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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게, 레임덕 가속화…바흐 차기 위원장 눈앞

지난달 31일 오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레넥스포 국제회의장. 8호 회의실에선 스포트어코드(SportAccord)가 연례회의 마지막 일정으로 신임 회장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스포트어코드는 세계 스포츠 경기단체들이 소속된 연합체다. 올림픽 종목 38개(여름 28개, 겨울 10개)를 포함해 무에타이ㆍ개썰매와 같은 군소 종목까지 모두 92개의 단체가 소속돼 있다. 모든 종목이 망라된 기구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비해 이렇다 할 파워도 없고, 크게 주목받지도 못한다.

9월 10일 권력 교체 앞둔 IOC 파워 이동

같은 시각 IOC도 7-2호 회의실에서 자크 로게 위원장 주재로 집행위원회를 열었다. 집행위는 IOC의 핵심 의사결정 기구다. 레슬링을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시키기로 했다가 재진입의 기회를 준 곳도 집행위다. 중요 결정이 자주 내려지는 기구인 만큼 회의가 열릴 때마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친다.

그러나 이날 오전엔 집행위 대신 스포트어코드 회장 선거에 이목이 집중됐다. 임기 만료를 3개월여 앞둔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파워가 아직 남아 있는지, 차기 IOC 위원장은 누가 유력한지 가늠해볼 수 있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후보는 두 명. 마리우스 비저 국제유도연맹(IJF) 회장과 버나드 라파셋 국제럭비연맹(IRB) 회장이다.

막후 실력자 알사바 OCA 회장
로게는 라파셋 회장을 배후에서 강력히 지원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외국계 올림픽 전문 컨설턴트는 “원래 라파셋은 스포트어코드 회장 선거엔 관심도 없었지만 로게의 거듭된 요청으로 출마했다”고 전했다. “회장 선거에서 이기면 그에게 IOC 위원 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을 로게가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라파셋을 끌어들여 평소 눈엣가시였던 비저 IJF 회장을 견제하려 했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다. 로게는 측근에게 “내가 IOC 위원장으로 있는 한 비저는 IOC 위원이 될 수 없다”고까지 말한 적도 있다.

반면 쿠웨이트 IOC 위원이자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인 셰이크 아마드 알파하드 알사바는 비저를 밀었다. 이날 선거 결과는 비저의 압승(52대 37)으로 끝났다. 로게의 레임덕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숨은 승리자인 알사바 회장은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나타나 비저와 축하의 포옹을 나눈 후 사라졌다.

지난 4월 방한해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하기도 했던 알사바 회장은 막강한 재력을 등에 업고 IOC 내 권력투쟁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지난해엔 패트릭 히키 아일랜드 IOC 위원과 손잡고 당시 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ANOC) 회장이었던 멕시코의 바스케스 라냐 IOC 위원을 반강제로 사퇴시키기도 했다. ANOC 회장 자리는 알사바 회장에게 돌아갔고, 히키 위원은 그 대가로 IOC 집행위원이 됐다. 로게 위원장 입장에서는 알사바의 존재가 더욱 떨떠름할 수밖에 없다.

비저 회장은 한술 더 떠 로게의 속을 긁었다. 스포트어코드에 소속된 모든 종목의 경기를 4년마다 한 국가에서 여는 ‘유나이티드 월드 챔피언십’을 열겠다”고 한 것이다. 군소 종목의 지지를 얻기 위한 포석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올림픽 종목에 끼지 못한 종목들까지 망라해 또 다른 올림픽을 열겠다는 심산이다.

현재 IOC는 개최 도시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효율적 경기 운영을 위해 올림픽 종목 수를 여름겨울 합쳐 30여 개로 제한하고 있다.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될 경우 해당 경기단체는 IOC로부터 상당한 보조금을 받는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 수익금에서 창출된 5억2000만 달러(약 5900억원)가 20여 개 올림픽 종목에 배분된 것처럼 해당 경기단체는 상당한 수입원이 된다.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군소 종목 입장으로서는 올림픽과 IOC가 얄미울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활용해 비저 회장이 반란을 일으킨 셈이다.

비저 회장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1회 대회는 2017년 개최할 것이며, 중계권 협상 등이 이미 진행 중이다. 우리 대회는 올림픽과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게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스포츠 경기가 많아지면 올림픽의 의미가 희석된다. 좋지 않은 행태”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임기 만료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힘이 빠진 로게의 공허한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스포트어코드 새 수장으로 알사바의 지원을 받는 비저가 당선된 사실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온 차기 IOC 위원장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IOC 역사상 최다 후보 난립
로게는 후임 위원장 선출 과정에서 중립을 공언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할 생각인 듯하다. 1일 현재 6명이 차기 위원장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119년 IOC 역사상 가장 많은 후보군이다. 후보 등록 마감일이 6일이어서 후보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맨 먼저 출마를 선언한 토마스 바흐(독일) 현 IOC 부위원장에서부터 세기적인 장대높이뛰기 선수 출신 세르게이 붑카(우크라이나) 위원까지 6명이다.

현재 바흐가 선두를 달린다는 데 이견이 없다. 몬트리올 올림픽 펜싱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변호사를 거쳐 IOC에 입성한 인물이다. 영어ㆍ프랑스어에 능통한 데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IOC의 마당발로 불린다. IOC 집행위 부위원장뿐 아니라 징계위원장ㆍ법사위원장 등 여러 주요 감투를 갖고 있다. 특히 IOC 막후 실력자인 알사바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의 등극 가능성은 매우 커 보인다.

하지만 그의 무혈 등극을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 견제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미국계 올림픽 컨설턴트는 “안티 바흐 세력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프랑스어권 위원들의 불만이 많다”고 전했다. 여기에다 같은 유럽권인 ▶데니스 오스왈드 스위스 위원 ▶붑카 우크라이나 위원이 출사표를 던진 것도 불리한 요소다. 유럽 표를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변수는 알사바 회장의 지원이 얼마나 득표에 플러스로 작용할까 하는 점이다. 선거 생리상 알사바의 병풍 역할이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소지도 있기 때문이다. IOC 주변의 한 인사는 “알사바 회장이 붑카 위원에겐 차기 IOC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지 말라고 해서 붑카가 화가 나 IOC에 보고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 푸에르토리코의 리차드 캐리온 위원도 주목받는다. 캐리온은 IOC 재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TV 중계권 협상을 성공리에 마무리해 IOC의 곳간을 두둑하게 채운 공이 크다. 캐리온 위원은 당선 가능성을 묻는 기자에게 “후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답했다. 위원장 선출은 한 번 투표로 최다 득표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다. 최저 득표 후보를 순차적으로 제외하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탈락 후보의 표가 이합집산하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일 수 있다.

나머지 두 후보는 아시아권이다. IOC 제1부위원장인 싱가포르의 응 세르미앙 위원과 대만의 우칭궈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회장이다.

지금까지 IOC 위원장은 미국인이 한 번 맡은 걸 빼고는 모두 유럽에서 배출됐다. 유럽 견제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이를 뒤집을 만한 세력이 다른 지역에는 별로 없다. 차기 위원장은 9월 1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IOC 총회에서 선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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