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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향훈을 확산시키면 온 세상이 공부터”

선방에서 정진하던 비구니 스님들이 저녁 공양을 하러 걸어나오고 있다. 왼쪽 붉은빛 다층답은 대원사의 얼굴이자, 선원의 중심추다. 조용철 기자
빈손으로 돌아왔으니 무얼 먹고 살 것인가
십 리 은하수 물줄기 마시고 마셔도 남음이 있네

하안거 들어간 비구니 사찰, 지리산 자락 산청 대원사를 가다

 
 칼을 찬 선비’ 남명 조식 선생의 시를 읊조려 본다. 선생은 이 계류가 흘러오는 삼십 리 밖 덕산 고을에서 천왕봉을 보며 수양했던 유학자다. 벼슬자리를 마다했던 선생은 산천재(山川齋)를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남명의 문인들은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많이 활약했다.
 
 무릇 산이란 그런 곳이다. 물러나 힘을 비축했다가 때가 되면 세상에 나가 소임을 다한다. 산은 나무와 풀, 짐승들만 길러내는 게 아니라 사람도 키워낸다. 그리하여 산을 대표하는 인물이 출현하게 되고 그 인물 때문에 영험을 띤다. 현대 한국 불교의 걸출한 선승, 성철 스님이 출가하기 전 대원사 앞산 좌선대에서 수행한 이야기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성철 스님은 여기서 칠십 리쯤 떨어진 단성면 출신이다.
 
 지리산 동쪽 기슭의 대원사는 선원 중심의 비구니 사찰이다. 대웅전 오른쪽 언덕배기에 터를 잡은 사리전(舍利殿)이 선방인데 이번 하안거에는 모두 27명의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선방은 우뚝 솟은 한 기의 붉은색 다층석탑(보물 제1112호)과 마주했다. 철분이 많은 화강석이라서 붉은색을 띠는 것인데 탑을 받치고 있는 네 귀퉁이의 문인석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수좌들은 새벽 3시에 기상하여 예불을 올리고 4시부터 좌선을 시작한다. 5시에는 방선(放禪: 공부를 쉼)하고, 6시에 아침공양을 한다. 7시에 입선했다 10시 방선. 오후 1시 입선, 5시 방선, 저녁 공양 후 입선했다가 9시에 방선하여 취침에 든다. 철야하는 용맹 정진은 일정하지 않다. 방선하게 되면 수좌들은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탑을 돌며 굳은 몸을 풀고 마음을 고른다. 포행(布行)이라고 하는 이것 또한 참선의 연장이다.
 
 산에도 음양(陰陽)이 있다. 지리산은 그 형국이 어머니의 넓은 품 같다고 한다. 천왕봉 산신 천도성모는 물론, 노고단 같은 지명(地名)에서도 여성성이 바로 드러난다. 대원사 산신 또한 할머니다. 대원사에는 부뚜막신인 조왕신도 모신다. 천광전 공양간에는 조왕단이 있다. 조왕은 불과 음식을 관장하는 동양 전통 토속신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선원 중심 사찰인 데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임에도 가람 양식을 고루 갖췄다. 우리네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듯, 중요한 게 있대서 딱히 그 한 가지만을 챙길 수가 없었던 걸까.
 
 대원사는 정갈한 사찰 음식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비싼 돈 주고 사먹는 미덥지 못한 먹거리가 늘 고민인 게 요즘 시절이다. 소박한 사찰 음식은 건강 식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여기엔 지리산이라는 천혜의 터앝에 지천으로 널린 온갖 산야초들과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의 공덕을 빼놓을 수 없겠다.
 
 “유서 깊은 신라 고찰이지만 화마를 참 많이 겪었지요. 1914년 불이 나서 다시 세웠는데 1948년 여순반란 사건 때 방화로 죄다 타버립니다. 철불상까지 녹아내리고 탑과 배롱나무 같은 정원수만 남았어요. ‘지리산 호랑이’라 불렸던 당대 3대 여걸 법일(法一·1904~91) 스님이 들어오시면서 비구니 사찰이 됩니다. 스님은 전국을 다니며 기둥 하나 서까래 하나 시주받아 중창했습니다. 맨 먼저 탑전부터 세웠어요. 지금은 번듯한 40평이지만 당시는 열댓 평 정도였지요. 법일 스님은 상량식 때 박수를 치시면서 ‘도인들이 쏟아져 나와라!’ 축원했답니다. 법일 스님의 그 발원이 곧 대원사 문중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중이 됐으면 공부해라. 공부를 못하게 생겼으면 오롯이 뒷바라지해라’. 그러다 보니 외연을 키우거나 세상과 소통하는 데에는 좀 소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뚜막신인 조왕신을 모신 대원사 공양간.
 도행 총무스님은 소나무 향기 그윽한 송차(松茶)를 내주었다. 송차는 복분자, 생강, 찔레 열매 등을 넣어 만든 칠보차와 더불어 대원사가 자랑하는 사찰 음식 명품 가운데 하나다. 송차는 궁중에서 유래한 차인데 스님들 상기증 치료제로 써왔다. 그러다 노화방지와 항암효과가 있다고 세간에 알려지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역시 지리산의 정기를 머금은 대원사 송차는 다른 곳에서 만든 송차에 비해 약성(藥性)이 뛰어나다고 한다. 가급적 번다한 행사를 피해온 대원사는 색다른 템플스테이도 한다. 학교폭력 특별교육과 기업연수, 은퇴자 프로그램이다. 다른 절집에 비해 궂은 일에도 적극적인 셈이다.

 “30년을 수행해놓고도 법문 한 자리 제대로 못하는 중을 아양승(啞羊僧)이라고 해요. 벙어리 염소에 빗댄 거지요. 이제 우리 대원사는 선방 수좌들을 뒷바라지하면서 세상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우리 절은 빼어난 자연환경과 좋은 먹거리를 갖추고 있어요. 그간 우리만 독점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힘겨운 세상 사람들에게 산문을 개방하고 공유해야 옳다고 봐요. 처음에는 반대하던 어른 스님들도 문제 학생들이 절집 체험을 통해 거듭나는 것을 보시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혜성 스님, 가톨릭 사제 과정을 마친 이준희 팀장 같은 훌륭한 재원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죠. 영어도 잘해서 외국인들이 자주 옵니다. 기업연수는 50명까지 가능하고 자유롭게 맞춤형 프로그램을 합니다. 절집이라고 불편해야 할 까닭이 없지요.”

 도행 스님과 산중 담소를 하자니 진금(塵襟)이 씻겨나가는 느낌이다. 문득 넓은 어머니 품과도 같은 지리산이 세상을 보듬고 치유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렸지만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아직도 미미하다. 비구, 목사, 신부 중심의 종교계는 더하다. 비구, 비구니, 처사(우바새), 보살(우바이) 사부대중은 그 역할만 다를 뿐 똑같이 중요하다. 종정이나 총무원장, 종회 의원 같은 종권 역시 비구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 아닌가.

 신세대 스님인 혜성 지도법사는 대학원 시절에 비정부기구(NGO) 단원으로 제3차 세계종교회의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세계 각국 청년들이 활동하는 것을 보며 우리 청소년들의 미래를 꿈꾸게 됐습니다. 종교인은 세상의 이해관계를 떠나 인류의 행복을 위해 꿈꿀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교육입니다. 드넓은 지리산 대원사 계곡이 교육의 장입니다. 절 바로 윗마을에 있는 가랑잎 초등학교를 확보하여 템플스테이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 불교가 자기모순에서 떨치고 나와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을 다각도로 찾아봐야 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유엔 종교분과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선(禪)의 향훈을 확산시키면 온 세상이 공부터니까요.”

 지금이야말로 선의 향훈을 멀리멀리 퍼뜨릴 때 같아서 필자도 공감했다. 산문 밖 세상 사람들의 삶은 번거롭고 고달프다. 후덕한 지리산 자락 선원 뜰을 가만가만 거닐어본다. 성철 스님이 청년 시절에 좌선을 했다는 앞산 좌선대에 올라 가부좌도 틀어본다. 그러면서 오래 묵은 의문을 파고들어간다. 젊은 날, 산문에 들어가 득도하겠노라고 용맹 정진하는 발심은 분명 거룩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실천 없는 사유는 공허하다. 좌선은 단순한 사유가 아니지만 사유와 다른 실체성이 분명하게 있는 것도 아니다. 좌선 공부로 자성을 찾을 수는 있겠지만 우주의 본질을 깨닫거나 중생을 제도하는 도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런 건 차라리 물리학자나 독지가, 사회봉사자들이 하는 게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는가. 앉아서 치열하게 화두를 잡도리해 봤다면 다음번엔 서서 삶의 현장의 땀을 흘려보면 어떨까. 최소한 공허감은 말끔히 떨쳐낼 수 있고 몸과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6개월째 묵고 있는 윈윈 캐피탈 김영태(58) 대표는 절집에서 은퇴자 프로그램을 모색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 사는 그는 금융업계에 종사해 왔는데 처음에 한 달만 머물며 책이나 읽으려 했던 것이 2년 계약으로 이어졌다. 지리산과 절집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린 것. 인터넷과 전화로 회사 업무를 챙기는 그는 대원사와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자 한다. 좋은 걸 서로 나누면 그게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이니까.

 세상의 훤소와 비켜섰던 비구니 선원 대원사가 어머니의 자비로운 품을 열었다. 적요한 산사의 수행 공간과 정갈한 사찰 음식이 필요하면 언제든 산문을 두드리란다.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
모든 현상은 왔다가 결국은 지나간다.
알아차리고 머물러 지켜만 보라.
이 뭣고!
질문을 던지면서.
 
 솔바람이 불었다. 템플스테이 염지관(念知觀) 명상 때 읊조려 준다는 초기경전 구절이 마음 안에 물무늬를 그렸다. 물거품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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