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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에어컨 빵빵 틀며 살고 싶어요" 어느 캄보디아 소녀의 소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전기가 부족한 세상, 1960년대로 돌아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시간을 거슬러 멀리 갈 것도 없다. 비행기만 타면 몇 시간 거리에 참고할 나라들이 널렸다. 취재차 찾은 올 4월 말의 캄보디아도 그랬다. 크랑폰리강 주변에 사는 19살 소녀 안자니.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망울이 또랑또랑하다. 그는 아침이면 다 쓴 배터리를 마을 가게에 가져가 충전하는 게 일이다. 400명 안팎이 사는 마을이라 바로바로 충전도 쉽지 않다. 일찍 맡겼다가 해가 질 무렵 찾아온다. 배터리는 빛이요 소통이다. 전등을 밝히고 TV 켜는 데 주로 쓴다. 아껴 써야 한다. 게임을 실컷 해보고 싶지만 엄두도 못 낸다. 안자니의 소원은 “에어컨 빵빵 틀며 살아보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전력 보급률은 약 25%, 넷 중 세 가구는 배터리로 살아야 한다.

 이런 사정은 5성급 호텔이라고 다를 바 없다. 프놈펜 시내 캄보디아나 호텔. 지금은 옛 명성을 많이 잃었지만 과거엔 왕궁과 함께 캄보디아의 자랑이었다. 그런데도 이 호텔 로비엔 ‘7월까지 수시로 전력이 끊길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프놈펜 시내 외국인 소유 호텔엔 4월부터 아예 전기가 끊겼다. 외국 기업이 많이 입주한 빌딩,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사석에서 만난 한 정부 관리는 “7월 총선 때문”이라고 했다. “표 안 되는 외국인 대신 표가 많은 서민층에 전기를 몰아주는 게 선거전략”이라며 “매번 선거 때면 되풀이되는 일”이라고 했다. 캄보디아에선 ‘전기=표’이기도 한 셈이다.

 안됐지만 남의 일이라며, 우린 저런 시절 벗어나 다행이다라며, 혀를 차던 게 두 달도 안 됐다. 그런데 그게 남의 일이 아니게 될 줄이야. ‘한 등 아닌 두 등 끄기.’ 며칠 전 정부가 내놓은 전력 대책을 보며 다시 혀를 차야 했다. 어쩌면 그렇게 딱 60년대식일까. 67년 9월의 한 아침신문 기사를 찾아봤다. ‘정일권 국무총리는 훈령 52호를 발동, 범국민적 절전운동을 촉구했다. 야간 점등은 극히 필요한 장소와 시간에만 한하라고 지시했다’고 적고 있다.

 아무리 세상사가 반복된다지만 반복할 게 따로 있지. 어쩌다 이 나라가 세계 최빈국, 일인당 소득 900달러의 캄보디아 수준으로 되돌아간단 말인가. 백번 양보하면 이해는 간다. 고질적 납품 비리, 왜곡된 요금 체계, 원전 증설 등 인화성 큰 이슈들이 십 수 년 얽히고설킨 결과니. 그렇다고 계속 조상 탓, 전 정권 탓만 하며 손 놓고 있을 텐가. 올 2월 2030년까지의 ‘6차 전력수급계획’을 짜면서 원전 증설 여부를 슬쩍 빈칸으로 남겨놓은 것도 그래서인가. 민감한 건 다 미뤄놓고 그 결과, 2030년에도 또 60년대식 대책 타령이나 하게 할 건가.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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