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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분야 수퍼스타 키우는 건 기업이 맡아야죠

1 서울 구로동 벽산 엔지니어링 사무실 복도에는 김 회장이 모은 미술품이 빼곡히 걸려 있다. 사진의 배경이 된 작품은 한운성 작가의 ‘매듭시리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현대미술관회 부회장, 광주 비엔날레 이사, 예술의전당 후원회 부회장…. 이 모든 타이틀의 주인공은 한 사람, 김희근(67) 벽산엔지니어링 회장이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국내 문화예술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왔다. 세계적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와 뉴욕의 한국인 세 자매로 이뤄진 ‘안 트리오’, 윤상윤·한경우 등 신진 미술작가들의 성장 뒤엔 그가 있었다. 2010년에는 아예 ‘벽산문화재단’을 만들어 희곡상도 제정했다. 장르와 대상을 가리지 않는 그야말로 ‘전방위 지원’이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올해 제22회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에 선정됐다. 몽블랑문화재단이 1992년 제정한 이 상은 각국의 문화예술 발전을 장려하고자 뛰어난 후원 활동을 펼친 인사를 선정해 한국을 비롯한 10여 개국에서 매년 시상식을 개최하고 있다. 지금껏 영국의 찰스 황태자,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이 받았고, 국내에서는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2012),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2011), 신창재 대산문화재단 이사장·교보생명 회장(2010) 등이 수상자였다.

4일 열리는 시상식을 앞두고 서울 구로동 벽산엔지니어링을 찾았다. 그의 집무실이 있는 19층은 입구부터 복도·회의실까지 각종 미술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80년대 초반부터 모아온 700여 점의 컬렉션 중 일부였다.

“건설업(그는 12년간 벽산건설 경영을 맡았다)이 원래 거친 데다 ‘노가다’ 대접을 받잖아요. 직원들 감성을 좀 키워주고 싶었죠.” 얼마 전엔 홍콩 아트페어에 가서 몇 차례씩 유찰됐던 고 백남준 작가의 설치작품을 사들였다고 했다. “국내에서 좀 더 싸게 살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가 제대로 대접받으려면 해외 페어에서 제 값을 치러야 되거든요.”

2 벽산문화재단은 2011년부터 ‘벽산 희곡상’을 제정했다. 지난해 수상자인 김윤희 작가(가운데), 송태호 이사장(왼쪽), 김 회장.
그가 문화예술 후원을 하게 된 계기는 주변 영향이 컸다. 서울사대부설초등학교를 나온 그에겐 여자 동창들 중 유난히 예술 분야 전공자가 많았다. 친구들 콘서트 표나 그림을 사 주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80년대 초 잠시 미국에 있었을 때 그런 일이 많았죠. 그때 알고 지내던 줄리아드 음대 교수님이 사라 장을 도와달라 하시더라고요. 당시엔 누군지도 몰랐지만 그분의 안목을 믿고 따랐죠.”

귀국 이후엔 친구들과 인사동 화랑가를 돌아다니며 국내외 신진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정작 좋아하는 건 미술·음악 작품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삶이라고 말했다. “그분들은 예술에 올인을 했고, 저는 관찰자일 뿐이죠. 순수하게 예술에 빠진 사람과 대화를 하며 대리 만족을 하는 것 같아요.”

그는 예술가들과 신나게 얘기하고 밥 사주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나 미래가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띄었고 자연스럽게 후원으로 이어졌다.

특히 세종솔로이스츠는 창립 때부터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특별 후원인으로 시작해 미국법인 이사와 한국법인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악장에게 연주비와 경비 등을 후원하는 ‘석좌단원’ 후원 제도를 만들었고, 2004년 고가의 악기를 사들여 단원들에게 무상으로 빌려주기 시작했다. 현재 1683년산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악장이자 대만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천웬황이, 1758년산 J B 과다니니는 한국인 단원인 조성원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고 있다. “다들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몰라요. 악기는 그냥 두면 망가지기 십상인데 내 입장선 악기 관리도 되고 일석이조죠.”

그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아내가 남긴 30억원으로 벽산문화재단을 세웠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에도 ‘공학적 설계’, 그러니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요.” 그러면서 “정부 예산만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모두 지원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수퍼스타를 키우는 건 기업이 담당해야죠”라고 했다.

다만 기업의 규모에 맞춰 후원 대상이나 정책도 달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저의 메세나 활동은 ‘메자닌(Mezzanine, 두 층 사이의 작은 중간층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이라고 할 수 있죠. 너무 어린 새싹보단 어느 정도 된 사람, 열다섯 살 피아니스트나 스무 살 화가 정도가 지원에 적당해요.”

이처럼 큰 판을 그리는 그에게도 과제는 남아 있었다. 바로 ‘메세나 후배’를 키우는 것.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서민석 동일방직 회장이 자신의 멘토가 돼줬던 것처럼 말이다. “지금 활동하시는 분이 다 제 또래거나 더 연로하시죠. 제 밑으로 후배가 이어지지 않아요. 이게 참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일인데, 그러니까 반강제적으로라도 시키고 싶어요.”

그는 예술 후원이라는 게 봉사이지만 또한 자기만족이 크다고 했다. “내가 사업하는 사람 아닙니까.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내게 도움이 되니까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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