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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지퍼 달자" 불쑥 제안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팀원들이 ‘에볼루션 키트’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2011년 4월 어느 날,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개발팀이 회의실에 모였다. ‘삼성 스마트TV만의 독창적인 기능’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던 터였다. 개발팀장인 김현석 전무(현재 부사장)가 불쑥 한마디 꺼냈다. “TV에 지퍼를 달면 어떨까”. 의아해하는 팀원들에게 김 부사장은 “메인보드에 지퍼를 달면 손쉽게 교체가 가능하니 헌 스마트TV도 수시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당시는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의 업그레이드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던 시기였다. TV의 메인보드는 스마트폰으로 치면 OS에 해당된다. 김 부사장은 “스마트폰보다 교체 주기가 긴 스마트TV야말로 최신 SW와 사용경험(UX)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장비가 꼭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해 가을 개발팀은 ‘에볼루션 키트(Evolution Kit) 개발 프로젝트’ 진행 상황 보고를 위해 윤부근 삼성전자 CE부문장(사장)을 찾았다. ‘지퍼 달린 TV를 2014년까지 상용화하겠다’는 보고서를 든 채였다. 윤 사장은 “좋은 아이디어는 하루라도 빨리 소비자 손에 안겨 드려야 한다. 2013년에 출시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소비자 위해 하루빨리 출시하라”

출시 시기를 1년 앞당기는 것은 출고가 거의 임박한 2012년형 스마트TV의 설계를 변경하는 것을 의미했다. 지퍼 형태를 2012년형 TV에 미리 적용해둬야 훗날 에볼루션 키트가 완성됐을 때 이를 장착해 2013년형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해 말 개발팀의 첫 작품은 A4용지 크기의 인쇄회로기판(PCB)이었다. 그러나 나사를 사용해야 하는 등 탈·부착이 불편했다. 개발자들은 TV의 메인보드를 별도 기기에 담아 이를 TV에 접속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마침내 2012년형 스마트TV 뒷면에는 지퍼를 대신할 ‘슬롯’이 장착됐고 이 슬롯에 끼울 수 있는 형태로 주머니용 수첩만 한 크기의 에볼루션 키트가 완성됐다. 마지막 고비는 키트에 담을 ‘내용물’이었다. 2013년형 스마트TV가 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2013년형 업그레이드용 SW를 에볼루션 키트에 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개발팀은 소프트웨어 조직을 다시 짜고 인력을 재배치해 10개월간 ‘미래 SW’를 그려냈다. 그리고 지난 4월 마침내 세계 최초로 TV를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장치를 상용화했다.

초고화질 TV에도 기능 적용

 에볼루션 키트를 2012년형 스마트TV에 적용하면 실시간 TV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대화형 추천 기능, 5가지 화면 패널 유저인터페이스(UI)로 새로 꾸며진 스마트허브 등 2013년형 스마트TV의 핵심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올해 출시된 85인치 초고화질(UHD)TV에도 에볼루션 키트 기능이 적용되어 있다. 영상전략마케팅팀 성일경 상무는 “초고화질(UHD)의 경우 아직 방송 표준이 정해지지 않아 자칫하면 몇 년 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며 “하지만 에볼루션 키트를 이용하면 앞으로 표준이나 기술 방식이 바뀌어도 항상 업그레이드해 신제품처럼 쓸 수 있어 안심”이라고 말했다. 에볼루션 키트의 출고가는 60만원이나 2012년형 스마트TV를 구매한 고객들이 삼성전자 홈페이지에 제품을 등록하면 5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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