겠다는, 불가능한 이상에 도전하는 이미지 과잉의 현장 아니겠느냐는 메시지다.

교황청이 베니스 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했다. ‘창세기’를 주제로 한 터치 스크린 작품이 눈에 띄었다. 아래는 영국관 모습. [베니스 AP·로이터=뉴시스]
 베니스 비엔날레가 1일 공식 개막, 5개월에 걸친 대장정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사흘간 열린 프리뷰 기간에만 세계 미술 전문가, 저널리스트 등 4만5000여 명이 참석했다. 앞으로 50만 관람객이 다녀갈 걸로 예상된다. 인구 6만5000여 명에 불과한 베니스를 2년에 한 번씩 세계 미술계의 중심에 서게 하는 큰 행사다.

 총감독 지오니는 이처럼 서로 다른 장르를 섞었을 뿐 아니라,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세계적 대가와 독학파 아마추어를 뒤섞었다. 본전시에 출품한 38개국 작가 150여 명의 절반은 타계한 작가였고, 전문가들에게도 이름이 생소한 경우가 많았다. 지오니가 2010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꾸민 ‘만인보’와 연결되는 지점이 눈에 띄었지만, 본전시에 출품한 한국 작가가 한 명도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데 아우리티의 이상, 곧 지오니의 이상은 얼마나 실현됐을까. 지오니는 “아우리티의 계획은 당연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보편적이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식에 대한 꿈은 미술 및 인류의 역사 속에서 계속돼왔다”며 "결국 비엔날레라는 모델 자체도 현대미술의 무한한 세계를 하나의 장소에 모으려는 불가능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세기 초 서구미술이 식민지, 원시미술에서 대안을 찾으려 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바로 그 길을 21세기의 대규모 미술 전람회도 따라가려는 걸까.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올 베니스에서는 지난해 카셀 도쿠멘타에 이어 고고학적 접근이 부각된 모양새다. 전시로 문물뿐 아니라 사람까지 채집해 전시했던 한 세기 전의 박물지·식민주의적 관점 같은 프레임이 강한 전시”라고 평했다.

  그런데 이 이미지 과잉의 전시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것은 자연·신 등 조용한 세계, 혹은 재난·분쟁 이후의 세계에 대한 전시들이었다. 앙골라·바하마·바티칸 등 10개국이 이번에 처음 참여했다. 다소 반기독교적인 잔혹 형상들이 쏟아져 나오는 최첨단의 현대미술제에 교황청이 참여한 것도 이채로웠다. 전시 주제는 창세기. 관객이 손을 대면 감응하는 미디어 아트와 사진 등이 주로 나왔다.

 바로 위층의 아랍에미리트 국가관 역시 원형의 바다 영상으로 꾸몄다. 관객이 뱃머리 끝에 서서 일렁이는 대자연과 홀로 대면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향후 2년간 세계 미술계 트렌드를 가늠하는 스펙터클을 만나기 위해 전세계에서 몰려든 이들이 자연·신·정신을 주제로 한 비우는 미술에 더 주목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올해 첫 참가국인 아프리카 앙골라에 최고 국가관상인 황금사자상이 주어진 것도 비슷한 배경에서다. ‘루안다, 백과사전식 도시’라는 제목으로 르네상스 베네치아 화파의 성모상이 가득 걸린 전시장 도입부에 내전·개발로 몸살을 앓는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의 폐허를 담은 포스터를 쌓아두고 관객들이 이를 집어가게 했다. 본전시 참여작가 중 황금사자상은 영국의 티노 세갈이, 심사위원단 특별언급상엔 본전시에 참여한 미국의 샤론 헤이즈, 일본관 등 넷이 꼽혔다.

 베네치아 미술관 곳곳에서도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야심 찬 전시를 내놓았다. 특히 프라다재단 미술관의 ‘태도가 형식이 될 때 : 베른 1969/ 베니스 2013’이 큰 호응을 얻었다. 70년대 이탈리아에서 출발해 세계 미술계를 강타한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운동, ‘가난한 미술’이라는 이 말을 창시한 제르마노 첼란트(73) 프라다재단 미술관장이 기획했다. 현대 미술전의 문맥을 전환시킨 전설의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1933∼2005)의 1969년 전시를 재현했다.

 세계적 미술경매사 크리스티의 오너 프랑수아 피노의 피노재단 또한 아르테 포베라와 동시대 일본의 모노하(物派)를 주제로 소장품전을 열었다. ‘백과사전식 전당’이라는 비엔날레 주제와 맥락을 같이 하는 역사적 전시들이다.

베니스=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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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