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심수관 도요지 유물 ‘히바카리’엔 조선 도공 넋이 …

조선 도공들이 처음으로 닿은 일본 해안가 구시키노 지역에 세워진 비석을 보고 있는 답사단. 왼쪽부터 오찬욱 명지대 일문과 교수,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화가 임옥상씨. 가고시마(일본)=정재숙 기자
“형님도 가세요?”
“오랜만일세. 우리 같은 방 쓰는 건 아니겠지? 되도록 멀리 떨어지세.”

유홍준 교수의 ‘일본 속 한국 문화유산 답사기’

만나자마자 농을 주고받는 화가 임옥상씨와 김정헌씨 대화에 사람들이 빙그레 웃는다.
 
지난달 2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유홍준 교수와 함께하는 일본 남규슈 답사단’은 출발부터 시끌벅적했다.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규슈 지역을 돌아보는 2박3일 여정은 즐기면서 공부하는 신사유람단을 닮았다. 30여 년간 답사단을 꾸리면서 자연스럽게 맺어진 유 교수의 인맥은 그대로 ‘작은 학교’나 마찬가지다. 오늘의 좌장은 안병주(80) 성균관대 명예교수. 유 교수는 평생의 은사를 ‘느티나무’라 부른다. 도자사로 이름난 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한·일 교류사를 공부한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 중세 일본문학을 전공한 오찬욱 명지대 일문과 교수 등 일본 속 한국문화를 분야별로 설명해줄 강사진이 속속 도착하니 답사꾼들 발걸음이 바빠진다. 유 교수의 책을 펴낸 창작과비평사 백영서(연세대 사학과 교수) 주간과 염종선 국장이 30명 답사단을 일일이 챙긴다. 그중엔 이번 답사 동행을 신청해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힌 일반 독자 4명도 포함됐다.
 
100대 1 경쟁 뚫은 일반 독자도 4명 동행
비행기로 1시간30분 남짓, 일본 남단 가고시마(鹿兒島) 공항에 내리니 쨍쨍한 열기가 답사단의 겉옷을 벗긴다. 마중 나온 버스에 오르자마자 유홍준 교수가 마이크를 잡는다. 유홍준 답사단의 특징이자 백미인 ‘버스 강의’다. 목적 지점으로 이동하는 짬짬이 각 분야 전문가가 밀도 높은 답사지 해설을 구수하게 풀어놓는다. 행사 주최자인 창작과비평사 백영서 주간의 인사말도 학구적이다.
 
“유 교수 책의 성공은 주제가 있는 여행을 장악한 힘 외에 타이밍이 좋았다고 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 천지인이 조화를 이룬 베스트셀러인 셈입니다. 이번 일본 편은 한국 독자, 일본 독자, 건드리면 자극이 많은 양쪽 모두를 염두에 둬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유 교수가 잘 풀어가리라 믿습니다.”

심수관 도요지의 가마. [중앙포토]
첫 답사지인 ‘심수관 도요지’로 가는 길은 윤용이 교수의 도자사 강의로 막이 오른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가고시마로 끌려온 도공 박평의와 심당길이 개척한 도자기 마을 미야마 이야기는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의 소설 ‘어찌 고향이 잊히리요’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초대 심당길의 뒤를 이어 15대까지 내려온 심수관 가문의 도자 사랑은 눈물겹다.
 
“심수관 박물관에 가시면 딴 건 몰라도 ‘히(火)바카리’를 보셔야 합니다. ‘불밖에 없다’는 뜻인데요. 조선 백자를 만들고 싶었던 도공들이 백토를 구할 길이 없자 궁리 끝에 기품 있고 우아한 ‘사쓰마 백자’를 창조하는 데 이때 일본 것이라곤 불밖에 안 썼다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심수관 박물관에 있는 백자 ‘히바카리’.
과연 ‘히바카리’였다. 어른 손바닥에 꽉 차게 올라앉을 만한 소담한 몸피에 무심한 듯 정갈한 그릇 태를 감싸안은 말간 색의 어우러짐이 일품이었다. 400년 전 도공들은 그 다완을 지키려 핍박을 무릅쓰고 이국 땅에 깊이 뿌리내렸다.

심씨 집안과 다른 길을 걸은 박평의 가문 얘기도 한·일 사이의 질긴 인연을 말해준다. 도공의 길을 걷다 족보를 사들여 성을 ‘도고’로 개명한 박씨 집안의 후손인 도고 시게노리(1882~1950)는 1941년 일본 외무대신을 지낸 인물. 태평양전쟁을 반대한 그의 속내에는 조국이 해방되리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미야마 마을 뒤쪽에 세워진 그의 기념관 마당에는 선조가 자기를 굽던 가마와 도자기 파편 더미가 도공의 넋을 위로하듯 남아 있었다.

답사단은 뛰다시피 종횡무진하는 유홍준 교수의 발과 눈과 입을 좇느라 종종걸음을 쳤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곱 권이 어떻게 탄생했는가 체험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책의 편집을 담당한 염종선 국장은 “때로 ‘대필 작가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만큼 유 교수의 집필 능력은 놀랍다”고 증언했다. 초고를 받고 돌아서면 가필한 재고를 보내고, 며칠 뒤면 퇴고한 새 원고가 도착한다는 것이다. 세 번쯤 틀 갈이를 한 최종 원고에 사진을 앉히는 디자인 작업까지 유 교수가 책의 제작 전반에 들이는 정성과 품이 밀리언셀러의 비결이었던 셈이다.

“나더러 글 잘 쓰라고 화산재 뿌려주네”
답사 사흘째, 가고시마 현립역사자료센터에 들렀다 나오던 길에 유 교수가 글쓰기 비법 하나를 털어놓았다. 갑자기 빗방울인지 꽃가루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하늘에서 떨어져 놀랐는데 알고 보니 근처 사쿠라지마에서 떨어지는 화산재였다. 답사단 모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웅성웅성 놀라고 있는데 유 교수는 “이런 초유의 체험이야말로 내 답사기에 생생함을 더해주는 좋은 소재”라며 “나더러 글 잘 쓰라고 화산재 뿌려주네, 어떻게 묘사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발견한 개미 한 마리, 꽃 한 송이의 세부 디테일로 독자를 현장으로 데려가는 ‘생생 글쓰기’를 그는 ‘양념 치기’라고 불렀다. 그러니 책상에 앉아서는 쓸 수 없는 게 ‘유홍준표 답사기’다.

설명문이나 비문에 어려운 일본어가 등장하면 오찬욱 교수, 유가(儒家)의 고전 해설이 필요하면 안병주 교수, 한·일 교류의 고증이 요긴할 때는 손승철 교수, 백제 멸망 뒤 백제 황족 후손들이 망명해 살았던 난고손(南鄕村)에 도착해서는 전문가인 이종철 총장을 등장시켜 입체적이고 전방위적인 답사가 이뤄졌다. 유 교수는 “이런 융·복합을 통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탄생했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중심이되 많은 이의 지혜를 모아 완성하는 시대의 ‘종합선물세트’라는 얘기다.

답사 여정이 마무리로 접어들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 편에 보내는 애정과 기대의 덕담이 쏟아진다. 손승철 교수는 “조선통신사의 공식 수행원이 우리처럼 30명이었다. 일본인을 교화하려 예악(禮樂)을 앞장세웠기에 화가의 활동이 중요했는데 이번에 김정헌·임옥상 선생이 제 몫을 넘치게 해주셨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참석자들에게 부채 그림을 넉넉하게 나눠준 두 화가는 “다음 답사지인 교토·오사카에서도 만나자”고 화답했다. 유 교수는 “여러분이 소원하신 것처럼 제 책이 21세기 한·일의 공존과 공유와 공생에 이바지할 수 있는 새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도록 집필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로,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로 각기 서로에게 격렬하게 반응하는 요즘, 유 교수의 책이 한·일 문화교류사의 치유 기능을 겸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