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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1882~1941)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의식의 흐름’이라는 실험적인 소설 기법을 처음 선보였으며,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꼽힌다. 화가인 언니 바네사와 함께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지식인, 예술가들과 블룸즈버리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상쾌한 6월의 아침, 창을 열면 대기가 투명한 바다처럼 펼쳐진다. 댈러웨이 부인은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문득 열여덟 소녀 시절을 떠올린다. 첫사랑 피터 월시는 그날 이렇게 말했던가? 30년도 더 지나, 그의 눈과 그의 미소, 그 밖의 온갖 것들이 다 사라져버렸는데도 몇 마디 말은 또렷이 남아있다. “이상하기도 하지!”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37> 『댈러웨이 부인』과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은 1923년 6월의 어느 날 여주인공 클라리사가 파티를 위해 꽃을 사러 가는 데서 시작해 그날 밤 파티를 마무리하는 데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에는 늘 ‘의식의 흐름’이니 내적 독백이니 하는 문학적 수식이 따라붙는데, 이런 선입관을 갖고 읽으면 난해하기 짝이 없다. 그냥 평범한 여성의 하루도 얼마든지 소설 한 편으로 녹여낼 만큼 풍부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천천히 따라가 보자.

클라리사가 길을 건너려는 순간, 11시를 알리는 빅벤의 종소리가 퍼져나간다. 묵직한 원을 그리며 공중으로 흩어져 가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종소리 속에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이, 삶이, 런던이, 유월의 이 순간이” 들어있다. 경찰관이 손을 들어올리고 그녀는 인도로 올라선다. “오,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면!”

올해 쉰둘이 되는 그녀는 여전히 날씬하고 우아하고 매력적이지만 전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느낌이다. “보이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은 존재. 더는 결혼을 할 것도 아니고, 아이를 낳을 것도 아니고, 단지 사람들과 더불어 거리를 걸어가는, 이 놀랍고도 다분히 엄숙한 행진에 동참하고 있을 뿐이야. 클라리사조차도 더는 아니고, 그저 미세스 댈러웨이, 리처드 댈러웨이의 부인으로서.”

집으로 돌아와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피터가 찾아온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그 모든 시간과 그 모든 감정을 떠올리지만, 마치 새가 나뭇가지를 건드리고는 파드득 날아가버리듯 곧 스스럼없이 눈물을 닦는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내가 이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이 명랑함이 온종일 내 것이 되었을 텐데! 그녀에게는 이미 끝난 일이었다.”

피터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며 묻는다. “당신은 행복해요, 클라리사?” 그 순간 그녀의 딸 엘리자베스가 들어오고 피터는 황급히 떠나는데, 11시 반을 알리는 시계 소리가 겹겹이 육중한 원을 그리며 공중에 번져간다.

어떤가? 이 작품은 이 정도로 느리다. 처음부터 4분의 1이 넘게 읽었는데도 이제 겨우 30분이 흐른 것이다. 사실 30분도 무척 긴 시간이고 소설 한 편을 쓰기에 충분하다. 어차피 우리는 순간들을 살아가는 거니까.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오셀로에게 불어넣었던 그 강렬한 사랑의 느낌을 그녀는 두 번씩이나 읊조리는 것이다. “만일 지금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때이리.”

사람들은 그녀가 파티를 여는 이유가 명사들을 주위에 불러 모으기를 좋아해서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속물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단지 삶을 사랑할 뿐이다. “난 바로 그 때문에 파티를 여는 거야.” 그 파티들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하나의 봉헌(奉獻)”이라고 대답한다. 파티는 그녀에게 존재의 확인과도 같은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또 하루가 올 것이다.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고 공원을 산책하고, 그러다 난데없이 피터가 찾아오고, 장미꽃을 받고, 그것으로 족하다. 그 후에는, 죽음이란 얼마나 믿어지지 않는지! 죽음이 끝이라는 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그 모든 것을, 모든 순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파티는 성공적으로 끝나간다. 하원의원인 남편 리처드는 성의껏 손님들을 챙겼고, 총리까지 얼굴을 비쳤다. 막바지에 그녀도 알지 못하는 셉티머스라는 청년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지만, 그 소식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좀 더 깊이 응시하도록 해준다.

“젊은이는 자살을 했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계가 시간을 알린다. 한 점, 두 점, 석 점. 이 모든 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자 그 말이 떠올랐다. 태양의 열기를 더는 두려워 말라. 손님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얼마나 특별한 밤인가! 그녀는 왠지 자살을 한 청년과 아주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이, 모든 것을 내던져버린 것이 기뻤다. 시계가 종을 쳤다. 납처럼 둔중한 원이 공중으로 퍼져 나갔다.”

이런 무언의 장면들 때문에 이 작품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투신하기 직전 따뜻한 시선으로 아내를 바라보는 셉티머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죽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산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다만 인간들이 그를 몰아세울 뿐이라고 생각했다.

버지니아 울프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쳤다. 하지만 그녀 역시 댈러웨이 부인만큼이나 삶의 순간순간들을 사랑했다. “모든 것이 좀 더 천천히 지나갔으면, 좀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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