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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명차 48대 우아함과 파워 뽐내다

1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공개 행사에 선보인 명품 클래식카들.
2 세계에 단 두 대 남은 부가티 57SC 아틀란틱 쿠페 1938년형.
3 부가티로 최고상을 받은 디자이너 겸 클래식카 수집가 랠프 로렌(가운데).
5월 2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코모 호반(湖畔) 체르노비오.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은색 클래식카의 주인인 단구의 노신사는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다. 비슷비슷한 질문이 이어져도, 여기저기서 악수를 청해도 피하는 법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랠프 로렌(74).
전설적인 디자이너이자 희귀 클래식카 수집가로도 유명한 그가 빗속 궂은 날씨에도 두 시간 가까이 야외에서 자리를 지킨 이유는 ‘콘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Concorso d’Eleganza Villa d’Este) 2013’ 대회 때문이다. 세계적인 이 클래식카 경연대회의 규칙은, 차주 본인이 심사위원단의 참관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구름이 걷힌 오후에는 48대의 클래식카들이 대회장 앞을 직접 운행하는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이 대회가 유물 전시회가 아님을 보여주는 핵심 순서다. 100년 남짓 된 차들이 움직이려면 엔진과 변속기가 모두 ‘살아있어야’ 한다. 부품이 없으면 고증에 능한 전문가가 일일이 손으로 깎아서라도 똑같은 부품을 만들어 끼워야 한다.
깐깐한 심사 끝에 랠프 로렌은 올해 대회 최고상(Coppa d’Oro)을 받았다. 1938년형 부가티 57SC 아틀란틱 쿠페. 애초에 만들어진 4대 중 현재 남아있는 2대 중 하나다. 차 한가운데를 앞뒤로 가로질러 돌기나 날개처럼 보이는 부분이 디자인의 포인트다. 사실 이건 리벳 흔적이다. 원래 두랄루민(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 차는, 당시 기술로는 용접이 불가능해 리벳을 쓰는 것으로 디자인했다. 막상 만들 때는 일반 알루미늄을 써서 용접이 가능했지만, 처음 시도했던 리벳 날개 디자인이 매력적이라며 그대로 고수했다. 오늘날 어떤 차에서도 볼 수 없는 유니크한 디자인은 그래서 탄생했다.
완벽한 보관 상태도 수상에 한몫했다. 참가 차량 중에는 검은 연기를 뿜거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곁에 있기 불안한 차가 많았지만, 랠프 로렌의 부가티는 조용하고 묵직한 엔진음과 함께 부드러운 주행을 보여줬다. 아름다움과 희소성과 완벽한 유지관리. 수상이 당연했다.
 
16세기 만들어진 건물, 호텔로 문을 연 지 140년째인 유서깊은 빌라 데스테. 여기서 열리는 단 하루 공식 행사를 참관하려면 1인당 400유로(약 58만원)가 넘는 참가비뿐 아니라 주최 측의 허가도 받아야 한다. 주최 측은 출품자 이름 외에 출품·참가자들의 개인 정보를 일절 공개하지 않는다. 랠프 로렌 같은 유명인 외에 유럽의 세습 귀족이나 대자산가들도 여럿 참가한다.
그런 이들이 찾다 보니 럭셔리의 수준도 남다르다. 잔디밭에는 국내에서 5억~8억원에 팔리는 롤스로이스의 전 모델이 다소곳이 도열해 나도 봐달라고 한다. 밑바닥이 보일 듯 시리게 맑은 호수 위로는 최고급 요트, 하늘에는 몇몇 참가자가 타고 온 수상비행기가 오간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최고급 명품을 두고 ‘위버 럭셔리(uber luxury)’라고 부른다. 이곳이야말로 위버 럭셔리의 현장, 그 중심지다.

4 이탈리아의 옛 브랜드 이소타 프라치니 타입8A 1930년형. 5 롤스로이스 레이스(Wraith) 1938년형. 올해 새로 나온 레이스의 원조 모델이다. 6 메르세데스 벤츠 680S(Sport) 1928년형. 초기 벤츠의 대표적 스포츠카 중 하나다. 7 BMW 328 스포르트 카브리올레 1937년형. 8 재규어 XK120 로드스터 1949년형. 9 페라리 250 LM 1964년형. 출품작은 총 32대만 제작된 V12모델의 18번째 제품이다. 10 유명인과 자산가 등이 참여한 이 행사엔 애견을 데려 온 사람이 많았다.
위버 럭셔리의 현장, 물밑에선 치열한 마케팅 경쟁
하지만 부자들의 돈 자랑만을 위해 이런 행사가 열리는 건 아니다. 럭셔리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과 아이디어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이다.
원래 콘코르소 델레간차는 프랑스어 콩쿠르 델레강스(Concours d’Elegance)의 이탈리아어다. 콩쿠르 델레강스는 17세기 프랑스 귀족들이 여름날 주말에 파리 시내 공원에서 자신들의 마차를 몰고 나와 서로 화려함을 겨루던 행사에서 유래했다. 세월이 흘러 말은 사라지고, 마차에는 엔진이 얹어지면서 오늘날 모터쇼의 효시가 됐다. 콩쿠르 델레강스라는 용어만은 그대로 남아 오늘날 클래식카 경연대회의 명칭으로 쓰인다.
1929년 빌라 데스테에서 시작한 콘코르소 델레간차는 비운의 대회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 경제의 약화로 1949년을 마지막으로 잠정 중단됐다. 그사이 월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페블비치 등 미국의 클래식카 경연대회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화려한 클래식카가 나오고 규모가 커도 미국 행사에는 뭔가 아쉬운 게 있다. 주인공인 클래식카의 고향이 거의 대부분 유럽이었기 때문이다.
BMW그룹이 1999년 행사를 되살린 것은 이 틈새를 노려서다. 모든 클래식카의 본고장이자 럭셔리의 대명사인 유럽 한복판에서 유서 깊은 행사를 주관하는 것은 마케팅 이상의 의미가 있다. BMW 그룹은 이 행사에 상당한 투자를 하지만 얻는 것도 만만찮다. 일단 계열사인 롤스로이스만 봐도 그렇다. 아무나 못 살 차를 만드는 롤스로이스로서는 잠재고객 수백 명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이런 행사야말로 최고의 마케팅 기회다. 또 BMW 그룹의 중요한 축이자 기업의 출발점인 모토라드(바이크) 부문도 덕을 본다. 콘코르소 델레간차는 2011년부터 클래식카 외에 클래식 바이크의 품평회와 전시도 함께 한다.
BMW는 자사 디자인 혁신의 발표장으로도 이 행사를 이용한다. 올해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코치빌더(자동차 디자인을 해주는 전문업체. 이탈리아어로는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와 합작한 컨셉트카 ‘그란 루소(Gran Lusso)’를 선보였다. 파울로 피닌파리나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BMW의 디자인과 피닌파리나의 전통, 그리고 아버지(2012년 타계한 세르지오 피닌파리나)의 라인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11 지난해 사망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코치빌더 세르지오 피닌파리나에게 헌정된 ‘세르지오’(왼쪽). 페라리 458을 기반으로 아들 파울로가 다듬어 냈다. 오른쪽은 지난해 공개됐던 맥라렌 P1.
12 모든 참가차량은 운행이 가능해야 한다. 퍼레이드 중인 벤틀리 R타입 컨티넨탈 1952년형 13 애스턴 마틴 2 리터 스포츠 ‘스파 레플리카’ 1948년형.
한 대 400억원 … 흥미로운 클래식카의 세계
다시 25일 오전. 1937년산 BMW 328을 출품한 스위스인 다니엘 퓌르터는 자동차의 성능과 완벽한 복원 상태를 설명한 뒤 “1938년부터 1960년까지 이 차를 소유했던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다”고 말했다. 1960년 이후의 소유주 기록은 모두 확보했지만, 20여 년의 빈 공간이 있는 것이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퓌르터는 “당시 차량 소유주는 2차 대전을 피해 중립국인 스위스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전화(戰禍)를 피해 알프스 산록에 숨어든 스포츠카, 낭만적인 스토리 아닌가. 클래식카는 희소성과 유지관리 외에 ‘스토리’가 가치를 좌우한다.
예를 들어 출품작 중 하나인 1928년산 롤스로이스 팬텀 1 스포츠 바디에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레이싱대회 경쟁자인 벤틀리에 판판이 밀리는 꼴을 참다 못한 공동 창업자 헨리 로이스가 직접 엔진을 손봤고, 6기통 7668㏄의 엔진으로 시속 160㎞(100마일)를 돌파한 이 회사 첫 모델로 유명하다. 게다가 헨리 로이스는 이 차를 고객인 인도 카슈미르의 마하라자(군주)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해 테스트 드라이빙을 겸해 4350마일을 손수 운전하고 갔다. 이처럼 스토리가 있는 차는 같은 모델의 다른 차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부가티 57SC 아틀란틱 쿠페의 경우 최고상을 수상한 랠프 로렌 것을 제외한 다른 한 대는 개인 수집가 피터 윌리엄스가 2010년 멀린 자동차 박물관에 경매로 넘겼다. 당시 가격은 비공개였지만, 전문가들은 4000만 달러(약 453억원)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올해 최고상을 거머쥔 랠프 로렌의 이 차는 얼마나 할지 상상하기 어렵다.

14 BMW와 피닌파리나가 합작해 만든 ‘그란 루소’ 쿠페. 대회에서 처음 공개됐다. V형 12기통 엔진을 단 이 차는 주행가능한 컨셉트카로, 단 한 대 만들어진 원-오프(One-off) 모델이다.
15 항공기 엔진회사였던 BMW가 처음 만든 탈것은 오토바이였다. 차보다 5년 빠른 1923년에 만들었다. 사진은 90주년 기념 모델 R90S.
한국차 업계의 존재감은 찾을 길 없어
하지만 클래식카의 매력은 돈보다 많은 사람이 보고 즐겨야 그 빛을 발한다. 빌라 데스테에서 행사를 마친 차들은 26일 일요일 인근의 빌라 에르바로 옮겨져 1인당 14유로(약 2만원)를 낸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오래된 빌라와 현대식 전시시설이 어우러진 대형 콘퍼런스 시설이었다.
넓은 잔디밭에는 클래식카 외에 50여 대의 클래식 오토바이, ‘그란 루소’를 비롯한 주요 업체들의 미래형 컨셉트카 등이 전시됐다. 올해 출시 50년을 맞은 쉐보레 콜벳 특별전과 주최 측인 BMW의 90년 모토라드 역사를 담은 클래식 바이크 등 볼거리가 풍성했다. 관람객들은 수십억~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차들을 맘껏 보고 사진 찍으며 추억을 담았다. 이곳은 유럽인들에게는 꿈에 그리던 당대의 명차들을 볼 수 있는 테마파크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장 어디에도 한국차의 존재감이 없었다는 점이다. 콘코르소와 일반 전시회 모두에서 동양인은 거의 일본인이었다. 본 대회 심사위원 중에는 일본인으로는 처음 GM의 독일 자회사 오펠에서 디자인 파트장을 맡았던 고다마 히데오(児玉英雄·69)도 있었다. 올해는 없지만 지난해에는 일본인 컬렉터 두 사람이 3대를 출품하기도 했다. 닛산과 스바루는 올해 미래 컨셉트카 부문에 2대의 모델을 선보였다.
현장에서도 일본인 기자들이 여럿 보였다. 자동차 저널리스트 오카와 후미오는 “일본에는 클래식카 동호회가 활성화돼 있어 매년 자체적인 대회를 열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저널리스트 마쓰야마 다케시는 “많은 젊은 일본인 디자이너들이 자비를 들여 행사장을 찾아 클래식카와 컨셉트카를 둘러봤다”고 말했다. 이미 생산·판매량 세계 5위권이지만, 자동차에 탈것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업계의 처지가 생각났다.



“추억의 디자인과 감성이 미래로 이어지는 현장”
BMW그룹 디자인 총괄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

BMW그룹이 주최한 콘코르소 델레간차 행사에는 BMW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상당수 참여했다. 특히 BMW·미니·롤스로이스와 모토라드 부문까지 400여 명의 전체 디자인팀을 이끄는 BMW그룹 디자인 총괄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Adrian van Hooydonk·49·사진)와 각 디자인팀장도 대거 참석했다. 25일 밤 환영 만찬 행사장에 나온 그를 중앙SUNDAY가 인터뷰했다.

-피닌파리나와의 ‘그란 루소’ 공동 작업은 어땠나.
“아주 행복한 경험이었다. 가급적 적은 라인(자동차의 직선 성분)으로 최대한의 감성을 뽑는 게 내 목표다. 파울로(피닌파리나 현 회장)의 생각도 똑같았다. 그란 루소는 꼭 필요한 선만 쓰면서도 풍부한 볼륨과 디테일을 통해 감성을 살려냈다.”

-이탈리아 등 외부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계속할 것인가.
“지난해 자가토와 함께 Z4를 디자인한 것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이었다. 사실 피닌파리나와의 협업도 지난해 이곳에서 열린 콘코르소 델레간차 행사에 참석한 파울로와 몇 마디 의견을 주고받은 뒤 뜻이 통해 바로 시작했다. 반응도 아주 좋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협업을 즐기기 때문에 앞으로 또 시도할 생각이다.”

-BMW가 콘코르소 델레간차를 후원하면서 디자인 측면에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을 매혹시킨 차의 디자인과 훌쩍 사랑에 빠지곤 한다. 그런 감성을 미래 자동차 디자인에 반영하는 게 우리의 관심사다.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디자인과 감성이 만나는 현장으로서 이 행사는 의미가 깊다.”

-클래식카를 갖고 있나.
“그렇다. 1971년산 BMW 2002를 아껴가며 타고 있다. 바이크도 좋아해 60년대에 나온 R69S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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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