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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왜 다시 군대인가 … 여기자, 백골부대를 가다

“지금 방독면 잘 써야 후회 안 합니다.” 사격술 예비훈련과 체력단련(왼쪽 사진 위에서 첫째와 둘째)이란 언덕을 넘자 화생방이라는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CS탄(최루탄의 일종)이 터지고 연기가 가스실을 가득 채우자 신병교육대 대장이 기자의 방독면을 벗겼다. 순간 바늘 수백 개가 각막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근육 얻고 체중 잃은 훈련 … 야간근무 환상적인 뽀글이 맛
“여풍 시대, 남자다운 남자에 목말라하는 트렌드 반영”

중앙일보 여기자, 백골부대 신병훈련소·GOP를 가다



쉴 새 없이 터지는 마른기침, 비릿한 땀내와 싸한 파스 냄새, 모기와의 밤샘 사투. 훈련소에 입소한 젊은이들은 21개월의 군생활을 통해 ‘몹

쓸 체력’을 벗고 ‘강한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 끈끈한 전우애는 덤이다. 최근 군대 콘텐트가 뜨고 있다. 20, 30대 직장 여성들의 관심도 높

다. 왜 다시 군대인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백골부대 신병교육대와 최전방 GOP를 직접 찾았다.



철원=채윤경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남자들에게 ‘군대 이야기’는 우리고 우려도 다시 우리게 되는 사골과도 같다. 반면에 여성들에게는 수백 번을 들어도 좀체 정이 붙지 않는 낯선 얘기들로 치부됐다. 한데 최근 사회 곳곳에서 군대 콘텐트가 뜨고 있다. ‘군대리아’나 ‘바나나 라떼’ ‘뽀글이’는 국민간식이 됐고, 군 생활에 대한 여성의 관심도 뜨거워졌다. ‘군대 예능’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다. 전시 상황도 아닌데 수십 년간 예비역 남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군대 이야기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환영받게 된 이유는 뭘까. 그 단초를 찾기 위해 기자가 직접 강원도 철원의 육군 제3사단 백골부대(사단장 김운용 소장, 육사 40기)를 찾았다. 14~16일 사흘간 신병교육대와 GOP에서 병영체험을 해봤다.





























피나고 알 배기고 이가 갈려 PRI



 14일 오전. "쉽지 않을 겁니다"라는 교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신병교육대 사격장에 도착했다. 어깨에 K-2 소총을 메자 ‘어머, 나 진짜 군대 왔나 봐’라는 생각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 설렘은 한 발의 총을 쏘기 위해 한 바가지의 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절망으로 바뀌었다.



 먼저 실탄 없는 총으로 땅에 납작 엎드려 10m 거리의 과녁을 향해 영점 잡는 연습을 했다. 총알 대신 조준점을 펜으로 표시하는데, 세 번 모두 지름 1㎝ 남짓의 작은 원 안에서 조준이 이뤄져야 합격이었다. 총구에 눈을 바짝 갖다 댔지만 살짝만 움직여도 모래먼지가 풀풀 날려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침침한 눈을 비비며 다섯 번째 시도 만에 겨우 성공하자 방독면 사격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역시 빈 총이다. 표적이 보이긴커녕 방독면 때문에 눈 뜨기도 힘들었다. 거푸 내쉬는 숨으로 눈앞에 습기가 가득 차고 총구가 흐릿해 보였다. ‘총은 언제 쏴 보나…’. 푸념이 절로 나왔다.



 다음은 사격술 예비훈련인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100m는 앉은 자세로, 200m와 250m는 엎드린 자세로 총을 쏘라는 설명이 끝나자마자 교관의 “250사로(射路) 봐!” 소리가 들렸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지 5초도 지나지 않아 “100사로 봐” 지시가 떨어지고, 일어나서 장전한 뒤 앉아 쏘려는 찰나 다시 “200사로 봐” 소리가 귓가로 날아온다. 다른 훈련병들은 엎드려 있는데 혼자 앉아 있고, 모두 일어섰는데 혼자 엎드려 있자니 민망하기만 했다. 30여 분간 계속된 PRI 훈련 덕에 무릎과 팔꿈치가 아려오고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피’나고 ‘알’ 배기고 ‘이’가 갈려 PRI라더니, 괜히 왔다는 자책과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훈련소로 복귀하자 곧바로 체력단련이 시작됐다. 3㎞ 구보와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가 주 과제. 꾸준한 훈련으로 다져진 5주차 훈련병들의 몸은 남달랐다. 입대 당시의 ‘버림받은 몸’이 5주 만에 적당한 근육을 가진 ‘단단한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마법이 훈련소에서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1.5㎞ 구보에서도 낙오하던 이들이 3㎞ 구보도 거뜬히 해냈고, 비만 훈련병들은 많게는 10~15㎏까지 감량했다. 박중혁(20) 훈련병은 “하루 한 갑씩 피우던 담배도 멀리하고 매일 체력단련을 했더니 폐활량도 급격하게 늘고 몸도 가뿐해졌다”고 말했다. 비만으로 분류됐던 김대현(21) 훈련병은 “104㎏으로 입소했는데 그 새 17㎏이 빠졌다”고 고백했다.



 훈련소 5주는 민간인에서 군인이 되는 과정이었다. 훈련병들은 극한의 체험과 규칙적인 체력단련을 통해 부실해진 체력과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 기자 역시 고된 하루 훈련이 끝나자 종아리와 허벅지에 단단한 알이 배겼다. 교관은 “알은 알로 풀어야 한다”며 “내일은 더 힘든 훈련이 기다리고 있으니 푹 자라”고 조언했다.



 최근 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데는 이처럼 군대가 극한의 훈련을 통해 내재된 남성성을 끌어내는 곳이란 점이 한몫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 여성들이 일본 남자보다 한국 남자를 더 좋아하는 이유가 ‘남자답기 때문’이라고 한다”며 “거센 여풍에 기를 펴지 못하는 남성들이 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부드럽고 자상한 꽃미남’보다 ‘강인하고 건강한 남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민호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남자다운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군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측면이 강하다”며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대중들에게 각종 제한 속에서 극한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군대라는 조직은 분명 매력적인 소재”라고 평가했다.





공 철책 넘어갈까봐 군대축구도 못 해



 둘째 날 기자가 찾은 곳은 북한과 마주하는 최전방 GOP 소초.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 병사들이 지척에서 경계근무를 하는 이곳에는 항상 긴장이 감돈다. 30도가 넘는 경사에 산을 따라 1000m에 달하는 철책이 늘어서 있고, 철책 옆으로 50㎝ 안팎의 높은 돌계단이 있다. 계단이 1009개라 ‘천국의 계단’이란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지형이 험해 이곳 병사들은 ‘허벅지를 얻고 연골을 잃는다’는 말을 즐겨 쓴다. 언제 교전이 일어날지 몰라 병사들은 소초 밖을 나설 때 항상 철모를 써야 한다. 공을 잘못 차면 철책 밖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그 흔한 ‘군대축구’도 할 수 없다. 철모를 쓰고 가끔 하는 농구경기가 소소한 오락이다.



 이들은 고단한 근무를 버텨내는 힘은 ‘전우애’라고 입을 모았다. 15일 밤 11시 야간근무 당시 철책 하단 남대천의 기온은 0도까지 떨어졌다. 방한에 신경 쓰지 않은 병사들은 맨손으로 험한 바람을 버텨내야 했다. 이때 철책을 돌며 경계상황을 점검하던 중대장이 한 병사에게 본인의 장갑과 미리 챙겨뒀던 방한용품을 내밀었다. “고생 많다. 장갑 끼고 해라. 옆 초소 애들에게도 갖다 주고.”



 한 병사는 “근무나 훈련 때는 엄하기만 하던 선임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저를 데리고 나가 ‘괜찮을 거다’라며 담배 한 대를 물려줬을 때 얼마나 위로가 됐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아픈 동료를 대신해 근무를 서고, 휴가 가는 후임을 위해 정성 들여 군화를 닦아주고, 이발할 때도 가운데 머리를 남겨주는 게 이곳 남자들의 우정이다.



 이렇듯 군에는 전우애가 있다는 점이 일반인들에게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직장도, 사회도 나를 품어주지 않는 현실에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자연스레 군대라는 ‘집단’에 애착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회사원 박인식(38)씨는 “살아남는 게 지상과제가 된 회사에서는 누구도 믿기 힘들고 나 혼자라는 불안감도 크다”며 “믿었던 동료나 선배에게 배신당할 땐 춥고 배고파도 서로 배려하며 고통을 이겨냈던 군 시절이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당하지 않은 갑의 횡포가 판치고 배신이 끊이지 않는 현실세계와 달리 군대는 직급에 오르는 과정이 투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명확한 게 특징”이라며 “불공정한 경쟁에 지친 일반인들이 단순하고 명백한 위계를 가진 군대에 향수를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승진(?)할 수 있다는 것도 군 생활에 대한 로망을 불러일으킨다. 3사단 신교대 정훈과장 이경호 대위는 “군에서는 이등병에서 병장까지 똑같은 과정을 거쳐 계급이 오르고 한 번씩은 다 분대장으로서 병력을 통솔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며 “치열한 경쟁사회에선 좀처럼 경험해 보기 힘든 리더 역할을 누구나 해볼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홍중 교수는 “한국 사회는 생존경쟁도 치열하고 고용이나 복지·노후가 보장되지 않아 삶의 불안정성도 크다”며 “이처럼 정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동등하게 승진하고 일정 기간 고용이 보장되는 군대를 보면서 뜻 모를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훈련병들이 초코파이를 원하는 까닭은



 ‘내무반 분위기가 가장 안 좋을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예비역들은 “선임이 여자친구에게 차였을 때”라고 답하곤 한다. 군 생활이 힘든 이유를 물으면 “마음에 안 드는 선임과 24시간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란 대답이 돌아온다. 군대는 계급사회의 극단적 버전이고, 내무생활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치사한 상사와 아니꼬운 상황,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일들을 겪으면서 병사들은 냉혹한 현실세계를 미리 배운다. 군 생활을 세밀히 다룬 케이블 방송의 ‘푸른거탑’도 이런 점을 잘 포착해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남성뿐 아니라 20, 30대 여성들까지 군대 콘텐트를 즐겨 찾는 것도 계급 생활에 대한 여성들의 이해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채정호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성들도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위계 중심 사회나 대인 관계 알력, 집단생활의 고충 등을 자연스레 공감할 수 있게 됐다”며 “군 생활이 자신이 겪는 회사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감정이입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설명했다. 홍두승 교수는 “가까운 이들을 군에 보낸 경험도 군대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을 더하고 있다”며 “부모들은 ‘우리 아들이 저렇게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남자친구나 남동생을 보낸 젊은 여성들도 같은 방식으로 친근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말 초코파이가 먹고 싶어지나요?” 14일 기자가 군에서 던진 첫 질문이다. 사회에서는 다른 먹거리에 밀려 빛을 못 보는 초코파이가 왜 신병교육대만 가면 그리워진다고 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답변은 짧았다. “좀 더 계셔보시면 압니다.”



 그날 오후 신교대 사격장에서 땅바닥을 기었다 엎드렸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수백 번 반복하며 땀과 먼지를 잔뜩 먹고 나니 정확히 네 시간 만에 “초코파이 하나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는 신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쉴 새 없이 계속되는 훈련에 온몸이 당분을 요구하고 있었다. 저녁식사와 함께 배급된 붕어 사만코도 마시듯 먹어치웠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건 수십 년간 계속된 군인들의 하소연이다. 이들의 최대 화두는 간식과 PX(군 매점). PX가 없는 GOP 병사들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 이동식 매점인 ‘황금마차’가 오는 날이 휴가만큼이나 간절히 기다려지는 때다. 군 관계자는 “수백여 명의 병사가 황금마차에서 구입하는 먹거리가 매달 5000만~7000만원 선”이라고 귀띔했다. 한 훈련병은 “지난 5주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부식으로 구구콘이 나왔을 때”라며 “훈련 직후 배고프고 땀에 절어 있을 때 아이스크림 ‘와(Wa)’나 부드러운 몽쉘을 주면 영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GOP의 밤은 도심보다 화려하다. 자정이 넘은 시각 야간 경계근무 중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선 별이 쏟아질 듯 반짝였다. 마침 별똥별도 길게 떨어졌다. 한 병사는 “야간 행군 때 군장을 멘 채 고개 들어 별을 본 게 군 생활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GOP에선 고라니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기자가 네 시간 동안 야간근무를 한 15일 밤에도 고라니 한 쌍이 남과 북의 철책을 사이에 두고 자유롭게 뒹굴었다.



저녁 식사 후 10분이 지나면 남은 밥을 버리는 ‘짬통’에 멧돼지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병사들이 ‘짬피그’ 또는 ‘품바’라고 부르는 이 멧돼지는 매일 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나타나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처음엔 집채만 한 몸뚱이와 기이한 소리에 놀라던 병사들도 몇 달이 지나면 반려동물로 여기곤 한다. ‘공짜 사파리 체험’인 셈이다.



철원=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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