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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한복 입은 신부, 사모관대 없는 신랑 … "남과 다른 결혼식 만족"

시민청 전통 혼례 1호 커플인 이민수·신혜성씨가 초례상을 앞에 두고 맞절을 하고 있다. 이번 결혼식은 전통 혼례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간소화한 게 특징이다. 신랑·신부 의상도 화려한 전통 예복 대신 실용적인 한복으로 대신했다. [강정현 기자]


1인당 평균 예식 비용 1722만원에 호텔 호화 결혼식, 빚을 내서라도 자식 결혼자금을 준비하는 혼주….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이 갈수록 늘면서 일그러진 결혼식 문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특히 수십만원의 축의금을 내고 밥만 먹고 가는 하객에 ‘스·드·메(스튜디오 촬영과 드레스·메이크업)’라는 수백만원짜리 예식 패키지까지 성행하면서 호화 고가 결혼식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진화하는 전통 혼례 ‘시민청 결혼식’ 가보니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올해 초 마련한 ‘시민청 동행 프로젝트: 작고 뜻깊은 결혼식 함께 만들기(이하 ‘시민청 결혼식’)’는 하나의 대안이다. 서울시가 시민청(신청사) 지하1, 2층을 예식 장소로 제공하면서 시민과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며 다양한 예식을 모색하자는 프로그램이다.



 서양식 혼례만 치러 왔던 ‘시민청 결혼식’은 최근 한식 혼례에 도전했다. 전통문화 계승에 앞장서 온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가 기획을 맡았다. 정민자 고문과 조효숙·정혜경·조희숙·황갑순 교수 등 각계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꾸려 전통 혼례의 현대적 모델을 연구했다. 화려한 궁중 혼례 대신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혼례를 기준 삼아 요즘 젊은이들에게 좀 더 자연스레 다가갈 수 있는 방식도 택했다.



 아름지기는 이후 예복·음식은 물론 결혼식에 필요한 소품까지 세세히 준비했다. 아름지기의 자문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인 ‘품애 착한잔치 좋은 날’도 나서 현대적 감각의 전통 결혼식을 재현해 냈다. 이처럼 비용은 줄이고 의미는 더한 전통 결혼식이란 어떤 모습일까.



 지난달 25일 오후 3시 시민청 지하 2층 이벤트홀. 한껏 차려입은 250여 명의 하객으로 로비가 꽉 찼다. 곧 시작될 이민수(36)·신혜성(36) 커플의 결혼식을 찾은 축하 손님들이었다. 신랑 부모는 초례청 동쪽에서, 신부 부모는 서쪽에서 분주히 손님을 맞았다. 자연스레 가운데로 손님들이 모여들어 왁자지껄 잔칫집 분위기를 냈다. 하지만 여느 예식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초례청에는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 대신 흥겨운 풍악이 울렸고, 탁 트인 천장은 화려한 꽃장식 대신 하얀 천으로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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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랑 이민수군과 신부 신혜성양의 혼례를 시작하겠습니다.” 집례자가 초례상 앞에서 운을 떼자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집례자는 하객들에게 당일 혼례를 소개하고 혼례 순서를 간략히 설명했다. 한식 혼례에 익숙하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배려였다. 전통을 따르자면 집례자는 집안이나 동네 어른이 돼야 하지만 현대화한 혼례에선 제한을 풀었다. 이번 결혼식에선 국악을 하는 소리꾼이 집례자 역할을 대신해 뜻 모를 지시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서 전했다.



 양가 어머니가 나와 초를 밝히자 신랑이 나무로 된 기러기를 들고 등장했다. 기러기는 백년해로하겠다는 서약을 상징한다. 원래는 기러기를 들고 신랑 앞에 걸어가는 기럭아범이 따로 있어야 하지만 신랑이 직접 신부 어머니에게 기러기를 전한 뒤 큰 절을 올리는 것으로 절차를 줄였다. 조심스레 기러기를 품에 안고 등장한 신랑도 과거 전통혼례에서 보던 모습과는 달랐다. 머리 위에 큼지막하게 올려지던 사모와 배에 둘러지던 굵은 허리띠는 사라지고 옥색의 두루마기와 바지를 갖춰 입는 등 평상시 볼 수 있는 한복 차림이었다.



 다시 풍악이 연주되면서 신부가 입장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서양혼과 달리 신부는 대기실의 천을 머리 위로 젖힌 뒤 혼자 모습을 드러냈다. 신부 또한 원삼과 활옷을 입던 전통 혼례와 달리 일상에서도 입는 생활한복 차림이었다. 과거 볼 양쪽에 빨간 연지곤지를 찍고, 다홍치마와 연두색 회장저고리에 큰 머리를 얹고, 족두리를 쓴 채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예복을 자문한 조효숙(의상학) 가천대 교수는 “혼례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인 만큼 전통적 가치를 최대한 살리면서 현대적 감각에도 맞추려 노력했다”며 “혼례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입을 수 있는 한복을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소곳이 선 신랑·신부는 드디어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처음 마주했다. 도우미 역할을 하는 시자는 세숫물과 수건을 신랑·신부에게 건네 손을 씻게 했다. 신랑·신부가 처음 인사를 나누는 ‘교배례’ 직전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한다는 의미였다. 집례자는 손 씻기가 끝나자 신랑·신부에게 서로 큰절을 시켰다. ‘교배례’는 원래 신랑이 두 번, 신부가 한 번 번갈아 절하는 절차지만 이 또한 맞절로 간소화했다.



 이후 신랑과 신부가 술을 나눠 마셨다. 술잔과 표주박에 각각 술을 마시는 ‘합근례’였다. 술잔으로 마시는 술은 부부로서 인연을 맺는 걸 뜻하고 표주박에 마시는 술은 부부의 화합을 의미했다. 표주박은 원래 하나였는데 둘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진다는 상징성도 갖고 있었다. 신랑·신부는 각자의 술잔을 비운 뒤 표주박의 술은 서로 상대방의 잔을 마셨다.



 본식은 30분 정도 소요됐다. 전통 혼례의 경우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식순도 최대한 간소화했다. 이어 축하공연과 현구고례(폐백)·피로연 등이 진행됐다. 이날 축하공연에서는 집례자였던 안이호씨와 신부가 각각 준비한 판소리를 불렀다. 뒤이어 신랑·신부가 함께 중앙에 서서 “아름다운 발걸음을 함께 내디딤을 선포합니다”라며 결혼선언문을 낭독했다. 이후 초례상을 치우고 밤과 대추를 올려 간단한 폐백을 진행했고, 신랑·신부가 양가 부모님과 하객들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혼례는 마무리됐다.



 식을 올린 뒤 만난 이들 부부는 특별한 결혼식에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지금껏 갔던 수많은 결혼식과 달리 ‘기억에 남는 예식’이 됐다는 생각에서였다. 신랑 이씨는 “우리가 원하는 모습과 색깔로 결혼식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했고, 신부 신씨도 “남들과 다른 결혼식을 하고 싶어 신청했는데 실제 치러 보니 우리의 혼례에 담긴 의미 하나하나가 맘에 와 닿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시민청 전통 혼례에는 600여만원의 예산이 들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남녀 결혼식 평균 비용 1722만원의 3분의 1 정도 되는 가격이다. 주변 장식은 원래 시민청에 있던 조화들로 대신했다. 초례상에도 값비싼 재료와 생화 대신 꼭 필요한 재료(밤·대추·콩·팥·떡·백미·술 등)들로만 구성해 20만원으로 상을 차렸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결혼식 대관료도 6만6000원(예식장과 피로연 장소 포함)으로 1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신랑과 신부 옆에서 도와주는 시자 역할도 신부의 여동생 부부가 직접 맡는 등 인력도 최소화했다. 지인들 도움으로 헤어와 메이크업, 사진을 해결하고 피로연 없이 떡으로 답례를 대신할 경우 총예산을 절반 가까이 줄일 수도 있다. 일반적인 전통 혼례에 비해서도 훨씬 저렴한 비용이다.



 아름지기는 이번 혼례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통을 어디까지 따를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자문위원들도 오랜 시간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고정아 아름지기 문화기획팀장은 “시대가 변하고 있는 만큼 전통 혼례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많은 부분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조정해 많은 신랑 신부가 동참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며 “이번 혼례는 하나의 모델로 제시된 것으로, 참여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앞으로도 계속 보완·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송지영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재단법인 아름지기=우리 문화유산의 보존·계승을 위해 2001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 아름지기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전통문화의 현대화와 문화유산 주변환경 가꾸기,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위한 교육 및 연구 등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회원은 600여 명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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