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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같은 공간에서 회의·연구 새로운 그 무엇이 절로 솟아날 듯

3면이 유리창으로 된 3층 회의실. 엷은 초록색 커튼이 드리워진 가운데 천장도 온통 초록색이다. 배추·상추·청경채 등의 채소 조형물이 거꾸로 촘촘하게 꽂혀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했을까. 거울로 장식한 테이블에 앉으면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된다. 채소밭을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신이라도 된 듯하다. 바람벽에는 폐목재를 이어붙여 거대한 나무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가지 사이사이엔 연초록 바구니·곰인형·테니스공 등을 나뭇잎처럼 붙였다. 한석현 작가의 ‘윗밭(Wit Field)’이라는 작품이다(사진5). “생명력 넘치는 채소밭 한가운데 있으면 아이디어도 싱싱한 것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꾸며봤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이곳은 충북 청원군 오송생명과학단지 내 식품회사 샘표의 ‘우리발효연구중심’. 샘표가 5월 초 새로 개관한 국내 최초의 발효전문연구소다. 2만3186㎡ 부지에 만들어진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건물이다.

특이한 것은 3층의 6개 회의실과 2층 연구실 벽면 및 1층 로비, 외부공간을 현대미술 작가와 건축가, 인테리어 전문가 등 14명에게 의뢰해 ‘작품’으로 꾸며놨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샘표 갤러리 프로젝트’다.

신하정 작가가 만든 ‘산책’을 보자(사진2). 회의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 벽면으로 높이 4m짜리 노방천이 12폭 병풍처럼 걸려있다. 태백 출신인 작가는 먹과 석탄 등을 이용해 그 위에 거대한 숲을 그려냈다. 천 병풍 뒤 바람벽에도 수묵으로 나무들을 그려놓아 그림이 겹쳐지는 레이어드 효과를 낸다. 측백나무를 세로로 자른 널찍한 원목 테이블을 굵직한 하얀 자작나무 가지들이 촘촘하게 받치고 있어 그 자체로도 숲 속에서 회의하는 느낌을 준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달우 작가의 작품 ‘Play Ground’로 꾸며진 회의실은 거의 축구장이다(사진3). 하이그로시 코팅한 단풍나무 테이블 양끝으로 축구 골대를 달았다. 회의가 잘 안 풀리면 서랍 속 미니 공을 꺼내 축구 게임이라도 할 일이다. 테이블의 바닥은 물론 초록색, 의자는 붉은색 유니폼 상의처럼 만들었다.

이 밖에 김무준 작가가 만든 회의실은 유리 탁자와 투명 아크릴 의자를 비치하고 바닥엔 파란색 타일을 깔아 수영장 느낌을 물씬 주었고(사진1),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강일 작가는 탁자를 천장에 매달아 그네처럼 흔들리는 독특한 공간을 연출했다.

또 55m에 달하는 2층 복도에는 이은우 작가, 홍은주 그래픽 디자이너. 이에스더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1층 로비에는 김기철 작가가 샘표 창립 때부터 사용하던 미생물 배양용 제국틀로 만든 설치작품 ‘Ferment’가 있다. 샘표 창동공장에 있던 굴뚝 일부를 이용해 정원에 거대한 벙커처럼 만든 건축가 장윤규의 ‘기억을 기록하는 화분’도 넉넉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왜 이렇게 장난기 넘치는 공간을, 그것도 미술 작가들에게 의뢰해 만든 것일까. 현장에서 만난 박진선(63) 샘표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발효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하는 우리 연구소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것, 세상에 없던 것을 찾고 있다. 새로운 술, 새로운 조미료, 새로운 그 무엇…. 그런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연구원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아주 중요하다. 그런 것은 기존의 딱딱한 사무공간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박 대표는 창업주 고 박규회 선대 회장의 장손으로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했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는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야외 놀이터 질러(사진6), 쉴 때는 탁구장으로 바뀌는 회의실, 샘표에서 생산된 각종 먹거리가 준비된 카페 (사진4) 등도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이 연구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기 책상이 없다는 것. 고정 업무를 하는 간부 사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공용 책상에서 자료를 찾고 실험을 하도록 했다. “각자 다른 연구를 하는 연구원과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소통할 수 있게 했다”는 게 박 대표의 귀띔이다.

샘표의 갤러리 프로젝트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경기도 이천 간장공장에 갤러리 ‘샘표 스페이스’를 만들었다. 박 대표는 “그림을 보면 참 좋은데 직원들이 별로 그러질 않더라. 강제로 보게 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갤러리를 공장과 식당 사이에 만들어 버렸다(웃음). 10년이 지나니 이제는 많은 직원이 예술을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1년에는 우중충하던 공장 외벽에 신진 작가들이 산뜻한 벽화를 그리도록 했다.

샘표는 정부가 2020년까지 세계적인 기업 300개를 육성하겠다는 ‘월드 클래스 300’ 프로젝트에 지난 5월 선정됐다. “연구를 위해 예술을 활용하자”는 대표의 아이디어가 어떤 제품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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