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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취나물과 도토리가 사라지고 있다”

지리산 산기슭의 주민들은 지리산을 ‘어머니산’이라고 부른다. ‘마고(麻姑) 할매’ 전설이 서려 있는 이 산이 어머니같이 품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윤치근(62)·성근(56) 형제는 지리산에서 나고 자란 뒤 외지로 나갔지만 산을 못 잊어 귀산(歸山)했다. 지리산은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었다. 윤씨 형제는 ‘산꾼’이다. 산에 살며 산 덕에 먹고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윤치근·성근 형제가 전하는 지리산 산꾼 생활

 형제는 대원사 윗자락의 산촌(山村) 출신이다. 행정구역상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로 묶인 이 산촌은 유평마을, 삼거리마을, 외곡마을, 중땀마을, 새재마을 등 작은 부락 5곳으로 이뤄졌다. 형 치근씨는 유평마을, 동생 성근씨는 새재마을에 산다. 제일 높은 새재마을과 가장 밑 유평마을의 고도 차이는 200여m다. 마을은 일제 때 380여 가구가 모여 살 정도로 꽤 번창했지만 지금은 50여 가구만 남았다. 마을 원주민의 가족사를 살펴보면 결국 대원사와 연이 닿는다. 윤씨 형제의 경우 이름난 목수였던 아버지가 1956년 대원사 중건에 참가하면서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사상촌(寺上村)인 셈이다. 유평리는 1960년대까지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돈 벌러 지리산 떠났지만 결국 돌아와
윤씨 형제는 장성한 뒤 가난 때문에 곧바로 객지로 나가야 했다. 치근씨가 아버지와 사별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76년 먼저 산으로 되돌아왔다. 동생 성근씨는 도회지에서 살면서도 늘 산을 그리워했다. 그는 “산을 못 잊다 보니 20년 직장을 다녔는데도 퇴직금이 변변찮았다”며 웃었다. “매년 9월이 되면 산이 그리워 사표를 쓰고 전국 산을 돌아다닌 뒤 이듬해 다시 입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성근씨가 빈손으로 떠났다 다시 빈손으로 돌아온 게 33세 때였다. 치근씨는 “며칠 전 부산에 갔다 왔는데 이젠 대도시에 도저히 못 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콘크리트 빌딩 속에서 어떻게 살 수 있나. 도시 사람들이 아무리 돈 많아도 정말 불쌍하다”고 말했다. 지리산을 못 잊은 건 윤씨 형제만이 아니다. 성근씨는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보면 ‘외지서도 아름다운 계곡, 풍성한 열매, 자유분방했던 어린 시절 등 지리산의 추억들이 늘 생각난다’고 한다”고 말했다.

 산 생활은 그러나 신선놀음이 아니다. ‘농가 월령가’ 못잖은 ‘산가(山家) 월령가’가 산꾼들을 기다린다. 계절이 바뀌고 자연이 변하면 그에 맞춰 살아야 하는 게 이들의 삶이다. 1~3월은 고로쇠나무 수액을 채취하는 철이다. 고로쇠 물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산꾼들에겐 짭짤한 벌이가 됐다. 3~5월엔 각종 산나물을 따러 다닌다. 병풍취·단풍취·다래순 등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이때 산꾼들은 보통 새벽 4시 주먹밥 몇 개를 쥐고 집을 나간 뒤 해지기 전까지 12시간 넘게 산을 누빈다. 6~8월은 산한기(山閑期)다. 장마와 태풍 때문에 산행이 어려워 집에서 쉬는 날이 많다. 이따금 비가 그치는 날이면 우후죽순처럼 솟아난 버섯을 찾아 나선다. 8~10월은 본격적인 버섯 채취 시즌이다. 송이버섯·싸리버섯 등이 인기 있는 버섯들이다. 산꾼마다 자신만의 버섯터가 있다. 그 위치는 가족들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1급 비밀이다.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진 홍시를 말려 곶감을 만든다. 유평리는 일교차가 크고 햇빛·눈빛이 풍부한 곶감 덕장으로도 유명하다. 이곳 곶감을 상품(上品)으로 치는 이유다. 곶감은 요즘 산꾼에겐 가장 안정된 수익 기반이 됐다. 인근 농가서 재배하는 홍시 물량도 모자라 외지로 나가 감을 사들인다.

동갑내기 산꾼 부부 윤치근(63ㆍ오른쪽)씨와 이금덕(63)씨. 이씨가 “산으로 시집와 고생이 많았다. 전생의 업 때문”이라고 농을 걸자 윤씨는 “(이씨의) 삼대가 덕을 쌓아서 내가 구제했다”고 받아쳤다. 조용철 기자
 치근씨는 산꾼 생활 틈틈이 사과 과수원과 더덕밭을 일구는 반농반산(半農半山)을 한다. 성근씨 부인은 식당을 운영한다. 윤씨 형제를 포함해 유평리 산꾼 6가구의 평균 수입은 대기업 부장급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가는 돈도 많아 손에 남는 게 많지 않다. 게다가 윤씨 형제는 산을 닮아선지 욕심이 없는 편이다. 성근씨가 20대 때 경남 의령의 자굴산에서 비박했을 때 일이다. 처녀귀신이 나오는 꿈을 꾼 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잠자리 주변에 산삼이 널려 있었다. 산삼밭 한가운데서 잠을 잔 것이었다. 산삼 38뿌리를 캐내서 모두 가족·친구·친지들에게 나눠줬다. “우연히 얻은 행운은 나누는 게 도리”라는 게 그의 말이다.

 산꾼 형제에게 ‘언제 지리산이 가장 좋은가’ 물었다. 동생은 “산 정상에 올라가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볼 때”라고 답했다. 또 “고단할 때마다 아무도 모르게 산 속에 묻어 둔 소주를 꺼내 자연을 안주 삼아 마신 뒤”도 그에 못잖다고 한다. 형은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의 모습을 바라보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리산은 나이가 먹을수록 겸손해져야 한다는 걸 가르쳐 준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지리산이 어머니처럼 늘 살가운 게 아니다. 여름철에 폭우와 태풍이 닥칠 때 지리산은 두 얼굴을 드러낸다. 산꾼들은 지리산이 무서울 수도 있다는 경험을 저마다 갖고 있다. 그래서 성근씨는 “가끔 봉우리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멀어도 꼭 돌아서 간다”고 말했다. 대부분 산꾼들은 자식들이 가업을 잇는 걸 반대한다. 너무 힘들고 위험한 생활이어서다. 유평리 산꾼의 자녀들은 모두 외지에서 산다. 그래도 “아들놈이 원하면 어쩔 수 없지”라며 성근씨가 넌지시 기대해본다.
 
“나무가 너무 울창해 지리산이 죽어가”
산사람들이 도회지사람들에게 바라는 건 없을까. 윤씨 형제는 “지리산이 죽어간다”며 도움을 호소한다. 나무를 많이 심어 숲을 가꾸는 것은 좋지만, 역설적으로 너무 울창해진 숲이 지리산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성근씨는 “숲은 지본류(이끼·고사리 등), 초본류(각종 풀), 목본류(각종 나무)가 어우러져야 건강하다”며 “지금은 목본류만 천지인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무 그늘에 햇빛이 가려 풀이 자라기 힘들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덩굴식물이 나물이 자랄 자리를 독차지한다. 언제부터인가 지리산에서 곰취나물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다 외지인들의 무분별한 채취도 거들었다. 성근씨는 “산꾼들은 나물을 줄기까지만 따 가는데 외지인들은 뿌리째 뽑아간다”며 “결국 씨가 마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생태계를 원래대로 살리려면 간벌을 하든지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치근씨의 걱정은 야생동물이다. 멧돼지·노루·너구리 등이 시도 때도 없이 민가로 내려와 농작물을 먹어 치운다. 그는 사과 과수원을 지키기 위해 창고에서 지내는 날이 많다. 전깃불을 밤새도록 켜놓고, 새벽에 때때로 나가 폭죽을 터뜨려 멧돼지를 내쫓는다. 얼마 전 집 근처에서 대형 냉장고만 한 멧돼지와 맞부딪힌 적이 있었다. 치근씨의 기억으론 이렇게 야생동물이 극성을 부린 것은 2년 전부터다. 그는 “산에 도토리가 귀해진 거라. 먹을 게 없으니 야생동물이 마을까지 내려올 수밖에 없겠지”라고 말했다. 지천으로 널린 도토리를 지리산에서 치워버린 건 도토리거위벌레 짓이다. 이 벌레는 도토리 속에 알을 낳는다. 예전에는 일부서만 보였는데 지금은 온통 도토리거위벌레다. 치근씨는 “정부가 2년 전 항공방제를 그만두고선 도토리거위벌레가 무섭게 번식했다. 다시 항공방제를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형제는 마지막으로 입을 모아 “산은 항상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지 산이 먼저 안다”며 “자식에게 좋은 산을 물려주겠다는 심정으로 산을 아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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