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노래·연기·외모가 내뿜는 카리스마로 무대 압도

악역보다 뮤지컬 ‘갓스펠’의 예수 역할이 가장 행복했다는 문종원. 전호성 객원기자
“영화보다 낫다.” “자베르 그 자체다.”

파워 차세대 <29>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역 맡은 문종원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열연하는 모습.
초연 27년 만에 첫 라이선스 한국어 공연이 성사된 전설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나온 관객들의 반응은 대체로 자베르로 통한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용인에서 막을 올려 대구·부산을 거쳐 올 4월 서울에 입성한 이번 공연은 동시기 휴 잭맨, 러셀 크로 등 유명배우 주연의 영화 개봉, 소설 전집 재출간에 따른 고전 다시 읽기 열풍과 맞물려 진작부터 주목받아 왔다. 입소문을 타고 작품은 유료점유율 95%를 웃돌며 순항 중이다.

그러나 스타 캐스팅을 배제하고 철저히 실력 위주로 포진한 배우진에 장발장 역을 맡은 정성화를 제외하곤 관객이 낯선 인상을 받은 것도 사실. 스타는 공연이 진행되면서 작품 내부에서 탄생됐다. 뮤지컬 배우 문종원(34). 할리우드 대배우 러셀 크로와 비교될 만큼 ‘집념의 사나이’ 자베르에 완벽히 빙의된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문종원은 한국판 레미제라블이 건져 올린 최고의 대어라 할 만하다. 지난해 떠들썩했던 7개월간의 치열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최고 실력파 배우들이 쉴 새 없이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와중에도 자베르의 솔로 장면에 유독 객석의 탄성이 터져나오는 것은 비장한 역할에 걸맞게 노래·연기·외모 삼박자에서 고루 뿜어 나오는 배우의 카리스마 덕분이다.

그러나 문종원은 10년 넘게 뮤지컬 무대를 지키면서도 레미제라블 이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캐스팅 당시엔 기대치가 높지 않았는데 뚜껑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팬들조차 ‘저렇게 잘하는 배우였나’라는 반응이다. 이전 작품에서도 강렬한 역할을 도맡아 왔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 가까웠다. ‘고뇌하는 악역’ 자베르를 통해 비로소 임자를 만난 격이다.

청소년기엔 공부와 담쌓고 방황
무대 위 강한 존재감과 달리 무대 밖의 문종원은 사람 좋은 웃음이 매력적인 소탈한 남자였다. 장난기가 많아 보이지만 의외로 외로움을 잘 타는 섬세한 성격이라 고백한다. “큰 욕심도 없이 살아왔다”며 배우가 된 것도 주변의 공으로 돌린다. 오늘의 ‘카리스마 자베르’를 키운 건 어머니와 선생님, 친구와 선배다.

대전의 연구단지에서 나고 자라 특유의 교육열에 염증을 느낀 그는 청소년기를 방황하며 보냈다. 공부와 담쌓은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자 어머니는 미술·무용·수영 등 닥치는 대로 가르쳤다. 무엇 하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에게 무용선생님이 조용히 연극영화과 원서를 내밀었다. 물론 자신이 없었다. 입시 전날까지 말썽을 부리며 시험을 거부했다.

“시험날 비가 엄청 왔어요. 운전도 서툴던 어머니가 새벽 6시에 벌벌 떨며 운전대를 잡고 단국대가 있던 천안까지 저를 데려가셨죠. 밤늦게 실기시험이 끝날 때까지 시험장 밖에서 기도하시던 어머니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운 좋게 대학에 붙었지만 스스로 택한 길이 아닌 만큼 방황은 계속됐다. 학사경고를 받고 도망치듯 군대를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목적 없이 살던 그에게 처음으로 뮤지컬 배우라는 목표를 던져준 이가 대학동기 조승우였다.

“공연을 보러 오라기에 별생각 없이 갔죠. 감동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승우의 무대를 보고 전율을 느꼈어요. 자발적으로 뭔가 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게 태어나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고마워 뭐든 주고 싶었어요. 로비에서 음료수 캔 하나를 건네는데 친구인데도 너무 긴장해서 손이 떨릴 지경이었죠.”

며칠 뒤 처음 도전한 오디션에서 바로 주인공을 꿰찼지만, 훤칠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시작은 아동극이었다. 흰색 전신타이즈를 입고 흰 두건을 쓰고 1년 동안 ‘짐승’으로 살았다.

“첫 공연장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이었어요. 모두가 꿈꾸는 큰 무대에 데뷔부터 주역으로 섰으니 잠시 우쭐했죠. 그 뒤 1년 동안 지방 구민회관을 돌며 출연료도 제대로 못 받고 소송에까지 휘말렸어요. 첫 사회경험을 혹독히 치른 셈이죠.”

데뷔와 동시에 사회의 쓴맛을 본 뒤 착실히 실력부터 쌓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대표적인 공연단체 신시컴퍼니에 입단했다. 2004년 ‘렌트’를 시작으로 3~4년 동안 온갖 앙상블을 거치며 배역을 기다렸다. 그러나 좋은 배역이 곧 주어질 듯한 분위기만 수년간 계속되니 다시 방황이 시작됐다. 2007년 기대했던 배역에서 미끄러진 뒤 자의 반 타의 반 극단을 떠나야 했다. 생활의 전부였던 극단을 나오자 방향을 잃은 느낌에 뮤지컬을 포기할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그를 붙잡아준 것도 친구와의 인연이었다. 조승우와 함께 출연을 결심한 ‘맨오브라만차’의 연출 데이비드 스완에게 발탁돼 악역 페드로를 맡으면서 비로소 앙상블을 벗어나게 된 것. 그러나 너무 강한 이미지를 준 탓에 캐릭터가 굳어지는 부작용도 동시에 낳았다. ‘노트르담 드 파리’ ‘주유소습격사건’ ‘아킬라’ ‘아이다’ ‘조로’ 등 주어지는 역마다 광기 어린 역할이었다. 유달리 몰입이 강한 그이기에 후유증이 따랐다.

“그런 역할은 아무리 연기지만 공연 후에도 정서가 몸에 남아요. 우울증 직전까지 가죠. 한 작품은 좀비 같은 역할이 너무 힘들어 공연 직전에 백배사죄하고 나온 일도 있어요. 배우가 맡은 역할을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요. 그런데 좀 쉬다 보면 또 너무 하고 싶어지고, 다시 강한 역이 주어지죠. 어쩔 수 없이 제가 안고 가야 할 몫인 것 같아요.”

‘멘토’ 김명수씨에게 ‘몰입 연기’ 배워
자베르 도전도 모험이었다. 오디션 과정에서 이미 우울 증상이 나타날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자세로 임했다.

“지금껏 강한 역할만 해왔는데, 레미제라블이야말로 내가 해온 것의 결정체가 아닌가 싶었던 거죠. 꼭 도전은 해봐야 한다는 의무감이었어요. 그래야 배우로서 열심히 살아온 걸 증명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실 레미제라블의 자베르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장발장보다 오히려 시선을 집중시키는 역할로, 모든 뮤지컬 배우들의 꿈의 배역으로 꼽힌다. 그런 만큼 누가 되느냐는 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다. 최고의 배우 조승우를 제치고 캐스팅됐다는 사실이 뜻하지 않게 공개돼 파문이 일자 그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자칫 자신을 이끌어준 친구와의 관계가 어색해질 수도 있는 상황. “걱정 많이 했는데 승우는 ‘오디션 떨어진 게 뭐 어떠냐’며 상황을 쿨하게 종료시켰죠. 정말 멋진 놈이구나 싶었어요.” 아무도 예상치 않았던 그가 자베르 역에 낙점된 이유에 대해 “모두가 강한 캐릭터를 보여줬지만 진짜 자베르처럼 여린 면을 감추고 강함을 포장하는 그의 내면을 봤다”는 게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의 연출가 로런스 코너의 말이다.

코너의 혜안처럼 선 굵은 외모 뒤에 여리고 섬세한 면을 숨기고 있는 문종원은 캐스팅되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평생의 신념이 깨진 엄청난 고통을 품고 죽는 역할을 심적으로 견딜 수 있을지, 합격하고도 자신이 없었다. 그런 그를 다독여 당당한 자베르로 설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이 멘토로 섬기는 연극배우 김명수씨다. 뮤지컬 ‘까미유끌로델’로 만나 그의 완벽한 몰입 연기를 보고 연기에 눈을 떴다는 그는 ‘내 모든 것은 그의 생각을 물려받은 것’이라 말한다.

“늘 공연이 끝나면 술잔을 기울이며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연기를 대하는 태도를 그때 배웠죠. 지금도 힘들면 형님을 찾고, 형님은 언제 어디서든 달려와 주세요. 자베르로 캐스팅됐을 때도 제 고민을 족집게처럼 아시고 ‘죽음에서 머무르지 마라. 죽는 순간 다시 사는 생각을 하라. 내일 다시 자베르로 살 생각을 해야 한다’고 얘기해 주셨죠. 그 말씀 덕에 지금까지 즐겁게 자베르로 살고 있어요.”

‘더뮤지컬 어워즈’ 남우조연상 유력 후보
문종원은 6월 3일 열릴 제7회 더뮤지컬어워즈 남우조연상의 유력한 후보다. 원종원 교수는 “눈에서 광선을 뿜는 듯한 강렬한 아우라로 코너 연출이 요구한 집념의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아직 변신의 폭이 넓지 않지만 다음 작품에서 강렬함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롱런이 가능할 것”이라 평한다. 사실 그는 지금껏 상이라곤 후보에조차 오른 일이 없다.

“이건 제가 평생 해야 할 일일 뿐이고, 오히려 더 분발해야 되는 입장입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니 모든 사람이 그리는 자베르가 있을 텐데, 저는 제가 그리는 자베르의 근사치나마 보여 드리기 위해 지금도 다가가는 중이거든요. 캐머런 매킨토시가 ‘이 작품은 작품 자체로 살아 있다. 자기가 누군지 정확히 알면 애드리브를 하든 동선을 바꾸든 상관없다’는 말을 해줬어요. 그래서 저뿐 아니라 작품 자체가 계속 조금씩 바뀌죠. 생명력을 가진 작품이 나를 진짜 그 사람으로 살게 해주는 좋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가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팀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장발장 역의 정성화는 “나도 노력파지만 나보다 더한 사람이 문종원이다. 클래식 발성을 위해 자존심 팽개치고 후배들에게까지 조언을 구하더라. 후천적 노력으로 이뤄가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냐”고 말한다. 조연출 홍승희씨는 “디렉션을 주면 숙제로 소화해와서 다음날 완벽하게 보여주는 모습에 외국연출팀도 감동하더라. 이 역할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으니 이제 어떤 역할도 가능할 거다.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까지 연상될 정도”라며 치켜세운다.

이런 반응들이니 다음 작품도 대작을 욕심낼 법한데, 레미제라블 이후에는 뜻밖에 작은 연극을 계획 중이다. 음악극도 아닌 정극이다.

“배역보다 연기에 욕심이 나요. 연기보다 노래로 풀리는 뮤지컬과 달리 연기로만 승부하는 걸 해야 감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 저를 위해 하는 겁니다. 스타가 되기보다 지금처럼만 열심히 하면 오래오래 멋진 배우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