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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때 상표권 인수 역발상 … 4년 만에 매출 4배로

한철호 밀레 사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상암동 본사 입구에 전시해 놓은 배낭을 소개하고 있다. 이 배낭은 1978년 라인홀트 메스너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무산소 등정했을 때 사용했던 것과 같은 모델이다. 밀레는 92년 역사의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의 한국 상표권을 2009년 사들였다. [김성룡 기자]

밀레는 92년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다. 세계 25개국 1000여 개 매장, 연매출 50억 유로(약 7조3600억원)다. 하지만 한국에서만큼은 밀레도 한국 브랜드다. ㈜밀레(당시 에델바이스아웃도어)가 밀레 라이선스 판매 10년 만인 2009년, 580만 유로(당시 100억원)에 아예 한국 상표권을 사 버렸기 때문이다. 밀레가 해외에 상표권을 매각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국내 회사가 해외 아웃도어 브랜드의 상표권을 인수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밀레 한철호(54) 사장은 “26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큰 모험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유럽 경제위기로 자금난을 겪던 밀레 본사가 먼저 인수를 제안했다. 2016년까지 로열티를 내는 것보다 인수하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불황인데 100억원을 한 번에 투자했다가 자칫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었다.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한 사장은 “힘들어도 승부를 걸어야 할 때”라며 인수를 밀어붙였다. 선견지명이었을까. 이때부터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밀레의 지난해 매출은 2800억원. 상표권 인수 전 매출(650억원)의 4배가 넘는다. 올해 목표는 4000억원이다. 1966년 등산용 양말 제조업체로 출발한 밀레(옛 한고상사)는 국내 아웃도어 업계의 산 역사다.

 “어머니께서 털실로 등산용 양말을 손수 짜서 납품하다가 아버지와 함께 집안에 공장을 차리고 니트 기계를 들여왔죠.”

 남대문 좌판용 등산 양말 사업은 모자·스웨터 등으로 확장됐다. 부친이 일찍 작고하자 한 사장은 87년부터 어머니 고순이(80) 회장과 함께 회사를 경영했다. 당시 공장은 직원 30여 명, 매출 3억원 규모였다. 88올림픽 이후 시장은 확 커졌고 등산 조끼가 유행했다. 한 사장은 의류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에델바이스라는 상표를 붙인 양말과 의류는 점점 인기를 모았다. 대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급 사업까지 병행하면서 매출은 100억원 규모로 커졌다. 하지만 98년 외환위기가 닥쳤다.

 “어머니가 저를 마주 앉혀 놓고 ‘네가 부도를 낼래, 내가 낼까’ 고민하실 정도였죠. 당시 OEM 전문 회사는 제 명의, 에델바이스 제조사는 어머니 명의로 돼 있었거든요.”

 가까스로 부도는 면했지만 대기업이 찾아가지 않은 선주문 물건만 창고에 가득 찼다. 1년 동안 생산을 중단하고 한 사장까지 나서 백화점 문 밖 매대에서 재고를 팔았다.

 그런데 한 사장은 “온갖 어려움을 잘 헤쳐 나왔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후발업체들이 아이돌 모델과 패션을 내세울 때 이를 무시했다가 추월당했다는 것이다. 한 사장은 “내 경험이 젊은이들의 혁신보다 낫다고 고집한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반성의 결과물은 지난달 나왔다. 25~35세를 겨냥한 도심형 아웃도어 브랜드 엠리미티드를 내놓고 아이돌그룹 JYJ를 모델로 기용했다. 등산 위주의 정통 아웃도어를 표방하며 연예인 모델 기용도 꺼렸던 밀레로서는 파격적인 변화다. 한 사장은 “일본·중국은 물론 남미까지 엠리미티드의 상표권 출원을 했다”며 “이제는 우리 브랜드로 세계에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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