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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1%의, 1%를 위한 1%에 의한 나라 미국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624쪽, 2만5000원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70·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좌파가 아니면서도 우파 경제학을 비판하는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며 시장근본주의를 거부한다. 시장이 불완전하다는 입장인 만큼 신자유주의와 대척점에 선다.



 그는 시장이란 경기장이 ‘가진 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믿는다. 세계화에도 회의적이다. 경제의 세계화는 시장 실패의 세계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동아시아의 기적』(1994)이나, 미국 금융위기를 다룬 『스티글리츠 보고서』(2009)를 관통하고 있다.



 스티글리츠는 주류 경제학자가 아니지만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 힘은 구체적인 수치를 바탕으로 ‘시장을 시장답게 만들어야 한다’는 똑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과 효율’이라는 주류 경제학의 분석 틀을 차용해 우파가 눈 감는 불편한 진실에 도전한다. 정부와 국제경제기구의 오류를 거침없이 비판하며 ‘못 가진 자’와 개발도상국의 입장을 옹호한다. 주류 경제학의 시각에선 반골기질이 뚜렷한 인물로 간주된다. 우리에겐 외환위기 당시 날 선 발언으로 깊이 각인돼 있다. 그는 “한국은 강요된 금융개방으로 위기를 맞았으며,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고금리와 긴축 처방으로 또 한 번 한국을 죽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스티글리츠는 좌파 경제학자가 아니다. 시장의 실패를 비판하지만 시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정부의 실패를 공격하지만, 정부 역할 강화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난하면서도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 “금융시장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금융시장 없이 살 수 없다. 정부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 없이 살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낡은 자본주의의 실패다. 우리의 도전은 신(新)자본주의 창조에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끝나지 않을 추락』· 2010년)



 신간 『불평등의 대가』(원제 The Price of Inequality)는 불평등이 심화되는 미국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의 금융에 대한 시각은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설’과 닮아있다. 민스키는 “상품시장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줄지만, 자산시장에선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더 늘어나 수급불균형이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스티글리츠는 한발 더 나가 금융시장은 물론 전체 시장 자체가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2010년에 창출된 추가소득의 93%를 미국의 상위 1%가 독차지하지 않았느냐고 따진다. 미국이 ‘1%의, 1%를 위한, 1%에 의한 나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이런 불평등이 우연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간주한다. 사실 애덤 스미스도 담합이나 독점 이익 추구에 따른 시장의 실패 가능성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여기에다 외부효과와 정보 비대칭성, 산업구조 변화까지 감안하면 시장 실패로 인한 불평등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부자들이 나머지 구성원을 희생시키면서 이득을 챙기는 ‘지대(地代) 추구’가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가장 강조하는 대목은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게 시장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불평등의 상당 부분은 정책, 즉 정부가 한 일과 정부가 하지 않은 일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가장 큰 책임은 경제의 게임 규칙을 정하는 정치에 맞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불평등에 대한 그의 해법은 케인즈를 연상시킨다. 정부의 역할을 바로잡고, 오히려 정부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감세와 예산 긴축을 주장하는 공급 주도 경제학을 “근거 없는 신화”라 비난한다. 경제 위기 때는 모든 정책이 공급이 아니라, 총수요를 어떻게 늘일까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이 책의 부제처럼, 분열된 사회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99%가 고통을 받고, 결국에는 수요 위축으로 상위 1%마저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초래하는 값비싼 대가다.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악순환과 불평등의 대물림을 차단하려면 1%에 치중된 정치·정책·사법제도·중앙은행의 역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본다.



 그의 눈에 비친 시장은 다수의 국민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꾸준히 관리해야 할 대상이다. 그는 책 말미에 “아직 희망이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희망의 불꽃이 흔들리지만,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적었다.



 이 책은 순수한 경제학이라기보다 정치경제학 서적이라고 보는 게 온당하다. 독자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게 목표인 만큼 매우 읽기 쉽게 쓴 책이다. 다만 정치경제학 서적을 읽을 때는 또 다른 신화와 맹신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일이다. 자칫하면 신념과 이념의 문제로 굳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도도한 시장화와 세계화의 흐름을 역전시켜야 할지, 아니면 후유증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칠지는 각 나라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한국도 미국처럼 사회 양극화에 신음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 개혁의 방향과 좌표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하지만 스티글리츠가 머리 속에 그리는 바람직한 경제모델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나서 이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될 듯싶다.



 그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한국이 바라봐야 할 곳이 있다면, 그것은 북유럽이지 결코 미국이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줄곧 미국식 모델을 쫓아온 한국이 갑자기 북유럽 모델로 선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평등의 해소가 중요한 만큼 경쟁과 효율성을 어떻게 담보할지가 새로운 숙제로 남는다.



[더 읽을 만한 책들]



스티글리츠는 정부 역할 확대를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이미 재정적자가 목까지 차오른 미국·일본·유럽의 현실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선택이다. 최근 선진국들이 선택한 정책수단을 이해하려면 보다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살아있는 역사 버냉키와 금융전쟁』(2010·RHK)은 재정정책이 제한된 상황에서 왜 미국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를 선택했는지를 보여준다. 금융위기는 신뢰 붕괴로 초래됐다. 그 악순환에 제동을 걸려면 중앙은행이 마지막 방파제로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굳이 ‘시장 실패 vs 정부 실패’라는 이분법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사실 현대 주류경제학 역시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를 모두 인정하는 쪽이다. 시장도 불완전하지만 정부의 경제개입도 적지 않은 부작용을 부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 경제를 최대한 활용하되, 시장이 실패한 분야에는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어떤 사안에, 어디까지 정부가 개입해야 할지는 선택의 문제다.



 신자유주의와 정부 역할의 뿌리를 더듬어 가면, 정부역할을 강조하는 케인즈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하이에크와 대립한다. 양쪽 입장을 이해하는 데는 『케인즈&하이에크, 시장 경제를 위한 진실게임』(2008·김영사)이 도움이 된다. 요즘 신자유주의가 동네북처럼 얻어맞지만, 신자유주의도 사회주의와 케인즈주의 틈 바구니에서 끈질긴 생명을 이어왔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창궐하던 시대에 시장경제만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담보한다고 절규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2006·나남)은 꼭 챙겨야 할 현대판 고전이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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