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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6월의 주제] 오늘, 나를 세우는 시간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6월 주제는 ‘오늘, 나를 세우는 시간’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합니다. 각기 개성 넘치는 목소리로 우리가 바로 여기의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하는 이유, 내 자존을 지키며 더 행복해지는 길을 일러주는 신간 세 권을 골랐습니다.



◆ 자신만의 목소리, 그것이 인문학이다



강단 철학을 벗어나 ‘거리의 철학자’를 자처하는 그이지만 그 말이 왠지 ‘거지’처럼 들리기도 한다는 강신주씨. “인문정신은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지만 진정한 인문학의 길은 굉장히 아프다”고 말했다. [사진 시대의창]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강신주·지승호 지음

시대의창, 600쪽,2만2000원




최근 몇 년 새 인문 출판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저자를 꼽으라면 강신주(47)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온갖 경계를 뛰어넘고 싶어하는 철학자다. 동양철학을 전공했지만 그 속에 머물려 하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의 철학을 관통하는 근원적 힘을 찾아내려 한다. 정규 대학과 대학원 코스를 밟았지만 강단철학을 벗어나 ‘거리의 철학자’를 자처한다. 각종 강연과 17권이란 적지 않은 저작을 내며 대중과의 소통을 꾀해왔다.



 이 책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은 탈(脫)경계에 대한 그의 염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의 탈경계는 권력과 억압과 인습 앞에 왜소해지지 않고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당당함을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가 지금까지 펴낸 책들과 성격이 다르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와의 공동 작업으로, 지승호가 묻고 강신주가 답하는 형식이다. 『철학 vs 철학』 『김수영을 위하여』 등 그의 저서에서 다 밝혀놓지 못한 속 얘기를 강신주의 육성으로 들려주는데, 다양한 일화를 제시하며 그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인문 정신’이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진리가 인문 정신의 본령일까. 그는 아니라고 외친다. 그가 볼 때 인문 정신이란 자기 얘기를 할 줄 아는 것이다. 그 역시 자신의 주관을 표현할 뿐인데, 인문학이 본래 그렇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문학과 역사와 철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그것들을 관통하는 시대적 맥락을 놓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인문 정신이라고 했다.



 강신주가 볼 때 인문학은 고유명사일 수밖에 없다. 세계사에 족적을 남긴 작품들의 역사는 고유명사의 릴레이다. 누구도 흉내 내지 않고 자신만의 목소리와 스타일을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인문학적 독서는 바로 그 작품들에 담긴 작가만의 고유명사를 찾아내는 일이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김수영의 시 ‘달나라의 장난’ 중에서).



강신주(左), 지승호(右)


 강신주가 좋아하는 김수영(1921~68)의 1953년 작품이다. 강신주는 한국형 인문 정신의 뿌리를 김수영 시인에게서 찾는다. 한국전쟁 때인 1952년 반공포로 수용소 경험이 이 시의 바탕에 깔려 있다. 극단적으로 자유가 억압되었던 체험이다.



 이 시에 나오는 팽이의 이미지에서 강신주는 인문학의 독립정신을 읽어냈다. 공통된 중심을 거부하는 팽이는 곧 권력과 이념과 종교가 주입하는 획일성에서 벗어나려는 인문 정신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팽이처럼 스스로 도는 힘, 이를 강신주는 자유라고 불렀다. 자유는 다시 사랑과 맥락이 닿는다. 자신이 스스로 삶의 주인인 사람만이 자유를 누리고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얘기다.



 공자·노자·장자·묵자 등 동양의 제자백가(諸子百家)는 물론 서양 사상사의 플라톤·마르크스·니체 등 주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강신주의 평가는 호오(好惡)가 뚜렷하다. 익숙한 관습을 해체하는 가운데 “흉내내면 안돼요”라고 말하고 있는 그의 주관은 유혹적이다. 강신주의 주관을 지렛대 삼아 나 자신의 주관을 만들어 가는 일이 독자의 숙제로 남는다.



배영대 기자



◆ 고백한다, 아직 충분히 아파 보지 않았다고 …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정여울 지음, 21세기북스

367쪽, 1만6000원




저자는 ‘서툴러서 상처밖에 줄 수 없었던 나의 20대에 사과하며’라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88만원 세대’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에게 주는 위로의 메시지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냥 나’와 ‘그냥 20대’의 수다 같은 글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이 다 ‘너흰 아프다’고 하니까, ‘그래, 나도 아픈가 보다’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직 충분히 아파 보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솔직함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힘겹게 건너왔던 자신의 20대를 돌아본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희망과 절망, 두려움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20대의 그는 ‘명함공포증’을 앓고 있었다. ‘당신의 소속은 어디입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쫄지 않게 된 것은 서른 즈음이 되어서였다. 내 삶은 내 소속이며, 내 꿈은 어떤 ‘직업’이 아니라 사랑하는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삶’이라는 걸 오랜 방황 끝에 깨달았다. 그는 “무조건 꿈을 세우고 돌진하는 떠들썩한 맹목이 아니라 꿈과 삶과 나를 일치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고독한 몽상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라고 묻는다.



 쉽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도전하기 전에 미리 온갖 잔머리를 굴려 내 인생을 ‘시뮬레이션’ 해보고 안되겠구나 싶어 지레 포기하는 것. 그것은 금속에 슬기 시작한 ‘녹’ 같다. 처음엔 하찮게 보이지만 나중엔 녹 때문에 물체의 원래 모습조차 알 수 없게 되버리는.”



 20대의 그는 외로웠다고 한다.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게 두려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피했고 주기적으로 대인기피증에도 걸렸다. 하지만 20대를 지나오면서 알았다. “마주치는 타인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괜스레 두려워하지 말고, 천천히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 당신이 외면한 타인은 당신을 구원할 첫 번째 빛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책은 20개의 키워드로 구성돼 있다. 그 키워드마다 저자의 경험과 통찰이 녹아있다. 20대에 꼭 할 일로 우정을 쌓을 것,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것, 두려움 없이 사랑할 것,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믿을 것, 순수한 탐닉의 대상을 찾을 것 등을 꼽는다. 현재의 20대뿐 아니라 얼떨결에 20대를 지나온 이들에게도 위로와 힘을 준다.



 “도대체 무엇을 할지 몰라 차라리 빨리 늙어버리기를 바랐던, 그래서 제대로 작별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던 20대의 나와 내 친구들에 대한 뒤풀이”로도 읽힌다. 



박혜민 기자



◆ 광고쟁이 박웅현이 주는 말 '너 자신이 되어라(Be Yourself)'



여덟 단어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

237쪽, 1만5000원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생활의 중심’ ‘사람을 향합니다’ 등의 광고문구로 유명한 저자가 『책은 도끼다』에 이어 펴낸 책이다. 전작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김훈의 『자전거 여행』, 고은의 『순간의 꽃』 등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그는 이번에 단어 8개를 프리즘으로 삼아 인문학적 삶에 대해 얘기한다. 그 여덟 단어는 자존·본질·고전·견(見)·현재·권위·소통·인생이다. 지난해 말 20~30대를 상대로 한 강연록이기도 하다.



 한 줄의 카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을 해온 덕분일까. 저자는 베테랑 광고인답게 ‘인생을 대하는 자세’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친근한 구어체의 글은 술술 읽힌다.



 이를테면 ‘현재’라는 장(章) 부제는 ‘개처럼 살자’다. 직접 키운 강아지 이야기에서 출발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등장하는 개 카레닌 이야기로 옮아간다. 이어 카르페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는 불가의 선문답으로 질주한다.



 여기에 ‘우리는 아이를 위해 빵에 버터를 바르고 이부자리를 펴는 것이 경이로운 일임을 잊어버린다’는 알랭 드 보통의 이야기와 ‘하늘 아래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는 장자 철학이 이어진다. 지금 이순간의 소중함을 설명하기 위해 일상의 경험과 동서양 고전과 경구가 쉴새 없이 파도타기를 한다.



 자존감이 행복의 조건이며, 스펙보다 내면의 본질을 키워야 한다는 것, 사물을 깊고 천천히 들여다 보는 게 창의력을 길어 올리는 샘이라는 얘기는 저자만의 특별한 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갈피에 풍부하게 스며든 그만의 관찰력과 감성이 전하는 울림이 남다르다. 안도현 시 ‘스며드는 것’, 겸재 정선의 ‘금강산도’,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Take 5’ 등 시와 미술과 음악이 풍부하게 어우러진 책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253쪽 분량의 광고 같기도 하다.



 이 긴 광고를 대표할 카피를 찾는다면, 아마도 ‘너 자신이 되어라(Be Yourself)’가 아닐까. 첫 단어로 ‘자존’을 꼽은 그는 “자신의 길을 무시하지 않는 것, 바로 이게 인생”이라고 했다. 답은 저쪽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 내 인생에 있으며,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존중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전인미답의 길을 가자’는 그의 결론, 흔들리는 20~30대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이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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