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해 뜨기 전 만난 그 여자 그 남자 그 후로 18년 …

“그러다 비행기 놓치겠어.”
“알아.”

줄리 델피·에단 호크 각본·주연 영화 ‘비포 미드나잇’

이렇게 끝난 ‘비포 선셋’(2004)의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제시(에단 호크)가 비행기 따윈 무시하고 셀린느(줄리 델피)와 다시 시작했기를 간절히 바라며 관객들은 극장을 나섰다. ‘비포 선라이즈’(1995)에서 수많은 유럽 배낭여행족들의 마음을 달뜨게 했던 비엔나에서의 꿈같은 하룻밤. 6개월 뒤 파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져 무려 9년 만에 재회한 이들 아닌가.

그런데 시리즈의 마무리인 ‘비포 미드나잇’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관객들에게 마치 ‘그때 그 로맨스는 부디 잊어주세요’라고 부탁이라도 하는 듯 심술궂기 짝이 없다. 비엔나로부터 18년, 파리로부터 9년 만에 두 사람을 재결합은 시켰으되 철저히 현실적인 상황에 배치하기 때문이다. 바로 결혼과 출산, 육아다.

셀린느와의 얘기를 소설로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 그는 환경운동가로 활동 중인 셀린느와 파리에서 재회한 후 결국 부부가 된다. 에너지가 넘치는 일곱 살짜리 쌍둥이 딸도 뒀다. 그런데 셀린느와 맺어지기 전 결혼에서 얻은 제시의 아들이 이들 커플의 주된 갈등 요인이 된다.

현 거주지인 파리를 떠나 아들과 전처가 사는 시카고로 옮겼으면 하는 소망을 조심스레 밝히는 남편. 아내는 발끈한다. 그리스로 휴가를 온 이들은 ‘부부클리닉’을 방불케 하는 설전을 벌인다. 쉴 새 없이 걸으며 쉴 새 없이 지껄이는 이들의 밀도높은 대화는 두 사람 관계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가늠자이자 전편들과 비교해 전혀 꿀림이 없는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다. ‘비포 선셋’부터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자신이 쓴 초고에 두 배우의 ‘입심’을 더한 공동작업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

전편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달라진 건 한숨이 절로 나올 만큼 달라진 배우들의 외양이다. ‘비포 선라이즈’에 출연했을 때 에단 호크는 25세, 줄리 델피는 26세였다. 18년이 흘렀고 배우들도 영화 속 주인공들도 나이를 먹었다. 영화는 40대 중반으로 진입하는 남자의 주름진 얼굴, 여자의 군살 붙은 몸매를 보여주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심지어 셀린느의 살짝 처진 가슴도 그대로 보여준다. 헝클어진 머리에 셔츠가 삐져나온 제시의 후줄근한 차림은 차라리 낫다. 비엔나의 로맨스로부터 시간이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흐른 것이다.

주름과 뱃살이 오랜 결혼 생활의 껍질이라면 대화를 채우는 서로에 대한 원망과 오해와 빈정거림은 속살이다. 셀린느는 제시가 책 출간과 관련해 정신없이 밖으로 도는 동안 쌍둥이 딸과 육아전쟁을 벌이다 산후우울증에 시달렸음을 털어놓는다. 여자는 이제 좀 자신의 경력을 위해 뭔가를 해보려는 찰나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이유로 자신의 앞길을 막으려는 것 같아 남자가 미울 뿐이다.

반면 남자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여자의 속사포 공격과 꼬리를 무는 오해에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결론은 현실 속 많은 화성남자와 금성여자의 그것과 흡사해진다. “18년 전 기차에서 만났던 멋지고 로맨틱한 그 사람은 어디 간 거지?”

하지만 ‘비포 미드나잇’이 멋진 건 결국 이들이 싸움의 도구로 썼던 대화를 통해 다시 실마리를 찾는다는 점이다. 달달한 로맨스 대신 어느새 서로의 몸이 닿는 순간의 온기로 편안해지는, 그런 오래된 부부의 친밀감이 격렬한 대화를 따뜻하게 봉합한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단 카르다밀리의 밤, 노천 술집에 앉아 파국을 화해로 서서히 바꿔가는 둘의 모습은 호르몬에 기반했던 남녀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제도와 세월이라는 덫에 걸렸을 때 어떻게 현명하게 모양을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들 부부를 초대한 그리스 가족과의 저녁 식사 장면도 상징적이다. ‘비포 선라이즈’ 때의 제시와 셀린느를 떠올리게 하는 풋풋한 20대 커플, 서로에 대해 적당히 접어줄 건 접어주는 단계에 접어든 중년 커플, 결혼의 동반자적 의미에 대해 성숙한 철학을 들려주는 노년이 어우러진 이 대목은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세월을 보낸다는 것’의 가볍지 않은 의미를 곱씹게 한다. 결국 오래전 내가 반했던 멋지고 로맨틱한 남자(혹은 여자)는 어디 간 게 아니라 일상의 지리멸렬함을 같이 이겨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일 테니 말이다. 이것이 개봉 열흘 만에 ‘비포 미드나잇’이 10만 관객을 단숨에 동원한 이유일 터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