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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가 세상에 줄 최고 서비스는 친절”

지난달 30일 서울 답십리동 비전택시대학의 특강에서 강사 김아름씨(오른쪽 셋째)와 정태성씨(오른쪽 둘째)가 수강생들과 박수를 치고 있다. 최정동 기자
“기사님들, 여성 손님이 술 취해서 탔어요. 목적지에 도착해도 안 내린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유. 우리는 근처도 안 가요. 큰일 나게.”

‘비전택시대학’ 총장 된 정태성씨

 “경찰서에 전화하죠. 손댔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지난달 30일 서울 답십리동 한 아파트 상가. 40㎡ 남짓한 강의실은 활기가 넘쳤다. 수강생은 40대 초반부터 60대 중반까지 9명의 남성. 모두 개인택시 기사다. 지난달 27일 문을 연 ‘비전택시대학’에서 마련한 성희롱 예방 특강 시간이다. 대학 ‘총장’ 정태성(48)씨는 강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랴, 앞서 특강한 이미지 관리 강사를 배웅하랴 분주했다. 입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꿈꾸던 수업을 드디어 진행하게 되네요. 이렇게 많은 기사님을 모시고요.” 그는 “개인택시를 몬 지 13년 만에 꿈이 반쯤 이뤄졌다”고 말했다.
 
꿈꾸는 택시 기사
정씨를 처음 만난 건 2009년 여름이다. 그는 막 일본 MK택시에서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돌아온 참이었다. 중앙일보 사회부로 전화를 걸어 대뜸 만나달라고 했다. “MK택시에서 친절 서비스를 배워왔습니다. 거기서 배운 걸 한국에 전하고 싶습니다.”

 한여름에도 정씨는 긴 셔츠에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 품 속에 서른 가지 매뉴얼이 적힌 종이를 지니고 있었다. 손님에게 인사하는 법, 문을 열어주는 법, 자동차 관리법부터 안전 수칙까지 꼼꼼히 기록돼 있었다. “장군 출신 아버지의 유언이 ‘세계 최고의 택시 기사가 돼라’는 것이었어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사업에 실패한 뒤 택시 기사가 됐지만, 이 일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잘하고 싶습니다.”

 그는 공부하는 택시 기사다. 스틱 차량을 몰아 절약한 연료비로 매달 자기계발비 20만원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검정고시를 치르고 온라인 대학과 광운대 서비스경영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스스로 비행기 삯을 내 일본의 MK택시 연수를 다녀왔고, 2011년엔 영국 런던의 유명 택시 회사 블랙캡도 견학했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며 뜻을 함께하는 택시 기사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일본에서 배운 것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하는 기사들, 외부 강연을 하고 나면 “수업을 또 들을 수 없느냐”고 물어오는 기사들이 있었다. 10년쯤 뒤로 꿈꿨던 택시대학 설립을 앞당긴 것도 그래서다. “돈을 모으고 도와줄 분도 찾아서 번듯한 대학을 만들려고 했지요. 하지만 다 마련되길 기다리느니 작게라도 시작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택시대학 입학생은 15명. 입학식은 무료 강의를 약속한 강사 3명과 함께 조촐하게 치렀다. 인천에서 온 30대 택시 기사, 아이를 데리고 온 40대 택시 기사도 있었다.
 
함께 꿈꾸는 기사들
대학 수강생들은 정씨와 닮은 면이 많다. 나이도, 운전 경력도 제각각이지만 “더 나은 기사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다.

 택시 경력 10년의 임이택(44)씨. 온라인 방송을 통해 운전하는 모습을 실시간 중계한다. “택시 기사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직접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얼마나 손님이 없는지, 술 취한 손님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그래야 택시 기사에 대한 오해가 사라질 것 같아서요.”

 14년 택시를 몬 이정훈(50)씨는 쉬는 날이면 서울역으로 간다. 승강장에서 택시 타는 손님들에게 차 문을 열어주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내 일터가 택시잖아요. 사람들이 더 좋아해 주면 싶어서 짐을 들어드리고 문을 열어드리죠.”

 경력 43년의 강희성(62)씨는 택시 기사들의 인터넷 카페를 운영한다. 회원이 5000명이 넘는다. 택시 기사들이 고충이나 자동차 관련 정보를 나누는 장이다.

 ‘가장 친절한 택시 기사’를 꿈꾸는 이들이지만, 현실이 꽃길은 아니다. 택시 운전을 하며 겪는 고충을 묻자 봇물 터지듯 불만이 쏟아졌다.

 “언론에선 왜 자꾸 승차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나요. 승차 거부하는 기사는 일부일 뿐인 데다가 특정 시간대에만 벌어지는 현상이잖아요. 택시를 자주 안 타는 손님들은 모든 택시 기사가 그렇다고 생각해요.”(최장렬 기사)

 “택시 요금이 4년 동안 오르지 않았어요. 그럼 정부가 상점에 공문 내려서 ‘택시 기사는 4년 전 시세로 물건 사게 해줘라’ 했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기사들이 생계가 위협을 받는 상황입니다. 무조건 친절히 하라고 하기 어려워요.”(강성만 기사)

 “평생 택시만 했는데 택시 기사가 매도당해서 억울해요. 우리는 품질을 속일 수도 없고, 서비스를 빼먹는 것도 불가능해요. 그런데 식품 함량을 속이고 가짜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우리를 손가락질하지요. 그럴 때 헛웃음이 나요.”(강희성 기사)

 이들에게 정말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힘든데 왜 이런 수업까지 들으세요? 더 친절하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서 어렵다고만 하면 누가 들어주나요. 최선을 다하면서 요구할 건 해야죠.”(이정훈 기사)

 “40년이나 택시 몬 사람이 뭘 더 배우느냐고 해요. 그런데 나도 서비스니 뭐니 배운 게 없어요. 초보 기사랑 같아요. 여기 총장님은 일본하고 영국에 자비로 가서 많이 배워 오셨잖아요. 나도 그걸 배우고 싶어요.”(강희성 기사)

 “내 직업이 천하게 대접받는 게 서러워서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왜 이렇게 대접을 못 받을까, 생각해 보니 기사들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더라고요.”(이영국 기사)
 
비전택시대학 총장
택시 대학은 2년제다. 초급·중급·고급·전문 과정으로 불리는 4학기로 운영된다. 커리큘럼은 다양하다. 심폐소생술 같은 응급처치나 안전운전 교육부터 이미지 메이킹과 커뮤니케이션, 택시 외국어 등 실용 수업이 대부분이다. 다음 주엔 모든 수강생이 경북 상주시 교통안전공단에 내려가 안전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총장 정태성씨가 가장 중시하는 수업은 따로 있다. 바로 인문학 강좌다.

 “같은 일을 해도 왜 과정과 결과가 다를까 생각해봤어요. 인생과 직업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서 그렇더라고요. 인생관과 직업관을 바르게 세우려면 인문학 수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미 여러 인문학 교수님들께 강의를 부탁드렸고 승낙을 얻었습니다.”

 택시 대학은 등록금을 받지 않는다. 대학 캠퍼스로 쓰는 아파트 상가는 월세가 50만원. 강사들에겐 양해를 구하고 교통비 수준의 강의료만 건넨다. 모든 비용은 정씨가 자비로 충당한다. 사연이 알려지며 가끔 들어오는 외부 강연이 큰 보탬이 된다. 하지만 대학을 운영하느라 택시 영업은 거의 못하는 형편. “집에 가져다 주는 생활비가 빠듯해요. 그래도 너무 행복합니다. 정 안 되면 개인택시를 팔더라도 대학 문은 닫지 않을 거예요.” 힘을 보태는 이도 적지 않다. 사업할 때 친하게 지내던 후배는 번듯한 간판을 디자인해 보내줬다. 강연을 하며 알음알음 사귀었던 강사들이 무료 특강을 약속했다.

 왜 굳이 대학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정식 학위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연수원이나 교육원이라 불러도 충분할 텐데.

 “대학이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잖아요. 택시 서비스 경영을 연구하는 곳이니까 대학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치킨 대학도 있고 미국에는 햄버거 대학도 있다죠.”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저희 스스로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만든 수업이잖아요. 또 기사님들 중에는 공부를 마음껏 못한 분들이 많거든요. 그분들께 대학을 다닌다는 자부심도 주고 싶어요.”

 그의 목표는 비전택시대학 수료증이 MK택시처럼 친절 서비스를 대변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다. 4년 전 그에게 물었던 것을 또 물었다. “이런다고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시나요.” 4년 전과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돈을 받으려고 친절하다면 그건 거래죠. 택시 기사는 친절한 서비스 말고는 세상에 줄 게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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