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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수의 세상탐사] 탈북자 딜레마를 풀 해법을 찾아라

라오스에서 발생한 탈북 청소년 9명의 강제북송 사태는 미스터리 일색이다. 라오스 정부의 돌변(突變)도 그렇거니와 김정은 체제가 기를 쓰고 강제 송환하는 이유도 의문이다. 1977년 납북된 일본 여성(현재 65세)의 아들이 포함돼 있다는 논란도 여전하다. 한국 외교부는 그야말로 동네북 신세다.

 문득 2004년 여름 베트남에서 탈북자들을 특별기 편으로 데려올 때 광경이 떠오른다. 홍콩특파원 시절이었다. “베트남에 체류 중인 탈북자들이 대거 입국한다니 현장 취재를 하라”는 데스크의 지시 전화를 받고 덜렁 하노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그들은 호찌민(옛 사이공)에 숨겨져 있었다. 현지 공관과 관계당국은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온종일 시내를 누빈 끝에 중국-동남아 루트를 넘는 탈북자들의 처참한 실상을 간접적이나마 접할 수 있었다. 숲에서 은신하다 어둠이 깔리면 서너 평짜리 한인 식당에서 바닥에 담요를 깔고 집단 기숙을 했다는 이야기는 그나마 럭셔리하다. 국경수비대에 걸려 ‘묵인 대가’로 누군가 옷을 벗어야 했다는 대목에선 ‘분단의 통곡’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모이고 모인 숫자가 460여 명이었다. 통한(痛恨)의 시간이었다.

 기자 생활 중 탈북자를 처음 만난 건 1994년 2월이었다. 중국 선양(瀋陽), 압록강에 인접한 옌지(延吉)·퉁화(通化)·단둥(丹東) 같은 낯선 국경도시들에 숨어있던 탈북자들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하면서 한국행을 열망했다. 60대 후반의 노인이 ‘러시아를 통해 서울로 가겠으니 1만 위안(당시 120만원)만 도와 달라’고 사정하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몇 차례의 취재 과정에서 결국 문제는 ‘북한 정권’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흘렀다. 한국에 온 탈북자는 2만5000명에 육박한다. 북측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탈북자들의 ‘역(逆) 탈남’을 체제 홍보 수단으로 이용할 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탈북자 문제는 ‘남북 외교전’으로 변질됐다.

 이제 좀 솔직해지자. 탈북자 문제의 본질은 북한의 경제난과 인권이다. 헐벗고 굶주린 경제 난민이 탈북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라오스의 탈북 청소년 역시 사고무친(四顧無親)인 꽃제비가 대부분이다. 그 다음이 사회난민, 정치난민 순일 거다. ‘탈북자 외교전’의 현장은 베트남·태국·캄보디아를 넘어 미얀마·라오스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탈북자들을 남쪽 국경 바깥으로 밀어내는 중국 정부의 처사가 숨어 있다. 중국이 늘 주장하는 대로 ‘국제법과 인도주의’에 따라 처리한다면 이들이 굳이 동남아까지 갈 일은 없을 것이다. 또 하나는 끊임없이 제기되는 ‘기획 탈북’ 논란이다. 먹을 것을 찾아 중국 땅으로 건너온 북한 동포를 굳이 한국 땅에 데려와야 하는지 묻고 싶다.

 우리 사회가 가진 탈북자에 대한 이중(二重) 시각도 문제다.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청소년들이 한국 땅을 밟은들 몇 명이나 과연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이미 한국에 온 탈북자들은 지식·경험·인맥 부족으로 또 다른 벼랑 끝에 몰려 고생하는 이가 적지 않다. 탈북자 임대아파트 주변에서는 ‘집값이 떨어진다’며 항의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차제에 탈북자 문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 중국 지도부와의 담대한 협상을 통해 탈북자 문제를 한·중 양국 관계가 아니라 국제 인권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유엔이나 국제인권기구가 주도하되 남북한과 중국이 당사국으로 참여하는 방안이다. 탈북자들의 망명 의사를 판정할 제3의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때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이달 하순 국빈 자격으로 방중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만나게 된다. 한·중 양국 사이에 오랜 난제였던 탈북자 처리 원칙을 마련한다면 양국 관계는 명실상부한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탈북자들의 정착 문제도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찔끔찔끔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택·교육·직업·의료를 연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10여 개 부처가 연 1000억원가량의 예산을 쓰지만 얼마나 ‘고객 만족’이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한국에 왔다가 다시 미국·유럽으로 망명하는 걸 언제까지 비난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보편적 인권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정치·종교·인종 때문에 한국에 망명 신청을 한 제3세계의 1000여 명에 대해 눈을 감은 채 탈북자 문제에만 매달리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그래서야 어떻게 중국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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